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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지만 맛과 멋, 있을 건 다 있는 ‘돈암시장’

소박하지만 맛과 멋, 있을 건 다 있는 ‘돈암시장’>
2023.10

여행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맛있는 시장 이야기

소박하지만 맛과 멋, 있을 건 다 있는 ‘돈암시장’

돈암시장(돈암제일시장)은 아담하고 운치 있는 서울 도심권 시장이다. 성북구에 속하는데, 이 구에서도 돈암동은 동선동·동소문동 등과 함께 서울의 핵심 구역으로 일컬어진다. 사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돈암시장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작아졌다. 인구가 밀집되고, 식료품을 주로 전통시장에서 구매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시장은 상당히 권역이 넓었다. 시장 자체 부지 외에도 그 옆으로 건물들이 들어서 ‘외곽 시장’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돈암시장의 시작은 공식적 기록으로는 1952년이지만 실제로는 조선 후기로 짐작되며, 일제강점기 이 일대에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보아 더 긴 역사가 숨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50~1960년대에 서울 이주 열풍이 불면서 성북구 일대에 거주지가 확장됐고, 돈암시장도 그런 인구 증가의 영향을 받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모습은 달라져도 구석구석 옛 정취는 그대로

돈암시장의 규모는 비록 작아졌지만, 옛 정취는 여전히 그대로 살아 있다. 생선도 싱싱하고, 채소상도 건재하고, 정육점도 깔끔한 모습을 잃지 않고 영업 중이다. 취재 당일, 먼저 ‘황해도떡집’에 들렀다. 이북식 찹쌀떡과 강아지떡 등 별난 떡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서울의 도심 시장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소매를 중심으로 하며 이북 지역 출신이 터를 많이 잡았다는 점이다.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남대문시장이 그렇듯 돈암시장도 상인 중 이북 피란민이 많았다.

“예전에는 이북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황해도떡집과 우리 할머니빈대떡집 두 곳 정도 남았네요.”

‘할머니빈대떡’을 지키고 있는 주인의 말이다. 보통 시장에는 노포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이 두 집은 돈암시장을 상징하는 노포에 속한다. 떡은 쫄깃하고 구수한 맛이 나며, 전은 기름지고 진했다. 하나같이 옛 맛 그대로였다.

입도, 지갑도 즐거운 맛집이 가득한 곳

돈암시장 하면 식당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명소가 많다. 특히 ‘황해옥감자탕’은 저렴하지만 푸짐한 양의 감자탕을 맛볼 수 있는 노포 맛집으로 꼽힌다.

“우리 집은 싸고 양이 많아요. 돈암동이 서민 동네였기도 하고, 학생들이 많이 와서 비싸게 못 팔아요. 그래서인지 단골이 많죠.”

황해옥감자탕 안주인의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서울 도심권에서 가장 싼 감자탕이 아닐까 싶다. 4인분에 해당하는 대짜가 3만 원대다. 옛날에 필자가 이 시장 감자탕집들을 다닐 때는 몇 번이고 육수를 더 부어달라고 했다. 공짜인 김치를 다시 넣어서 또 끓여 먹곤 했다. 짜증 날 법도 한데 주인들은 기꺼이 국물을 더 부어주고, 감자와 고기 조각을 슬쩍 더 넣어주기도 했다.

소설가 김훈 선생도 어린 시절 이 일대에서 살았다. 그의 글에는 아버지를 위해 새벽같이 돈암시장 해장국집에 가서 국을 사다 드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는 양은 냄비를 가져가서 해장국이나 설렁탕을 받아오는 일이 흔했다. 시장은 무엇이든 있었고, 언제든 열려 있었으며, ‘정’도 무료로 끼워주는 곳이었다. 지금도 시장은 그게 가능한 곳이다. 덤과 에누리와 단골이 이어지는 곳 말이다. 이 밖에도 돈암시장에는 인기 있는 노포가 많다. 족발로 유명한 ‘오백집모자족발’, 순대와 김밥이 유명한 ‘돈암순대’도 시장의 정취를 살려주는 맛집이다.

가을, 돈암시장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돈암동은 서울에서도 최초의 신도시라고 부를 만하다. 1930년대에 돈암동과 동선동 일대에 도시계획이 이뤄지면서 대량의 한옥 골목이 만들어졌다. 북촌, 서촌과 함께 서울에서도 드문 한옥 밀집 지역이 형성된 것은 이때의 흔적이다. 돈암동이란 이름은 되너미고개에서 유래했다. 순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붙이는 과정에서 ‘돈암’이 된 것이다. 고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의 도성 일부를 이루는 성북동과 이어져 가파르고 험한 고개가 많은 동네였다. 서울 성곽 길을 걷거나 성북천 산책, 한옥마을 탐방, 돈암시장 구경 등이 하나로 쭉 이어져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날씨 좋은 가을이 최고의 아이템이다.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넘치는 인심, 맛엔 진심! 돈암시장 맛집

달인의 손으로 빚은 떡 ‘황해도떡집’

매스컴을 통해 ‘이북식 찹쌀떡의 달인’으로 알려진 주인이 정성을 다해 빚은 떡이 가득하다. 쫀득한 떡에 달콤한 소가 듬뿍 담겨 한 입 먹고 나면 손을 멈출 수가 없다. 손으로 직접 빚은 송편과 전통 문양을 넣은 꿀떡 등 다른 종류의 떡에도 개성을 채웠다. 3대째 대를 잇고 있으며, 맛은 물론 진심 또한 변함없는 곳이다.

가격 이북식 찹쌀떡 1팩 8,000원(흰색 기본), 9,000원(쑥) / 강아지떡 5,000원(5개)

맛과 양 모두 일품인 ‘돈암순대’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노하우는 역시 ‘맛’이다. 그리고 그 맛에는 직접 만드는 순대에 당일 조리, 당일 소진의 원칙을 지켜온 마음이 담겨 있다. 게다가 인심까지 넉넉해 순대를 주문하면 선지우거짓국 한 그릇이 같이 나오고, 포장을 할 때도 동일하다. 깊은 국물 맛에 또 한 번 놀랄지도 모른다.

가격 순대 5,000원 / 떡볶이 3,500원 / 야채김밥 3,000원


고소한 전 냄새로 가득한 ‘할머니빈대떡’

돈암시장의 터줏대감이자 서문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곳에는 빈대떡뿐만 아니라 동태전, 깻잎전, 녹두전 등 온갖 전이 우리를 반긴다.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긴 세월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직접 전을 부쳐온 주인은 전의 장인과 같다. 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조리하는 것까지 그 어떤 것도 절대 허투루 하지 않는다.

가격 빈대떡 5,000원(1장) / 모둠전 1만 원(400g)


인심 넘치는 감자탕 ‘황해옥감자탕’

50년 동안 꾸준한 맛을 자랑하는 감자탕집. 깻잎, 감자, 떡, 수제비, 당면 등 감자탕에 들어가는 재료만 봐도 남다른 인심이 느껴진다. 여기에 깊은 국물과 부드러운 고기가 어우러져 맛도 일품이다. 자꾸만 손이 가 금세 바닥을 드러낼 때쯤 볶음밥으로 식사를 완성하면 가히 최고다.

가격 감자탕 2만4,000원(소), 2만6,000원(중), 3만1,000원(대), 3만6,000원(특대) / 뼈해장국(점심) 9,000원

박찬일 취재 임산하 사진 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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