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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자연이 품은 서울
서울에 나타난 멸종위기야생생물
용마산의 새로운 이웃, 저는 산양이에요
2023.09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회갈색 혹은 흑갈색 털이 온몸을 덮고 있으며, 이마 위엔 검은 뿔 한 쌍이 솟아 있다. 흰빛 꼬리는 제법 길어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온다. 머리에서부터 목덜미까지는 검은 줄이 이어지고, 목 아래쪽엔 흰색 반점이 있다.

2018년 5월, 신비로운 형상의 이 동물이 서울에 출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산양이 서울에서 발견되다니. 염소를 보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중랑구 용마폭포공원에서 방송국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긴 영상을 보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산양이다. 서울에 산양이 나타났다!

중랑구는 이 귀한 손님을 맞이하고자 ‘용마산 산양 이름 짓기’ 시민 공모를 진행했고, 접수된 913건의 시민 제안에 대한 열띤 심사를 통해 ‘용마돌이’로 명명했다.

용마산 용마돌이의 모습

바위 타기의 명수, 산양

산양은 우제목 솟과 동물로 전 세계적으로는 러시아 연해주, 중국 북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 분포한다. 산양 하면 흔히 연상할 수 있는 것이 산양유이나, 시중에 유통되는 산양유는 온몸이 흰 젖염소(자아넨종, 알파인종)의 젖이다. 가축인 ‘염소’와 야생동물인 ‘산양’은 분류학적으로 엄연히 다른 종이다.

산양은 초식동물로 연한 어린잎을 가장 좋아하지만, 식물종자나 열매 등 다양한 먹이를 숲에서 찾아 먹는다. 여름철에는 나뭇잎과 풀잎을 먹고, 겨울에는 마른 가지와 낙엽 또는 떨어진 종자 등을 찾아 먹으며 버틴다. 쌓인 눈을 파헤치고 먹이를 찾는 능력이 부족해 겨울철 폭설에는 취약하다. 해마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 눈밭에서 탈진한 산양이 발견되어 구조되곤 한다.

산양이 좋아하는 서식지는 인적이 드물고 가파른 비탈과 바위가 많은 산악 지대다. 균형 감각이 뛰어나고, 유연한 집게형 발굽을 가지고 있어 바위 절벽과 급경사지를 가뿐하게 오르내린다. 다른 동물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험준한 지형에 특화되어 자신만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구축한다. 화천, 양구, 인제, 고성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일대와 설악산, 울진·삼척 지역 등지 숲에 분포한다.

산양은 과거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개체 수가 급감해 법적으로 멸종위기야생생물Ⅰ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IUCN Redlist)의 취약종,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Ⅰ에 등재된 멸종위기종이다.

용마돌이의 위험한 상경기

기존 산양 서식지로 알려진 포천과 화천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서울시 중랑구 용마산에서의 산양 출현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다면 용마돌이는 어떻게 이곳까지 왔을까?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산양 서식지는 소요산과 왕방산 일대다. 용마산과의 직선거리는 40km 남짓이나 그 사이에는 고속도로(29·100호선), 국도(6·43호선) 등의 많은 도로와 개발지가 존재한다. 용마돌이의 여정을 거칠게 추측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포천 일대에서 남진하던 용마돌이는 축석령 인근에서 왕복 4차선 국도 43호선을 건넜다. 곧이어 갓 완공된 구리포천고속도로를 만났다. 개통 직전 텅 빈 고속도로 노면을 이동로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용마산에 닿기 직전엔 횡단 난이도 극강의 왕복 6차선 북부간선도로와 망우리고개에 맞닥뜨린다. 교통량도 상당하고, 중앙분리대까지 설치되어 건너기에 매우 위험한 구조다. 다만 북부간선도로에는 군부대를 연결하는 충군육교가 있고, 망우리고개 고갯마루에는 보행자와 차량 겸용 육교가 있어 그나마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주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용마산에 도달한 용마돌이는 남쪽의 한강을 바라보곤 그대로 용마산에 눌러앉기로 한다.

이와 같은 용마돌이 이동 경로 추정은 말 그대로 추정일 뿐 실제 여정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많은 난관과 로드킬 위험을 극복하고 용마돌이는 기어이 살아남아 용마산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용마돌이의 마음을 뺏은 용마산

용마산은 아차산과 함께 서울을 동쪽에서 감싸는 외사산에 해당한다. 산양 조사를 위해 정기적으로 용마산을 찾는다. 정상부 높이가 해발 348m 남짓이지만, 오르기 위해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된비알(된비탈)을 지나야 한다.

수피가 벗겨진 흔적이 연이어 나타난다. 산양은 특정 나무에 반복적으로 뿔을 문질러댄다. 줄기에 체취를 남겨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다. 동그랗고 까만 산양 똥이 켜켜이 쌓여 있는 똥 자리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바스러져 흙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똥, 묵어서 탈색되기 시작한 똥, 아직은 수분이 덜 빠진 똥, 영롱하게 빛나는 싱싱한 똥이 순서대로 쌓여 있다. 삶의 과정을 차례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똥 층서학 교재다. 지름 1m에 달하는 똥 자리는 녀석이 용마산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언제나 반갑다.

암벽등반 전문가답게 용마돌이는 역시나 용마산에서도 가파른 절벽 지대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용케도 이곳엔 기가 막힌 암벽이 펼쳐져 있다.

용마산에는 1961년부터 서울시 건설자재사업소가 운영하던 채석장이 있었다. 하루에 두 번 다이너마이트 발파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캐낸 돌을 가루로 만들어 아스팔트 콘크리트를 생산하던 곳이었다. 분진과 소음으로 인근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았다. 마침내 1988년, 27년을 이어온 채석 사업이 종료되고, 용도 폐기된 채석장은 1993년 용마돌산공원으로 시민의 품에 찾아왔다. 이후 1997년 절벽을 활용해 인공 폭포를 조성하면서 용마폭포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형 석재를 규칙적으로 깎아내면서 층층이 형성된 거대한 수직 바위벽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산양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서식지가 되고 있다. 사람의 접근이 어려울뿐더러 폭포수를 흘려주니 마실 물도 풍부하다. 설악산 장수대나 삼척 용소골 암벽에 버금가는 용마산 채석장 터가 용마돌이의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용마의 전설

일반적으로 산양의 검은 원통형 뿔에는 주름이 있고, 나이가 많을수록 전체 뿔에서 주름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뿔 주름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산양의 나이를 추정하는 데 훌륭한 단서가 된다. 한편 암컷에 비해 수컷의 뿔은 보다 벌어지고 뒤로 젖혀져 있다. 센서 카메라에 촬영된 용마돌이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뿔은 주름이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두 뿔 사이는 약간 벌어져 있다. 즉 녀석은 나이가 제법 많은 수컷이다.

처음 용마돌이의 출현 소식을 접했을 때 금세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용마돌이는 5년 넘게 용마산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용마돌이를 암컷이 있는 다른 서식지로 이주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많은 난관을 뚫고 이곳에 와서 정착한 녀석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존중하고 싶다. 오늘 밤에도 용마돌이는 바위 절벽 한쪽에서 되새김질을 하며 거대 도시의 야경을 굽어보고 있겠지.

용마산에는 아기 장사의 전설이 전해진다. 삼국시대엔 장사가 태어나면 가족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죽이곤 했는데, 용마산에서 장사가 될 재목의 아기가 태어나자 이를 걱정한 부모가 아기를 죽였단다. 그 뒤 산에서 용마가 나와 다른 곳으로 날아간 데서 용마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쪽저쪽 바위를 날 듯이 뛰어다니는 용마돌이가 그 용마(龍馬)의 현현(顯現)이 아닐까? 서울시민에게 도시와 야생동물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메신저가 되어.

우동걸
야생동물을 조사하기 위해 우리 땅 곳곳을 다녔다. 국립생태원 멸종 위기종복원센터에서 포유류의 생태와 보전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숲에서 태어나 길 위에 서다> 등이 있다.

우동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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