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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운영자의 책방 여행

책방 운영자의 책방 여행>
2023.08

에세이

이야기가 있는 도시

책방 운영자의 책방 여행

본격 책방 여행자가 된 건 2015년이었다. 도쿄의 작은 책방이 그 시작이었고, 서울의 책방이 책방 여행을 이어나가게 했다. 점심을 먹고 산책 겸 우연히 나선 서촌 골목에서 서울에도 작고 색다른 책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다정한 책방 분위기가 좋았고, 점점 책방에서 소개하는 새로운 형태의 독립 출판물과 새롭게 발견하는 책이 좋았다. 당시 직장인이던 나는 점심시간과 퇴근 후 서울 곳곳에 숨은 책방을 찾아다녔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라고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말했다. 책방 여행은 나에게 딱 그런 여행이었다. 내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곳, 나의 삶을 변화하게 만든 곳. 내가 처음 서울 책방 여행을 시작한 곳은 이미 오래전 문 닫았지만, 새로운 책방은 계속 생겨났다. 지금 서울엔 300여 개의 크고 작은 책방이 있다. 내가 가본 책방은 고작 100개 남짓. 아직도 가봐야 할, 가고 싶은 책방이 여럿이다.

서울의 책방 여행자들

책방 운영을 꿈꾼 적 없던 내가 책방 운영자가 되었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책방 운영자가 된 후 책방 여행은 더 진심이 됐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책방 여행자가 되었달까. 지금도 시간의 틈을 만들어 책방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면 나는 자주 홀린 듯 유심히 책방을 바라본다. 책방마다 가진 유일한 이야기를 찾기 위해, 저만의 이야기가 보이면 조건 없는 환대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치 여행자에게 보내는 하나의 초대장처럼.

최근엔 서울을 찾는 여행자들이 작은 책방을 여행의 목적지로 둔다. 서촌, 북촌, 홍대, 망원동, 성수동, 해방촌 등 동네마다 다른 분위기를 지닌 책방을 찾는다. 그들의 손엔 책방 지도나 서울의 책방을 소개한 책이 들려 있고, 책방에서 산 책을 전리품처럼 뽐내듯 들고 있다. 지난주엔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책방 여행을 왔다는 중년 여성들을 만났다.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을 하다 틈을 내어 책방 여행을 떠나왔다는 그들. 그날 책방 네 곳을 들렀다고 했다. 그러곤 책방마다 책 한 권씩을 모두 샀다며 웃어 보였다. 웃는 모습은 책처럼 단단하지만, 소녀보다 말갛게 예뻤다.

국내 여행자뿐만이 아니다. 해외 여행자도 책방에서 걸음을 멈춘다. 해외 여행자는 책방이 목적이기보단 여행 과정에서 만난다. 우연히 들어선 책방에서 한글을 배우기 위해, 한글이 궁금해서, 서울 여행이 신나서 등 여러 이유로 책을 산다. 어느 책방에서였다. “일본인인데요, 이 책 일본에도 출간되었어요.” 그는 반갑게 웃으며 유명 작가의 책을 두 권 빼 들었다. 아직 한글을 잘 읽지 못한다는데 “한국어로 된 책을 사고 싶어 왔어요”라고 말하던 여행자다. 나의 책방에서도 “중국인인데요, 조금 쉬운 시집이 있을까요? 이제 배우는 중이라서요”라던 여행자, “미국에서 유명한 저널리스트인데, 한국에 책도 내요?”라며 놀라워하던 여행자를 만나기도 했으니 낯선 일은 아니다.

그들은 서울을 어떻게 기억할까. 작은 골목 안에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책방을 기억해줄까. 지금 추세라면 당분간 작고 개성 있는 책방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 책방들이 자신의 개성을 뽐내며 서울 곳곳에서 불을 밝힌다면? 파리 하면 카페가 먼저 떠오르듯 서울이라 하면 책방이 반짝 떠오를 수 있을까.

책방 여행자가 되는 법

책을 읽고 책방을 여행하는 삶은 멀지 않다. 원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처음 한 걸음이 낯설 뿐.

어떻게 책방 여행자가 될까? 우선 나의 취향에 맞는, 맞을것 같은 책방을 찾아보자. 누구는 집에서 또는 직장에서 가까운 책방, 또 누구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잔뜩 있는 책방이 좋을 수 있다. 그런 다음 책방에 가자. 책방에 가서 책한 권을 골라보자.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가서 누구나 메뉴 하나는 골라 먹듯 책방에 꽂힌 수많은 책을 살펴보고 사자. 분명 마음에 드는 책이 있을 테다. 표지가 예뻐서, 제목이 끌려서, 내용이 좋아서, 좋아하는 작가라서, 책방 운영자가 추천해서 등 마음에 드는 이유는 제각각 다를 것이다.

이렇게 가끔 계획 없이 책방에 들러보자. 비가 와서, 날이 좋아서, 친구가 약속에 늦어서, 할 일이 없어서. 한 번, 두 번, 세 번, 어느새 틈날 때마다 책방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큰 결심이 아니라 생활 속 작은 걸음이 책과 함께하는 삶이 된다. 그럼 개인의 삶도, 도시에서 사는 우리의 삶도 나아질 것이다.

난 올가 토카르추크가 <다정한 서술자>에 썼듯이 “유심히 살펴보면 모든 좋은 책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걸 분명히” 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인물들, 질문들, 새로운 발견들 그리고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것들을 책이 말해주고 있으므로. 그리고 좋은 책은 동네의 작은 책방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으므로.

오늘도 서울 곳곳의 책방은 문을 열었다. 무덥고 더운 날씨에도, 그 날씨 끝에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책방의 문은 닫히지 않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세상을 변화시킬 책을, 분명 작은 책방을 사랑하게 될 당신을.


구선아
작은 책방을 운영하며 읽고 쓰는 삶을 산다. <일상생활자의 작가 되는 법>, <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등을 썼다.

구선아 일러스트 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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