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바위가 담긴 동네가 있다.
동명으로 남은 특별한 바위들을 함께 살펴보자.
용산구 - 후암동
후암동(厚岩洞)에는 ‘두텁바위’라고 부르던 바위가 있었다. 두텁바위라는 이름처럼 크고 둥글며, 두터운 이 바위는 자손이 귀한 사람들이 찾아와 자손 얻기를 빌던 곳이라 전해진다. 비록 바위는 사라졌지만, 후암동이라는 동명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집단 거주했던 후암동은 당시 ‘삼판통(三坂通)’이라 불리며 마을의 이름을 빼앗긴 적이 있는데,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제 이름을 되찾았다.
+ 이야기 하나 더
남산도서관 맞은편에는 ‘두텁바위 마을(후암동)’이라 쓰인 마을의 상징석이 자리한다. 이는 2013년 후암동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 운동을 벌여 세운 것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성북구 - 종암동
고려대학교 뒷산 개운산에 북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어 그 바위의 이름을 ‘북바위’라 한 데서 유래한 종암동(鍾岩洞). 바위는 남아 있지 않지만, 최근까지 매년 북바위를 대신하는 산제단에서 산제사를 열 만큼 마을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종암동에는 북바위의 유래부터 마을 곳곳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둘레길인 ‘북바위 둘레길’이 있다. 종암동주민센터에서 시작하는 둘레길은 북바위유래비길·개운산 산책길 등 10개 코스로, 총길이 약 5.8km가 조성돼 있다.
+ 이야기 하나 더
종암동은 이육사가 한때 거주했던 곳이자, 대표작인 ‘청포도’를 발표한 곳으로 유명하다. 북바위 둘레길의 3구간은 ‘이육사 시인길’로 불리는데, 이곳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를 기념하기 위한 ‘문화공간 이육사’가 있다.
은평구 - 응암동
대부분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는 응암동 뒤로는 백련산이 있다. 백련산은 서대문구 홍은동까지 걸쳐 있을 정도로 넓지만, 높이는 해발 228m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의 산책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응암동의 이름은 백련산과 깊은 연관이 있다. 백련산 기슭의 커다란 바위가 마치 매가 앉아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매바위’라 불린데서 응암동(鷹岩洞)이 유래한다. 조선 시대에는 매바위 일대에서 왕족들이 매를 날려 사냥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 이야기 하나 더
응암동의 유래가 된 매바위는 도시화로 인해 사라졌다. 그러나 백련산 정상에 오르면 새로운 매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이는 그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정상의 큰 바위를 매바위라 명명한 것이다.
글 임산하 일러스트 정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