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시장
경동시장은 동대문구 시장 권역의 핵심이다. 1호선 청량리역 쪽으로 ‘청량리’라는 이름이 붙은 시장이 여러 개 있고, 1호선 제기동역 쪽으로는 경동시장이 터줏대감이다. 인접한 타 시장이 이름에 ‘청량리’를 붙이는 데 비해 경동시장은 독자적인 이름을 쓰고 있다. 경동시장은 1960년 공설 시장으로 출발했다. 원래 이 일대는 밭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서울 외곽의 주요 조선인 거주 지역에 인접해 있어서 사람의 이동이 많았다. 철도 개발로 중앙선을 통해 각종 농산물과 광물·임산물 등이 쏟아져 들어오며 시장의 기능이 커졌고, 인접한 청량리시장과 함께 거대한 시장 타운을 조성하게 되었다.
특히 경동시장은 마장동에서 길이 이어져 축산물 시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장은 기본적으로 소매와 도매로 다루는 거의 모든 물건이 다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 서울 시민에게는 몇 가지 특화 시장으로 인식이 박혀 있다. 우선 저렴한 축산물 시장에 약재 시장의 역할이 크다. 한때는 서울의 동대문, 종로6가와 함께 한의원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지금도 전국 약재가 이 시장으로 모여서 팔린다. 서울은 단연 대한민국 최대의 한약재 소비 시장이어서 경동시장의 역할이 아주 크다.
다음으로는 건강식품·식재료 시장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한약재 시장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건강’이라는 테마와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철의 고가 버섯(영지, 싸리, 송이, 능이 등)을 서울에서 가장 싸게, 많이 구할 수 있는 곳도 경동시장이다. 이 역시 약재 시장의 연장선으로 봐야 하며, 인삼과 꿀 등을 많이 취급하는 것으로도 탁월한 시장이다. 또 제수용품을 많이 다루는데, 이는 건나물·생나물 취급으로도 연결된다. 인근 시장에서도 많이 다루지만, 경동시장의 나물 골목은 인기가 높다.
주변에 즐비한 맛집
뭐니 뭐니 해도 경동시장은 대중들에게 맛집 많은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의 감초라고 할 수 있는 꽈배기와 도넛집은 늘 줄이 길다. 한 입 베어 물면 옛날 시장의 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노인들이 주로 많이 사서 추억의 맛으로 인기가 높았는데, 요새는 젊은 층으로 세대교체를 했다. 젊은 세대의 시장 투어는 스타벅스 경동1960점의 인기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경동시장이 매스컴을 타면서 경동시장 주변으로도 사람이 몰리고 있다. 특히 서울약령시의 ‘감초식당’은 원 래 돼지불백으로 상인과 장꾼들에게 사랑받아왔는데, 방송에 나가면서 대기해야 하는 집이 됐다.
시장이 대개 그렇지만, 이 일대의 시장은 특히 냉면류가 유명하다. 중구 오장동과 동대문 일대의 함흥냉면에 견주는 맛이라고 할 수 있는 ‘경동함흥냉면’은 쫄깃하고 가느다란 면발과 칼칼한 양념이 매력적이라 이미 오래전부터 여름이면 노포에 긴 줄이 섰다. 양도 시장답게 많다. 메밀면을 좋아하는 이는 ‘춘천메밀막국수’에 가면 된다. 물막국수는 물론이고 양념장을 잔뜩 넣어 비빔으로도 먹을 수 있다.
맛있게 즐기는 경동시장의 미식
최근 경동시장은 청년몰을 잘 관리해서 맛있고 세련된 신세대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컵밥도 그중 하나. 가볍고 실리적으로 즐기려는 세대가 경동시장으로 몰려오고 있어서 이런 음식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 근처에는 먹자골목이 만들어졌는데, 이 컵밥집 외에도 흥미로운 식당이 하나 있다. 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셰프 옷을 입고 모자를 단정하게 쓴 프로 요리사가 일하는 가게다. 권영수 셰프의 ‘권영수대가전골’이다. 코로나19 시기에 들어와 시장 상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칼국수를 같이 제공하는 만두전골이 주력 메뉴. 상차림이나 맛이 아주 높은 수준이어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각종 고급 호텔과 한일관 등의 유명 식당에서 일한 정통 한식 요리사의 집이다.
복합문화 공간으로 재탄생
경동시장이 최근 서울 시민들에게 화제를 모은 건 단연 한브랜드 커피숍 덕이다. 앞서 언급한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다. 원래 극장으로 사용하다가 폐업한 후 방치되던 공간에 들어섰기 때문에 시장 상인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원래 이 시장 일대에는 오스카극장, 시대극장 등 여러 극장이 있었다. 경동극장도 그중 하나였다. 들어서보니 멀티플렉스 이전의 옛 단관 개봉 극장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 구조를 아는 옛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으로, 새 세대에게는 레트로한 분위기와 시장의 푸근한 느낌을 동시에 맛보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손님들은 과거 극장 내 매점과 영사실이 있던 공간에 들어선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에서 예술적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과거 스크린이 있던 무대 쪽에서 주문을 하고 관객석에 앉아 음료를 즐기게 된다. 많은 자금을 투입한 상업 공간이지만, 문화 공간을 표방하는 새로운 명소가 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시장의 멋, 쇼핑, 소박한 미식, 청년, 전통 그리고 놀라운 커피숍까지 경동시장의 변화는 이제 시작을 알린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물건이면 물건, 음식이면 음식이 모두 풍요로워 시장의 참모습을 알뜰하게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맛이면 맛! 정성이면 정성! 경동시장 맛집
단골손님으로 증명된 맛 ‘골목집’
이름처럼 내부가 골목과도 같은 이곳은 죽과 국수 전문점이다. 35년 동안 변함없는 손맛에 단골이 끊이지 않고, 그 덕에 그날그날 만들어 재료를 소진하기에늘 신선함을 유지한다. 여름철에는 이곳의 콩국수, 열무국수만으로도 무더위를 이길 수 있다.
가격 잔치국수·우뭇가사리 4,000원·팥죽·호박죽 5,000원·콩국수 6,000원
청년몰에 뜬 맛있는 일식 ‘파도식탁’
경동시장 청년몰 ‘서울훼미리’에 입점해 있는 이곳은 초밥, 우동, 매운탕, 덮밥 등 맛있는 일식으로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2022 전국 청년상인 요리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력으로 이미 맛을 보장하며, 늘 신선한 재료로 정성을 다한다.
가격 오늘의 초밥 1만1,000원·매운탕 정식 1만1,000원·미소 연어덮밥 1만4,000원
전골에 우러나는 대가의 진심 ‘권영수대가전골’
요리 대가 권영수의 손끝에서 탄생한 곱창전골, 만두전골 등의 메뉴로 경동시장 내 1등 맛집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전골 국물 한 입이면 그 깊은 맛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판 대가는 여전히 진심을 다해 음식을 만든다.
가격 만두전골 2만8,000원(2인)·곱창전골 3만8,000원(2인)·낙곱창전골 4만8,000원(2인)
건강한 재료, 푸짐한 양 ‘경동컵밥’
신선한 경동시장의 재료를 사용해 건강하게 만드는 컵밥집. 급히 먹어야 하는 인스턴트 컵밥이 아닌, 저렴하지만 푸짐하고 정성이 가득 담긴 컵밥을 제공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 매력적이다.
가격 꼬막장 컵밥 6,000원·명란마요 컵밥 6,000원·새싹참치 컵밥 7,000원
글 박찬일 취재 임산하 사진 김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