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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로수

서울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로수>
2023.05

에세이

자연이 품은 서울

서울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로수

그 변천 과정에서 되새기는 생명을 향한 배려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에서 나무를 심는 건 우선 실용적 필요 때문이다.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며 건강한 생태계를 이룬다는 거시적 목적이 앞서기보다 철 따라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하는 나무를 가꾸어 환경을 아름답게 이루려는 목적이 있다. 봄이면 연분홍 꽃을 화려하게 피우는 벚나무, 가을이면 온 거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가 모두 그런 뜻에서 키우는 경우다. 건축물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조경수로 키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매연과 미세먼지로 뒤덮인 공기를 정화하고 도시 공기에 포화 상태인 탄소를 흡수해 맑은 공기를 생산하는 데에도 나무만큼 효과적인 대책은 없다. 덧붙이자면 한여름 뙤약볕에 달궈지는 도시의 거리 기온을 식히는 데에 나무 그늘만큼 효과적인 대책도 없다. 거리마다 빽빽이 심은 가로수는 결국 사람의 실용적 필요에 의해 우리 곁에 머무르게 된 경우다.

창경궁 돌담길의 양버즘나무

서울의 가로수 변천 과정

가로수 없는 도로는 없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기록으로는 조선왕조실록의 <단종> 편에 대신들이 “큰길 양편에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 나무를 많이 심고 벌목을 금지”하게 해 달라고 임금에게 요구하는 대목이 가로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길가의 나무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심었던 듯하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 흔히 자라던 오리나무와 시무나무의 이름에 담긴 흔적이 그렇다. 오리나무와 시무나무는 이정표로 키웠다. 오리나무는 5리마다 한 그루씩 심은 나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 5리가 4번 되풀이되는 자리, 즉 20리마다 또 다른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를 사람들은 ‘스물’의 옛 글자인 ‘스무’를 따서 ‘스무나무’로 부르다가 지금의 시무나무로 변한 것이다. 시무나무는 한자로 ‘이십리목(二十里木)’이라고도 적었던 나무다.

그러나 서울에 가로수를 본격적으로 심은 건 일제 강점기 때 신작로를 건설하면서부터였다. 그때 서울에는 버드나무 종류에 속하는 미루나무와 수양버들을 주로 심었다. 빠르게 자랄 뿐 아니라 물가에서 잘 자라는 나무여서 한강 변이나 청계천, 중랑천처럼 물 가까운 곳에서 잘 키울 수 있는나무라는 점이 가로수로 선발된 큰 이유였다.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수도 서울 정비 사업이 본격화하던 1970년대에 이르러 서울시에서는 플라타너스로 더 많이 알려진 양버즘나무를 많이 심었다. 양버즘나무는 넓은 잎의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표면에 잔 솜털이 돋아 있어서 매연과 미세먼지의 흡착 효율이 높아 실용적 가치가 높다. 게다가 공해를 견디는 능력이 뛰어나 세계 3대 가로수의 하나일 정도로 세계인들이 도시의 가로수로 많이 키우는 나무다.

그런데 양버즘나무는 실용적 효율에 비해 시민들에게서 환영받지 못할 이유가 여럿 있었다. 우선 나뭇가지를 넓게 펼치며 자라 교통 신호등을 가릴 뿐 아니라 도로변 상가의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양버즘나무를 마뜩잖아 했다. 결국 심한 가지치기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심하게 가지치기한 양버즘나무는 미적 가치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버짐 핀 듯한 줄기 껍질의 흰 얼룩 또한 미적 가치를 떨어뜨렸다.

청와대 입구인 궁정동 길가에 터널처럼 도로 위로 가지를 뻗은 회화나무

서울의 대표적인 가로수가 된 은행나무

시민의 반응을 바탕으로 서울시는 다른 종류의 가로수를 찾아야 했다. 이때 주목받은 나무가 은행나무였다. 서울에는 성균관을 비롯해 이미 오래된 은행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었고, 1971년에 이미 서울시의 시목(市木)으로 은행나무를 정한 바 있다. 은행나무는 양버즘나무에 비해 잎 면적이 작아 공기 정화 능력은 양버즘나무에 못 미치지만, 공해에 잘 버티고 살아남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일 뿐 아니라 가을에 노랗게 물든 단풍 또한 도시 미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에 맞춤이었다.

이때만 해도 은행나무는 고급스러운 나무에 속했기에 당시 부자와 권력자들이 집중해 살던 사대문 안 지역에 주로 심었다. 그때만 해도 발전이 뒤처졌던 강남 지역은 여전히 양버즘나무가 더 많고, 은행나무는 사대문 안 지역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은행나무가 만들어 내는 가을 풍경의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사대문 안에서 시작된 은행나무 열풍은 도시 외곽으로까지 이어졌고, 은행나무는 서울의 대표적인 가로수가 됐다. 실제로 서울시의 약 30만 그루 가로수 가운데 가장 많은 나무는 은행나무다. 그다음으로 양버즘나무, 느티나무, 왕벚나무, 이팝나무를 순서대로 들 수 있다. 다른 종류의 나무로는 모두 1만 그루 미만의 회화나무, 메타세쿼이아, 소나무, 무궁화나무, 칠엽수(마로니에)가 뒤를 이으며, 1천 그루 미만의 튤립나무, 감나무, 느릅나무, 목련나무, 살구나무, 은단풍나무, 가죽나무, 수양버들, 포플러 등이 있다.

한때 인기를 끌며 심었던 은행나무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왔다. 무엇보다 가을에 맺는 은행나무 씨앗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문제였다. 서울시에서는 이에 대한 여러 종류의 묘안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씨앗이 성숙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나무를 냅다 흔들어 씨앗을 미리 채취하는 방법에서부터, 나무줄기 아래쪽에 그물망을 쳐서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동원됐다. 급기야 열매를 맺는 암은행나무를 모두 뽑아내고 수은행나무로 교체하겠다는 대안까지 등장했다.

남산 ‘기억의 터’를 오르는 도로변에 서 있는 예장동 은행나무

청계산 등산로 초입 번화한 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원지동 느티나무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바른길

사실 도시에서 나무가 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사람들은 실용적 이유에서 나무를 심어 키우지만, 역시 또 다른 실용적 이유가 나타나면 그 생명을 앗아가는 데에 가차 없다. 나무가 더 평안하게 오래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데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아무리 사람의 필요에 의해 자리를 옮겨 왔다고는 해도 나무는 분명 살아 있는 생명체다. 암수가 어울려야 살며 후손을 낳고 살아갈 수 있는 건 나무도 마찬가지다.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생명체로, 3억 년 전 화석에서도 발견된다. 가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무렵이면 씨앗을 맺어 흩뿌리는 건 생명의 본성이다. 고약한 냄새는 은행나무가 자신의 씨앗을 다른 포식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생명의 안간힘이다.

은행나무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사람보다 먼저 살던 생명이 나무였다. 도시는 분명 나무가 지어낸 환경을 바탕으로 일군 사람의 보금자리다. 사람들은 무더위를 식혀 주는 나무 그늘이나 미세먼지 흡착 효과, 노란 단풍의 미학적 가치는 쉽게 젖혀 놓는다. 나무가 사람에게 주는 혜택과 즐거움을 주는 시간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시간을 비교하는 게 도시인에게는 이미 어리석은 계산이 되고 말았다.

나무를 온전히 이용하려면 생명체로서 그를 잘 지켜야 한다. 나무가 오래도록 우리 사는 세상을 더 살 만한 곳으로 이루게 하는 바탕은 그의 본능을 온전히 지켜 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바른길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이자 천리포수목원 이사, 대학교수이다.
전국 각지의 나무를 찾아다니며 나무와 관련된 칼럼 연재, 방송, 강연 등을 하고 있다. <나뭇잎 수업>, <도시의 나무 친구들>을 펴냈다.

글·사진 고규홍 일러스트 장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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