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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도 서울의 꿈을 꾸는가

기획 · 이야기가 있는 도시

서울 사람도 서울의 꿈을 꾸는가
2023.05

서울 사람도 서울의 꿈을 꾸는가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학창 시절을 모두 인천에서 보낸 사람으로서 나의 정체성은 인천에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는 인천 사람으로서 언제나 서울을 꿈꿨다. 서울은 마땅히 가야만 하는 어른의 종착지인 것 같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서울의 어디에 산다고 말하면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그가 버스를 타고 다닌다고 해도?지하철역으로 알려달라고 되물었다. 그래야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하철만 알면 아직 서울 밖에 있는 것이다. 버스를 타면 그제야 서울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서울을 그렇게 이해했다. 그런 내가 서울 사람이 되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취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울로 이사 와 살았다. 나는 서울을 홍대, 강남이 아니라 구와 동으로 이해하게 됐다.

드라마 주인공들은 모두 서울에 살았다. 그들은 회사 상사에게 혼나며, 연인을 오해하고, 마음이 못된 사람들에게 호되게 당했다. 그러고는 캄캄한 밤에 여지없이 버스를 타고 창에 기대 훌쩍였다. 나는 그것이 어른의 멋인 줄 알았다. 서울 사람이 된다는 건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버스를 타고 다닌다. 상사에게 혼나거나, 연인을 오해하거나, 마음이 못된 사람에게 호되게 당하는 일은 다행히 아직 없었지만, 그런데도 나는 버스에 타면 창에 기댄다. 휴대전화를 보며 낄낄거리는 날도 있고, 도착할 곳에 있는 음식점이나 카페를 급하게 찾아보는 날도 있고, 지도를 보며 내릴 곳을 빤히 확인하는 날도 있고, 멍하니 음악을 듣는 날도 있고, 옆 사람과 몸이 닿지 않게 바짝 움츠린 채 창밖을 보며 괜히 속으로 훌쩍이는 날도 있다. 서울 사람이 된 것이다. 서울의 지역은 지하철역으로만 이해했는데 막상 서울 사람이 되니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일상이 됐다.

버스에 관한 소설을 쓰며 버스 기사님들과 승객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서울시 버스 노선의 변화를 통해 시민들의 역사를 아카이빙 하는 작업이었다. 젊은 버스 기사와 은퇴를 앞둔 버스 기사, 종점 근처에서 평생을 살며 동네의 변화를 모두 지켜본 할아버지와 취직 때문에 이사 왔다가 취직 때문에 곧 다시 이사 갈 젊은 직장인을 만났다. 그들은 오랜 시간 서울에 살며 버스를 탔다. 그들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과 앞으로의 시절이 모두 서울에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겐 평생의 꿈인 곳에서 그저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봤다.

버스 기사님들은 매일 수백 명의 서울 시민을 태웠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걸 책으로 내주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나를 반가워하셨다. 나는 버스 앞문 바로 옆자리, 일명 ‘조수석’에 앉아 버스 기사님들과 함께 서울을 달렸다. 첫차엔 굳은 얼굴 안에 굳센 기운이 차 있는 분들이 탔고, 막차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 늘어진 분들이 탔다. 기사님들은 첫차에도 막차에도 한결같이 단단했다. 버스의 큰 유리창으로 보면 서울은 검은색이었다가 파란색이었다가 주황색이었다가 다시 검은색이 됐다. 서울은 ‘가만히 있지 않는’ 도시였다. 버스 기사와 승객은 서로의 무례함에 화를 내다가도 작은 다정함에 사르르 녹았다. 나 역시 버스에 승객이 너무 많아 이리저리 치일 때면 바짝 날이 서 예민하다가도, 승객 없이 텅 빈 버스를 타면 괜히 두리번거리곤 했다. 서울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차림의 사람과 매일 함께 버스를 타며 어딘가를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팍팍하게 살면서도 문득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좋은 곳이라며, 그들은 자신의 서울을 따뜻하게 이야기했다.

인천 사람이 서울을 꿈꾸다 서울 사람이 됐다. 지하철역으로 큼직하게만 알던 서울을 이제는 버스 번호를 외우며 대로가 아닌 골목을 걷는다. 나에게도 자주 타는 버스와 자주 내리는 정류장이 생겼다. 꼭 한 번은 가지고 싶었던 서울을 가지고 나니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다음엔 무슨 꿈을 꾸어야 할까. 나는 인천에 살아서 서울이 꿈이었는데, 서울에 사는 사람은 무슨 꿈을 꿀까.


최승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실제 버스 기사와 승객들을 심층 인터뷰하여 소설 <나는 버스를 탄다>를 썼다.

최승희 일러스트 신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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