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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눈으로 본 서울 글자에 담긴 흔적

디자이너의 눈으로 본 서울 글자에 담긴 흔적>
2023.04

에세이

이야기가 있는 도시

디자이너의 눈으로 본 서울 글자에 담긴 흔적

한자 ‘美星’을 변형해 만든 압구정 미성아파트의 외벽 로고타이프

체신부 아이덴티티(1984)의 ‘우체국’ 글자를 바탕으로 확장한 ‘서울용산우체국’

시간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글자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글자가 있다. 사람들은 글자로 소통하고 기록을 남겨 후대에 전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디자인으로 바라보는 시각 디자이너, 특히 서체 디자이너에게 이런 흔적들은 더없는 자산이다. 오랜 기간 한국의 중추 도시였던 수도 서울은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사람이 벌이는 활동 무대가 되었다. 서울 거리에 스며든 다양한 글자에 대해 알고 나면 거리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개인용 컴퓨터가 도입되기 전에는 간판이나 방송 자막 같은 공식적인 글자도 손의 감각으로 제작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것은 ‘쓴 글자’와 ‘그린 글자’로 나눌 수 있는데, 예전을지로의 상가 밀집 지역에 가면 벽면이나 나무판에 간판 제작 장인이 큰 붓을 이용해 직접 쓴 글자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만리동 일대처럼 발전이 더딘 구도심에는 수작업 글자가 많이 남아 있다. 만일 대지 재질이 붓을 사용하기 어렵거나 돌출 간판을 제작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는데, 이런 경우 별도의 도구를 써서 작도한 그린 글자가 쓰였다. 이때 서체를 고려하기보다는 글자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만큼 고딕 일색으로 통일되었다. 획 끝을 둥글게 만든 둥근고딕도 많이 쓰였다. 동네 골목에 하나쯤있기 마련인 옛날 슈퍼 간판을 생각하면 된다.

로고타이프(logotype)는 브랜드명 혹은 회사명을 글자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1970년대 이전에는 기업의 시각적 얼굴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개념이 희박했지만, 이후 기업 아이덴티티(CI)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시작했다. 1974년 OB맥주의 사례를 그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수많은 기업체가 각각 채택한 시각 아이덴티티 속 로고타이프는 기업의 활동과 맞물려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1980년대 중후반 건립된 목동 신시가지의 아파트들은 나무 목(木) 자를 재해석한 심벌을 외벽에 그려 다른 지역 아파트와 차별화 했는데 상당히 특이한 경우다. 한자 ‘美星’을 변형해 만든 압구정 미성아파트의 외벽 로고타이프도 오래 보존되었으면 하는 시각 유산이다. 디자이너에 의한 로고타이프가 시장과 정착하면서 ‘전용서체’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초창기 전용서체는 현재 쓰이는 전용서체와는 약간 다른 개념으로 적게는 두 글자, 많게는 열 글자가량 되는 로고타이프의 디자인 요소를 그대로 적용하여 더 많은 글자를 디자인해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체신부 아이덴티티(1984)의 ‘우체국’ 글자를 ‘서울용산우체국’으로 확장하거나 ‘우편 접수’ 등 창구에 쓸 만한 글자까지 파생시킨 것 이 대표적인 예다. 용산우체국 벽에 붙은 간판은 우체국 서체로는 드물게 큰 크기로 남아 있다.


연대를 유추하게 하는 형제문구 간판에 붙은 여러 기업 로고

한국 최초의 아파트, 충정아파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현판과 간판

서울 거리에 스며든 간판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서울의 시간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간판들이 남아 있다. 동숭동 주택가 한편에 자리한 문구점 형제문구의 간판은 지난 시절 동네 골목 간판의 축소판이다. ‘형제문구’ 자체도 1990년대 이전 제작물로 추정되는 시각 유산이지만 그 옆에 붙은 아그파필름과 제일합섬 등 의 기업 로고는 연대를 유추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단서다. 가끔 슈퍼나 주점 간판을 보면 OB맥주, 크라운맥주 등의 주류 브랜드 로고가 같이 붙어 있는데 비슷한 경우라고 보면 되겠다. 기업은 바뀌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 흔적을 탐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1930년대 지어져 ‘아파트’ 형태를 갖춘 한국 최초의 건물로 인정받은 충정아파트는 어떤가. 존재감과 어울리지 않는 낡고 허름한 모습으로 한편에선 역사성에 흥미를 가진 연구자, 사진작가의 관심을 받고 또 어떤 사람들에겐 마지막 보금자리가 되어 왔다. 도로에 접한 부분은 어색할 만큼 반듯한 일직선 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1979년 도로 확장 시건물 일부분이 케이크처럼 썰려 나간 흔적이다. 연대별로 3가지 서체로 쓰인 출입구 현판이 세월을 말해 준다. 맨 위 쪽 현판이 먼저, 세로 현판이 나중에, 그리고 컴퓨터로 그려진 파란색 간판이 마지막에 부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으로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디지털 폰트 디자인이 다양하고 획기적으로 변화하였는데, 개성이 돋보이는 옛 글자들은 디지털 폰트로 제작되기도 한다. 을지로 일대의 붓글씨 간판에서 착안한 배달의민족 을지로체, 한국 현대사 격동기에 정치 포스터나 플래카드에서 볼 수 있었던 두꺼운 글자에서 따온 산돌 격동고딕 등이 그렇다. 재미있는 점은 가게 창문에 시트지로 붙은 투박한 글자나 입간판 글자에서 힌트를 얻어 디자인된 폰트를 보고 상인들이 비슷한 위치에 그대로 쓰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수작업 글자 자리에 들어간 비슷한 디자인의 디지털 폰트. 미처 예측하지 못한 글자의 순환이다. 많은 이의 생활 무대 인 서울은 살아 있는 거대한 글자 박물관과도 같다. 시대가 변하면서 유행이 바뀌고 도구가 바뀌면 또 어떤 글자가 도시를 채워 나갈지 즐겁게 지켜볼 일이다.


한동훈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연구한다. 여러 서체를 개발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강의와 저술도 진행한다.
월간 <디자인> 등에 기고했고,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펴냈다.

글·사진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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