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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탐방 · 취향의발견
박찬일의 맛있는 시장 이야기
실향민들을 달랜 ‘남대문시장’ 고향의 맛
2023.02

실향민들의 터전, 남대문시장

시장은 물건이 모이고 인정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다 보니 음식도 모인다. 그래서 ‘시장음식’이라는 장르가 만들어졌다. 서울은 조선시대 이후로 시장의 도시였다. 사람만 서울로 가는 게 아니라 전국 팔도의 물건도 서울로 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장 중 하나가 남대문시장이다.

서울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인구가 크게 늘었다. 특히 6·25전쟁 이후에 폭발했다. 오죽하면 유명한 소설가 이호철(1932~2016)은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을 썼을까. 이 소설이 나올 즈음이 1966년이었는데 그때 이미 서울은 인구가 폭발하고 있었다. 그들이 먹고사는 터전 중 하나가 시장이었다. 전국의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왔고, 특히 따로 연고가 없던 이북 실향민이 모인 곳이 서울하고도 시장이었다. 가장 많은 수가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광장시장)등을 무대로 생계를 이었다.

원래 남대문시장은 종합시장이면서 도소매를 겸하는 대형시장이다. 상인도, 장꾼도 넘친다. 그들이 먹어야 하니 음식도 잘될 수밖에 없다. 보통 시장의 음식은 골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시장은 품목별 상권마다 구획이 지어지고, 그 사이사이 숨겨진 공간과 핏줄 같은 골목에 식당이 들어선다. 사람들 눈에 잘 안 띈다. 목 좋은 곳은 가겟세가 비싸므로 음식은 안으로 숨어들어 있다. 남대문시장은 음식 맛있기로 유명한 시장이기도 하다. 회현역 5번 출구를 기준으로 설명해 본다.

애환과 배고픔을 함께해 온 노점음식

5번 출구에서 나와 바로 오른쪽에 남북이 이어지는 시장대로가 형성되어 있다. 원래 이 길이 온갖 노점의 산실이었다. 노점의 절반 정도는 음식이 차지했다. 간단히 서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이 길에 다 있었다. 어묵, 과일, 여름에는 냉차와 빙수, 떡볶이와 순대, 튀김이었다. 노점 정리로 이런 음식을 파는 상인들은 세포처럼 골목 안으로 들어갔고,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이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 초입에 칼국수 골목이 보인다. 적어도 60년 이상의 역사다. 원래부터 칼국수 골목은 아니었고, 온갖 음식을 다 팔았는데 점차 칼국수와 보리밥을 중심으로 메뉴가 고정된 것은 40년 정도라고 한다. 이 골목은 특이하게도 마치 하나의 독립된 건물처럼 보인다. 바람 막는 임시 문이 달려 있고 안에 들어서면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지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골목이다. 노천의 골목 좌우로 노점 같은 국숫집이 들어섰는데 그 위에 지붕이 얹어지다 보니 마치 건물처럼 보일 뿐이다. 말하자면 비바람 다 맞던 노점이었고, 현재도 사실상 노점에 가깝다. 이 일대는 6·25전쟁 이후에 서울 명소이기도 했다. 바로 부대찌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꿀꿀이죽’이 이 부근에서 팔렸다고 한다. 꿀꿀이죽이란 미군부대에서 나온 잔반과 시장 안에서 조달한 채소 등을 넣고 가마솥에 푹 끓여서 양은그릇에 퍼담아 팔던 음식이다. 배고프던 시절의 상징 같은 시장 음식이었다. 이 음식이 점차 고급화(?)된 것이 부대찌개라는 설이 유력하다.

남대문시장 대표 메뉴인 갈치

남대문시장은 과거 지번으로 중구 남창동 49번지에 위치한다. 남창동이란 이름에 역사가 있다. 조선시대 조달청에 해당하는 선혜청의 남쪽 창고가 있던 지역이라 남창동이라 불렀다. 그 위 북쪽이 바로 북창동이다. 창(倉)이란 창고란 의미다. 조선의 한양에서 쓰던 물건이 보관되던 창고였으니 아주 흥성한 동네였다. 남대문시장은 병자호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 발달하기 시작한 칠패시장을 원조로 본다. 칠패란 현재의 중구 봉래동으로 이 시장이 남대문시장으로 넘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칠패시장은 현재 없으며, 그 자리만 표석으로 남아 있다.

남대문시장은 오랫동안 건어물이 유명했다. 건어물은 과거 중요한 음식 재료였고, 화폐로 통용되기도 했다. 북어한 쾌에 면포 얼마 하는 식으로 물물교환의 기준이었다. 이 밖에도 과거 냉장 시설이 부족했으므로 온갖 생선이 말려서 유통됐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현재의 갈치골목 근처다. 몇몇 가게가 아직 영업하고 있다. 갈치골목은 5번 출구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중간쯤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본디 여러 잡화, 건어물을 팔던 가게들이 있었다. 이 골목에 몇몇 가게가 밥을 팔았고 70년대에 싼 생선이었던 갈치를 주력으로 하는 가게가 인기를 끌면서 현재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음식을 팔았는데 갈치가 히트치면서 주 메뉴가 대부분 갈치다. 칼칼하게 양념해서 양은그릇에 팔팔 끓여 나오는 음식은 바쁜 장꾼들에게 하나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땀을 흘리며 한 그릇을 비우면 속이 얼얼하고 개운해진다.

그리움과 고단함을 달랜 고향의 맛

남대문시장은 앞서 실향민들이 모여서 먹고 살아온 곳이라고 밝혔듯이, 그들은 일가붙이 없는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시장을 선택했다. 시장에서는 비슷한 고향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장사를 해서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들의 고향 음식을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집도 많았다. 보통 서울의 오래된 시장 골목에 이북음식인 빈대떡, 냉면 가게가 많은 것이 그 증거다. 남대문시장에도 그런 가게가 많았는데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부원면옥 정도가 이북 냉면의 업을 잇고 있는데, 이 가게는 평안도 출신 실향민이 70년대에 양도하여 타 지역 출신 인사가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빈대떡과 평양냉면 등 여전히 이북의 맛을 내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남대문시장은 여전히 성업하고 있다. 한때 24시간 불야성을 이루기도 했다. 시장 앞 대로변에 물건 떼어가는 지방행 관광버스가 꼬리를 물기도 했고,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이제는 한결 다른 풍경이지만 여전히 시장의 맛은 그대로다. 인정과 넉넉한 인심의 시장 음식을 체험해 보시기 바란다.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도 든든한
남대문시장 맛집

겨울엔 뜨끈한 어묵이지 ‘장우손 부산어묵’

100% 생선살로 만든 명품 어묵과 추위를 달래는 뜨끈한 어묵 국물, 부산 물떡이라 더 쫄깃한 떡볶이, 바삭바삭한 새우튀김 등 겨울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메뉴들로 가득한 곳이다. 어묵의 경우 첨가물을 넣지않아 하얀 것이 특징이고 순한 맛/매운 맛을 골라먹을 수 있다.

가격 어묵꼬치 1,500원·떡볶이 4천원·새우튀김 1,500원
주소 중구 다동길 43
문의 02-319-3777

갈치살이 살살 녹는 ‘중앙갈치식당’

남대문시장 갈치골목에서 많은 이가 손꼽는 단연 최고 맛집이다. 갈치조림을 시키면 폭신한 계란찜과 바삭바삭한 갈치 튀김이 함께 나온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은 새빨간 갈치조림. 비주얼만큼 강렬한 매콤함도 잠시, 입에서 살살 녹은 갈치살에 자꾸만 손이 간다.

가격 갈치조림 1만2천원
주소 중구 남대문시장길 22-12
문의 02-752-2892


담백한 국물이 일품 ‘남대문손칼국수냉면’

35년 전통의 손칼국수 전문점으로 바지락칼국수와 닭칼국수가 메인이다. 남대문시장 초입에 있어 찾기 쉽다.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국물에 한 번, 직접 담근 겉절이 김치에 두 번 반하는 맛집이다. 칼칼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도로 준비된 양념장과 청양고추를 추가하면 된다.

가격 바지락칼국수 8천원·닭칼국수 8천원
주소 중구 퇴계로 53-1
문의 02-753-3022


줄 서서 먹는 인생 호떡 ‘남대문명물호떡’

거리에 퍼지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나도 모르게 줄을 서게 되는 그야말로 남대문시장의 ‘명물’ 호떡이다. 1,5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간식이라기엔 미안할 정도의 푸짐한 양이 끼니로 때워도 될 정도. 과일과 야채로 맛을 더한 간장소스를 찍어 먹는다.

가격 야채호떡·꿀씨앗호떡·팥호떡 1,500원
주소 중구 남대문로 12

박찬일 취재 배성희 사진 박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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