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주웠다, 내 날개였다.” 류시화 시인의 ‘마음 챙김의 시’의 한 구절이다.
마음보다는 언제나 몸이 먼저였다.
하지만 지금은 떨어진 날개처럼 부서진 마음을 먼저 챙기려는 마음 챙김의 시대다.
상실을 경험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상담
점점 길어지는 팬데믹과 전쟁, 치솟는 물가와 유례없는 불경기는 개인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친구와 동료들은 역을 떠난 열차처럼 점점 멀어지고, 흩어진 서로의 마음은 쉽사리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은 큰 트라우마를 남긴다. 김민재 씨는 최근 불면증이 생겨 정신과 전문의를 찾았다. 친근하던 공간들이 갑자기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고 한다. “동떨어진 곳에 혼자 고립된 느낌이었어요. 아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지요. 다른 사람들과 슬픈 감정, 상실감을 공유하면 도움이 된다는 전문의의 의견을 들었어요. 이런 경험을 한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말이 의외로 슬픈 마음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 그리고 위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방관, 경찰관, 의료 인력, 주민들을 위한 재난 심리 지원 카페인 ‘마음 쉼 카페’가 용산구에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래는 일반 카페였는데, 심리 상담 카페로 기능을 임시 전환해 11월 말까지 운영한다고 했다. 눈이 편안해지는 그린 계열의 인테리어와 함께 “함께 위로해요”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다. 내부는 몇 개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안내된 곳은 아로마테라피 룸이었다. 아로마테라피 전문가와 함께 수많은 아로마샘플 중 마음에 드는 세 가지를 골랐다. 직접 고른 레몬그라스, 제라늄, 라벤더를 레시피에 따라 블렌딩하자 나만의 향기가 완성되었다. 전문가는 “우울증 개선과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는 향을 고르셨어요”라고 말했다. 아로마테라피 룸을 나오자 상담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불행했던 기억 대신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려보세요. 눈물을 지울 수 있는 건 시간과 웃음입니다.” 심리 상담사는 ‘스스로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할 것을 이야기했다. 그 말이 참 따스하게 다가왔다.
트라우마는 쉽게 알아채기 힘들 때도 많다. 이태원 참사를 직접 목격했거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간접 목격했다면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1577-0199)’로 문의해보자. 정신전문 의료 기관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특별심리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서울시 각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유가족을 위한 마음 건강검진 서비스도 제공한다. 청소년의 마음 건강을 위해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02-1388)는 24시간 문을 열고 있다. 이제 다친 마음의 문을 닫는 대신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보자.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친구들이 서로 누가 가장불행한가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 아빠는 학생주임이야.” “나는 반지하에 살아.” 동룡이와 덕선이가 서로의 불행함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은 왜 지금도 아른거릴까.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나누던 드라마 속 친구들과 달리 2022년의 우리는 각자 아픔을 숨긴다는 것만 다를 뿐. 아픈 마음은 더 이상 개인의 몫이 아니다.
이제는 마음에 쓴 심리적 마스크를 벗을 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함부로 사용해오거나 방치해온 ‘마음 건강’을 검진해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울시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심리 상담의 문턱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블루터치’나 ‘마음안심버스’도 그 중 하나다. 블루터치는 마음 건강을 부쩍 돌보기 시작한 서울시민을 위해 서울시가 만든 정신 건강 통합 플랫폼이다. 블루터치를 통해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마음안심버스는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음안심버스 정류장에서 전문가에게 트라우마 및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버스다. 버스는 스트레스 검사, 안정화, 집단 프로그램 및 개인 상담을 하는 공간으로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서울광장 앞에 멈춘 마음안심버스에서 상담을 받고 나온 유진희 씨는 “버스를 타고 가벼운 여행을 떠나듯 마음안심버스를 타고 나도 몰랐던 내 마음속으로 탐험을 떠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청년마음건강 지원 사업을 통해 구직난으로 인한 우울증을 개선하고 최근 취업에 성공한 박승훈 씨는 “마음도 돌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앞으로 나를 돌보는 일에 더욱 책임감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그의 베스트셀러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항상 신나고 항상 들떠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오해했기에 우리는 소외됐다. 이제 자기만의 기준으로 삶을 살며 자신을 흡족하게 하는 흡족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행복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진정한 행복은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다. 우리는 그동안 마스크 없는 세상을 꿈꿔왔다. 야외에서 얼굴의 마스크는 벗었으니 이제 심리적 마스크를 벗을 때가 아닐까.
정한솔
“나를 돌보는 일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기.”
연일 계속되는 뉴스 보도와 SNS의 자극적 영상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행복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마음안심버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서 기운을 얻기 위해 가벼운 여행을 다녀오려 한다.
홍인하
“자신의 기분을 북돋을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좋은 향기를 맡으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 쉼 카페에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마음을 다친 분들,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그들만의 향을 찾도록 제안하고, 향을 통한 심리 치유에 도움을 주고 있다. 기분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걸 기억하고, 모두 트라우마를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안정화 기법 안내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안정화 기법을 안내해드립니다. 다음 순서에 따라 호흡 조절 연습을 해보세요.
1
조용하고 안락한 장소에서 편안한 자세로 실시합니다.
2
한 손은 가슴 위에, 다른 한 손은 배꼽 위에 올리고,
되도록 배 위의 손만 오르내리도록 하면서
호흡을 합니다. 즉 가슴은 가만히 두고 배로 숨을 쉽니다.
3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속으로 숫자 ‘1, 2, 3’을 세고, 내쉬면서
‘편안하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4
몸의 긴장을 풀고 부드럽게 호흡하면서 평소 정상적인 호흡 횟수와 깊이를 유지합니다.
무리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5
호흡하면서 배 위의 손에 정신을 집중합니다.
※ 출처: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 <비대면 사례 관리 워크북> ‘정신 건강 편’
서울시가 함께하는 마음 챙김· 마음 돌봄
마음안심버스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서울시민의 심리 상담 및 치유를 위해 올해 3월부터 도입한 버스. 자치구별로 단체 예약을 받아 이동한다. 스트레스나 우울·불안 등 자신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으며, 정신 건강 전문가가 들려주는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블루터치 플랫폼을 통해 찾아가는 마음안심버스 서비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정신 건강 통합 플랫폼 ‘블루터치’
블루터치는 서울시 정신 건강 통합 플랫폼으로 정신 건강 정보, 자가 검진, 자가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내 마음 건강 알아보기, 생애 주기 및 정신 건강 유형별 맞춤형 서비스 등 다양한 심리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문의 blutouch.net
서울시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이태원 참사와 같은 예측하지 못한 사고를 포함해 다양한 재난(화재·풍수해 피해 등)에 대한 전화·화상·대면 심리 상담을 무료로 지원한다. 각종 재난으로 심리적 충격을 받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전문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전문 병원으로 연계해준다.
문의 02-2181-3107
서울시 청년마음건강 지원 사업
만 19세 이상 34세 이하의 청년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심리 정서를 지원하기 위한 사업. 일반 심리 상담 및 정신 건강 관련 진료에 대한 상담은 물론, 자립 준비 청년이나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 방문자 등에 대한 상담도 진행한다. 기본 10회(주 1회 3개월간) 지원 가능하며, 사후 검사 결과에 따라 연장도 가능하다.
글 임지영 사진 한문현, 김규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