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고단함을 잊고, 허기를 채우다
서울은 골목의 도시다. 조선이 정도(定都)하기 전 이미 골목이 생겼고, 조선 500년의 긴 시간을 지나 일제강점기, 해방과 도시화는 골목 시대를 만들었다. 골목은 시간이 응축된 공간으로, 시민의 기억이 쌓인다. 응암동 감자국거리, 감자탕골목도 그런 가치가 있다.
응암동은 딱히 서울 역사에서 큰 기록이 없다. 1949년 경기도에서 서울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도시의 외곽을 떠받치는 주거지역으로 떠올랐다. 특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인구를 수용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래서 시장이 발달했고, 인구가 넘쳤다. 그즈음 응암동에서는 감잣국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 같다.
“사장님, 이곳이 감잣국으로 유명해진 게 언제입니까?”
“1980년대 후반부터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리된 듯해요. 그때 자정부터 술집이 영업금지였으니까 이런 허름한 감잣국집에 사람들이 몰려와 몰래 술을 마시곤 했어요.”
일종의 반항이랄까? 도시는 이미 성장·팽창했으며, 시간이 곧 돈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소시민의 시간은 24시간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정에 영업을 끝내라니 반발이 심했다. 군사정권의 힘에 사람들은 소심하게 몰래 숨어들어 술을 마시는 것으로 저항했는지도 모른다.
“벌금도 많이 내고 그랬어요.(웃음) 우리 집 말고도 다들 그랬죠.”
“왜 감잣국을 그리 먹었을까요?”
“그때 먹을 게 뭐 있어요. 배부르고 싸고 여럿이 둘러앉아 먹기 좋고…. 감자탕 냄비 가득 뼈고기 올리고, 졸아들면 육수 부어가며 그렇게들 먹었지요.”
감자탕? 아니 감자국!
이 동네에서는 감자탕이라고 하지 않는다. ‘감자국’이다. 왜 그럴까? 이유를 추적해봐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다만 필자가 취재하고 기억하기에는 1960~1970년대에 감자탕이라는 이름 대신 ‘감자국’으로 팔렸기 때문이다. 황석영이 쓴 1970년대 공전의 히트작 <어둠의 자식들>에서도 ‘감자국’으로 쓰고 있다. 워낙 별 볼일 없는 서민 음식이었는지라 1990년대까지는 언론에 감자국이든 감자탕이든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돈암동에서 1958년부터 시작한 서울 최고(最古) 감자탕집 상호명이 ‘태조감자국’이란 점을 떠올려보면 ‘감자국’에서 ‘감자탕’으로 바꾸어 불러온 것 같다.
“‘탕’이 붙으면 더 비싸고 좋아 보이잖아요.” 시골감자국의 이영옥 사장이 아주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맞다. 많은 음식이 시절의 변화에 따라 국에서 탕으로 변했다. 국보다 탕이 더 비싸 보이고 왠지 강하게 느껴진다. 갈비탕도 원래는 갈빗국이었다. 1970년대에 필자는 이 일대 백반집에서 ‘감자국’이란 표현을 봤다. 그냥 밥 파는 식당 겸 대폿집인데 ‘감자국 개시’라고 밖에 써 붙여놓은 것이다. 그때 나도 ‘감잣국을 굳이 식당에서 판다고 왜 광고를 하지?’라고 생각했다. 감잣국은 당시 감자를 채 썰어서 기름에 볶은 후 끓인 국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먹는 술안주이자 해장국으로서 감잣국은 얼큰한 육수에 큼직한 돼지 뼈와 숭덩숭덩 썬 감자가 들어간 현재의 감자탕과 같은 것이었다.
“푸짐하고 싸서 인기가 높았어요. 혼자 먹는 감잣국도 있었고, 아무래도 여럿이 먹는 음식으로 바뀌어갔죠. 우리 가게는 처음에 한 냄비에 3000원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감자가 쌌다. 돼지 뼈도 아주 쌌다. 지금은 전국적인 인기 음식이 되어서 뼈가 비싸다. 소뼈보다 비싸단 말도 나온다. 격세지감이다. 국산은 훨씬 인기 있고 비싸다. 목뼈, 등뼈를 섞어야 먹을 게 많은데, 그러면 더 비싸진다. 목뼈는 더 고급이다.
“푸짐하고 싸서 인기가 높았어요. 혼자 먹는 감잣국도 있었고,
아무래도 여럿이 먹는 음식으로 바뀌어갔어요.”
응답하라, 1997 응암동 감자국거리
응암동에 감자국거리가 형성된 건 1970년대다. 그 이유는 아마 도축장 때문인 것 같다. 응암동에는 소·돼지 도축장이 있었고, 근처에 온갖 요릿집이 생겼다. 응암동이 돼지갈비와 감잣국으로 유명한 것은 이 때문이다. 소는 비싸서 사대문 안에 넘겼고, 값싼 부산물인 돼지갈비(당시엔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 감잣국, 순대 등이 성했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지금 시골감자국은 가격이 많이 올랐다. 3만원대에서 4만원대 한다. 개업 당시인 1980년대에 비해 10배 올랐다. 최근 재료비와 노동비용 상승 등이 가격 인상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주인장의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한몫한다.
“그래도 뼈는 다 국산 쓰고, 우거지도 직접 손질하는 등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듭니다.”
한 숟가락 떠먹어본다. 이 탕을 한창 먹던 1990년대로 시간을 돌려놓은 것 같다. 한 냄비로 재탕해가며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던가.
감잣국 맛이 달다. 뼈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맛, 달큼한 살코기. 뼈에 붙은 고기가 맛있다는 건 한국인의 오랜 관습이다. 갈비도 그런 면에서 유행했다고 할 수 있다. 뜯는 재미랄까, 뼈에 붙은 고기는 대우받는다. 감잣국 뼈도 저절로 살이 떨어질 정도로 푹 익힌 게 진짜다. 이 집 감잣국이 그렇다. 감잣국은 양을 많이 잡아 푹 끓여야 제맛이다. 뼈에서 골수가 빠지면서 더 깊고 진한 맛이 난다. 여기에 감자의 전분기가 섞이고, 우거지 맛이 더해지면서 희한한 맛의 조화를 이룬다.
뜨끈한 국물에 든든한 고기가 주는 추억
“옛날엔 소주를 잔으로도 팔았어요. 반병도 팔고. 응암동은 서민 동네였으니까.”
1인분을 없애지 않고 유지한다. 감잣국집은 원래 해장국으로 출발한 흔적이 있다. 해장국 먹으면서 소주 반병 마시는 서민이 많았다. 먹다 보니 이 감잣국에는 콩나물이 들어 있다. 국물이 진하면서도 시원한 이유를 찾았다. 옛날에 감잣국이 해장국이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을 터.
이 동네 감잣국집은 현재 네 곳 정도가 영업 중이다. 경기 침체로 가게가 하나둘 문을 닫았고, 무엇보다 다른 지역에도 감잣국집, 감자탕집이 많이 생기면서 손님들이 이 동네까지 굳이 안 오는 것이다. 특히 24시간 문을 여는 호황기의 열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촌, 연신내 등지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2차, 3차 하는 분위기가 없어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응암동 감자국거리는 버티고 있다. 지금 서울시민이 그러하듯. 좋은 날이 또 오겠지, 그런 기대로 살아간다.
술 당기고, 밥 당기는 최고의 한 끼 감잣국, 감자탕, 뼈해장국 맛집
날씨가 추워질수록 생각나는 음식으로 감자탕만 한 것이 있을까?
올겨울, 한 입 뜨는 순간 후끈하게 몸보신 되는 각양각색 뼈해장국을 맛보자.
가마솥 통닭의 원조 #시골감자국
얼핏 매워 보이지만 국물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시원하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응암동 감자국거리의 터줏대감으로 국산 돼지 등뼈와 목뼈는 물론, 국내산 재료로 엄마 손맛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맛집.
주소 은평구 응암로 174 대림시장 입구
문의 02-302-8484
반세기 전통 #일미집
처음 작은 냄비에 담겨 나오는 감자탕에 실망했다면, 한 입 먹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일 것. 감자탕 단일 메뉴로, 맛 또한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며, 살코기를 발라 먹은 후 추가하는 라면 사리 역시 일품이다.
주소 용산구 후암로 1-1
문의 02-776-0670
고소 담백 든든 #콩마루감자탕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를 사용하는 이곳은 새하얀 콩비지가 우거지 감자탕 위에 듬뿍 올라가 침샘을 자극한다. 구수한 콩국과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의 감자탕이 만나 한 끼 식사로 든든하다.
주소 강북구 한천로 1128
문의 02-991-5568
칼칼한 묵은지 #대문안감자탕&설렁탕
족히 김치 반 포기를 올려 내는 이곳의 묵은지감자탕은 칼칼하고 진한 국물과 넉넉한 우거지가 일품이다. 인근 학생들의 든든한 한 끼로, 저녁이면 가족들의 외식 장소로도 사랑받는다.
주소 강서구 강서로 303
문의 02-2664-7755
술 없는 감자탕 #청실홍실
미식가로 소문난 성시경과 신동엽이 추천하기 전부터 서래마을의 맛집으로 통한 이곳은 식사를 위한 감자탕을 선보인다. 넉넉하게 한 그릇 담겨 나와 백반집 중 최고 감자탕임이 틀림없다.
주소 서초구 서래로10길 9
문의 02-535-2544
파김치의 힘 #파이팅감자탕
감자탕의 변신은 그야말로 무죄다. 그 범인이 알싸한 대파김치라면 더더욱 그렇다. 잡내 없이 두툼한 살점이 붙은 돼지 뼈가 뚝배기 한가득 나오고, 우거지와 파김치가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낸다.
주소 강남구 선릉로89길 13 지하 1층
문의 02-556-1118
※ 맞춤법은 ‘감잣국’이 올바르나 거리명과 상호명 등은 ‘감자국’으로 표기했습니다.
글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