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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는 서울

기획 · 서울 옛 이름

다리를 건너는 서울
2022.11

서울에는 크고 작은 다리가 많다. 한강을 건너는 대교부터 청계천을 잇는 다리까지
다양한 크기와 매력을 지닌 다리에서 유래한 이름이 붙은 서울의 동네로 떠나봤다.

신교동 - 종로구

종로구에 속한 신교(新橋)동은 북쪽으로는 청운동, 동쪽으로는 궁정동, 남쪽과 서쪽으로는 옥인동과 접해 있다. 원래 새다릿골이란 지명이었는데, 1894년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교로 바뀌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교의 일부가 신교동이 되었다. 신교라는 지명은 신교가 있었다는 데서 비롯했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선희궁 동쪽에 신교가 있었으며, 이는 1830~1864년에 가설한 것으로 추정한다. 신교는 처음에는 새다리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마을 자체를 새다릿골로 부르다가 갑오개혁 때 한자인 신교로 바꾸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 이야기 하나 더

현재 신교동에는 선희궁 터만 남아 있으며, 선희궁은 궁정동 내 위치한 칠궁으로 옮겼다. 칠궁은 조선의 왕들을 낳은 친어머니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목조건물인 선희궁은 칠궁의 다른 제단에 비해 화려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영빈 이씨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선희궁과 동쪽의 신교.

관수동 - 종로구

종로구 관수(觀水)동은 북쪽으로는 종로3가, 동쪽으로는 장사동, 남쪽으로는 중구 수표동·입정동, 서쪽으로는 관철동·체부동과 접해 있다.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 때는 입동, 소립동, 비파동, 모곡동, 상판동 등이 관수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관수동이라는 지명은 융희 4년 청계천 위에 가설한 관수교라는 다리 이름에서 비롯했다. 관수교는 청계천의 준설 사업을 위한 상설 기관인 준천사(濬川司, 지금의 관수동 152·153번지 일대 위치)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청계천의 유수를 관망한다는 뜻이 담겼다.

+ 이야기 하나 더

일제강점기에는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였다. 최근에는 노후·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관수동 107번지 일대를 정비 구역으로 지정했다. 열악한 도로 환경과 노후 건축물 내 안전사고 우려가 조금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청계천 복원 때 전통 한옥의 대청 양식을 도입해 아치교 형태로 건설한 관수교.

서교동 - 마포구

마포구 서교(西橋)동은 동쪽의 상수동과 하수동, 서쪽의 망원동과 성산동, 남쪽의 합정동, 북쪽의 동교동·연남동과 접해 있다. 옛날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던 개울이 여러 갈래로 흐르던 지역으로, 주변에 작은 다리가 많이 놓여 있어 마을 이름을 서쪽 잔다리라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 작은 다리를 뜻하는 잔다리를 한자로 고친 것이 세교(細橋)이고, 그중에서도 서쪽에 있다 하여 서교가 되었다. 한강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작은 다리가 있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양화나루로 가는 길목에 한적한 채소밭이 있는 구릉지대였는데,1957년 서교 택지 정리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 이야기 하나 더

서교동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413호로 지정된 ‘최규하 대통령 가옥’이 있다. 1972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직접 건축해 거주한 가옥으로, 생전의 검소하던 생활상과 유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서쪽의 작은 다리와 한적한 채소밭.

류창희 일러스트 김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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