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시장의 터줏대감, 통닭
“이 골목이 유명한 닭전이었어요. 여기서 통닭이 시작된 거죠. 나는 청량리에서 한평생을 살았거든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안경자(77) 씨가 말한다. 젊은이 못지않은 빠른 걸음에 기억력도 선명하다. 닭 잡아 팔며 아이들 공부시켰고, 이제 일선에서 물러날 만도 한데 여전히 매장을 지킨다.
청량리시장을 검색하면 여러 시장이 결합되어 있다. 청과물시장, 전통시장, 도매시장에 경동시장까지 여러 상권이 겹치면서 존재하는, 그야말로 서울에서 가장 큰 시장 권역이다. 심지어 길 건너에는 수산시장도 있다. 이러한 청량리시장은 요즘 사람들에게 오래되거나 숨은 맛집이 많은 시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에 오면 사지 못할 게 없고, 사 먹지 못할 게 없다고들 한다. 통닭 가게들은 그 가운데 곧고 너른 골목을 차지하고 있다.
“원래는 생닭을 잡아 팔았지. 가까운 양평군 산음면에 달걀 부화장과 양계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닭을 받아다가 팔았어요. 처음엔 아주 큰 닭이었어. 한 7~8kg씩 나가는. 그러다가 1970년대에 빨리 크게 자라는 브로일러 닭을 도입하면서 닭 시장이 달라졌어요.”
브로일러(Broiler)는 육용 전용 닭을 말한다. 1970년대에 유행하기 전에는 산란계와 육용계의 구분이 별로 없었다. 브로일러가 대세가 되면서 빨리 길러서 먹는 육용 닭으로 알을 낳는 전문 닭과 나뉘었다. 현재 우리가 먹는 닭은 대부분 브로일러종이다.
대한민국 치킨의 원조는 나야 나
닭 판매의 산 역사이자 청량리시장 닭전에 통닭을 선보인 이가 바로 안경자 씨다. 지금은 6평짜리 작은 가게 앞에 개방된 형태로 튀김대를 놓고 닭을 튀긴다. 기름솥 3개가 동시에 끓고, 주문이 들어오면 막내딸이 닭을 직접 튀겨낸다. 10호 닭을 토막 쳐서 튀긴다. 닭은 무게에 따라 8호, 9호, 10호, 11호 식으로 번호를 매긴다. 10호는 대세이고, 더 작은 닭은 두 마리를 한꺼번에 파는 닭집이나 브랜드로 팔려나간다.
“이 골목에 있는 일고여덟 집이 닭을 튀겨 팔아요. 내 기억에 1980년에 접어들어 닭을 여기서 바로 잡지 마라, 그런 정책이 생겼어요. 그래서 닭을 받아다 팔게 됐지. 특히 내장과 닭발을 많이 팔았는데, 포장마차 하는 분들이 몇 관(1관은 3.75kg이다)씩 사가곤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옛날만 못해요.”
축산물 취급에 관한 법률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닭을 파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이른바 냉장 라인으로만 닭을 팔 수 있게 됐다. 가게에서 도축도 못 하게 됐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청량리시장은 원래 닭을 정말 많이 팔았다. 떠들썩한 닭전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덕분에 아마도 서울에서 제일 싱싱한 닭을 만날 수 있는 시장 중 하나일 것이다. 닭발과 내장도 싱싱한 놈을 구해가려는 손님들로 바글거린다. 알집과 간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옛날에 가난한 사람들이나 대학생은 고기 먹기가 쉽지 않았지. 우리 골목에 와서 난전에 앉아 튀긴 닭을 먹었어요. 이쪽에 대학이 많거든요.”
경희대, 서울시립대, 한국외대,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등 몇 킬로미터 반경에 대학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청량리 시장은 많은 사람에게 추억을 만들어준 장소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통닭 붐이 일면서 기름솥을 놓고 닭을 튀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닭을 그대로 기름에 넣어 튀겼다. 껍질이 바삭한 옛날 통닭이다”
사람이 모이고, 시장이 생기고, 맛집이 성행하고
청량리시장은 원래 서울 동대문 밖 인구가 많은 지역에 생겨났다. 서울 인구는 사대문 안의 수용 한계에 다다랐고, 그 때문에 청량리는 이미 조선 시대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인구가 늘어나던 지역이었다. 버드나무가 많아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하여 청량사라는 이름의 절이 있었는데, 청량리(淸凉里)라는 지명은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 시대 도성에 채소를 공급하던 배추와 미나리밭 자리가 현재의 시장 터다. 현재 우리가 먹는 김장용 통배추의 역사에는 꼭 이 일대 이야기가 나온다. 중앙선과 경춘선의 주요 역으로 청량리역이 생기고, 청량리시장이 형성되면서 크게 발전했다. 해방 후 지역 주민의 요구에 따라 생긴 이 시장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지금도 옛 공간과 명성, 물목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넉넉한 인심으로 푸짐한 접시
1970년대까지는 산 닭을 취급했으므로 튀김 닭은 이 골목에 없었다. 1980년대에 통닭 붐이 일면서 기름솥을 놓고 닭을 튀기게 되었다. 대략 40년 언저리의 역사다. 처음에는 닭을 그대로 기름에 넣어 튀겼다. 껍질이 바삭한 옛날 통닭이다. 점차 통닭에 파우더를 바르거나 현재의 걸쭉한 물반죽을 바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곳 골목의 통닭집들은 대동소이한 과정을 거쳐 닭을 튀긴다. 반죽을 얇게 발라 닭의 맛과 무게를 살리고, 떡·고구마·고추 등을 함께 튀겨 지루함을 덜고 전체 양을 늘린다. 곁들이는 무도 옛날식으로 담가서 낸다.
“처음엔 통닭 한 마리에 2000원 했을 거야. 자꾸 오르다가 요새는 1만8000원까지 됐고.”
안경자 씨의 손을 보니 손가락이 부어 있다. 관절염이 생긴 것이다. 그래도 그이는 일손을 쉬지 않는다. 왠지 시장 상인의 숙명 같아서 가슴 한쪽이 묵직해진다.
“내가 한 50대에 여기가 제일 좋았어요. 198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마늘통닭도 팔고, 닭곰탕이 유명했거든. 이젠 다들 통닭만 튀기지만 원래는 닭곰탕이 진짜 유명했죠. 하루 종일 장사했어요. 왜냐하면 새벽에도 손님이 오니까. 원래 새벽에 시장 상인이 많은 데다가 청량리역 직원들이 교대 근무를 마치고 새벽에 왔으니까요. 그때 장사가 잘됐지요.”
저녁 무렵이 되자 시장 통닭골목 불빛이 더 환해진다. 사람들의 마음도 더 환해지길, 통닭 한 접시로 더 행복해지길 빌었다.
찾아라! 맛있는 집 - 통닭을 먹으러 어디로 갈까요?
드라마 속 ‘치맥’ 덕분인지, 우리만의 치느님이 아니라 K-치킨으로 불리며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닭튀김.
치킨의 근본인 전통 통닭의 맛집을 엄선해보았다.
가마솥 통닭의 원조 #남원통닭
주문 즉시 커다란 가마솥에 튀겨내는 넉넉한 크기의 생닭과 가래떡, 꽈리고추, 고구마까지 웬만한 체인점 치킨 2인분 양이다. 닭모래집과 닭발튀김도 별미.
주소 동대문구 제기동 635-1
문의 02-968-9841
간장치킨 맛집 #계동치킨
구미에서 1993년 포촌치킨으로 시작했다가 2004년 서울로 진출하면서 상호를 변경한 곳. 마늘과 간장 소스의 짭조름하면서도 얇은 튀김옷으로 인기가 많다.
주소 종로구 종로31길 4 종로5가점
문의 02-763-9808
그 시절 그 감성 #브라운호프
충무로 직장인의 퇴근길 발걸음을 붙잡는 치킨 노포. 프라이드 반+양념 반 구성의 치킨을 주문하면 무려 닭 다리 3개와 양배추 샐러드가 포함된 옛날치킨 한 접시가 나온다.
주소 중구 퇴계로 252-1
문의 02-2279-0271
치킨의 정의를 새롭게 #계열사
구운 소금과 청주를 이용한 비법으로 유명한 서울 3대 치킨 중 하나. 부암동에 오랫동안 자리잡은 이곳은 인왕산과 북악산 등산객은 물론,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들로 늘 북적인다.
주소 종로구 백석동길 7
문의 02-391-3566
닭치고 프라이드 #양재닭집
상가형 시장의 지하라는 의외의 장소에서 무려 45년째 단일 품목, 바삭한 옛날 통닭만 고수하는 곳. 촉촉하면서도 부드럽고 완벽한 식감의 치킨을 경험하고 싶다면 강력 추천.
주소 서초구 남부순환로356길 15 양재종합시장 지하 1층
문의 02-572-1741
글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정지원, 지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