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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의 화려한 귀환

기획 · 서울 트렌드
더없이 ‘힙’하다!
바이닐의 화려한 귀환
2022.08

CD 크기의 2배가 넘는 동그란 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린다.
뾰족한 바늘이 레코드판의 홈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 지직거리는 마찰음에 이어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LP 레코드가 돌아왔다. 반가운 유행처럼 빙글빙글 돌고, 반짝반짝 빛나면서!

느림과 불편함? 불완전해서 오히려 완전한 LP

패션 회사에 근무하는 박민영 씨는 퇴근 후 요즘 ‘꽂힌’ 특별한 카페에 들렀다. 그가 찾은 곳은 인사동에 위치한 ‘뮤직컴플렉스 서울’. 1만 장 이상의 바이닐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음악 감상실로, 벽을 가득 채운 수많은 LP가 시선을 사로잡는 공간이다. 이미 SNS에서도 #서울핫플, #서울LP바 등의 해시태그로 입소문 난 이곳은 MZ세대가 바이닐을 직접 청음하고, LP와 관련 기기를 쇼핑할 수 있는 공간이자 카페다. 스트리밍으로만 접하던 음악을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며 체험할 수 있어 인기다. “LP는 ‘Long Playing Record’의 약자입니다. 지름 30cm의 플라스틱 판에 머리카락보다 얇고 촘촘한 소리 골을 새겨 녹음하죠. 턴테이블에 달린 바늘이 이 소리 골을 따라 진동하면서 전기신호를 보내면 음악이 재생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감각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고, 특별한 경험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좋아하는 젊은 분들이 부쩍 LP를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뮤직컴플렉스 서울 정지현 매니저의 말이다.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기던 LP가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인기에 힘입어 방탄소년단(BTS)·아이유·블랙핑크 같은 아이돌 가수는 물론,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전설적인 그룹의 리마스터링 LP 등 다양한 장르의 LP가 발매되고 있다. 우리보다 큰 음악 시장을 보유한 미국과 유럽에서도 LP 발매의 재유행은 두드러진다. 아델, 에드시런, 테일러 스위프트 등 많은 해외 팝 스타가 LP를 발매하고 있다. 사실 LP는 재생을 위해 특정 장비가 필요하고 보관하기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에 비해 LP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곡수도 한정적이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수천 곡의 노래를 스트리밍할 수 있는 스마트 시대에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매체다. 그럼에도 LP가 다시 ‘힙’한 트렌드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뮤직컴플렉스 서울의 1인용 좌석에서는 턴테이블을 이용해 LP 레코드를 청음할 수 있다.

턴테이블, 바늘, 회전, 1초의 침묵

팬데믹에 역대급 더위와 폭우까지 맞물린 올여름, 여행을 떠나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그렇다 보니 ‘옛날’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여기에는 기성세대뿐 아니라 MZ세대도 포함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신세대가 아날로그를 찾게 된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LP 같은 과거의 아이템은 사뭇 다른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중장년층에게는 과거의 향수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집단의 목표보다 개인의 행복을, 소유보다 공유를, 상품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LP는 현상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이다. 을지로 지하상가나 회현상가에는 뒤늦게 발견한 이색 취향 혹은 이색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LP를 찾는 젊은 세대의 발길이 늘었다.

“젊은 손님들은 LP를 구매하면 커버 아트를 감상하고 속지에 쓰여 있는 가사를 읽어봅니다. LP만큼은 신상보다 중고가 몸값이 더 비싼 경우가 있어요. 일명 ‘민트급’이라고 하는 미개봉 원판의 경우는 구하기도 힘들죠.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거래가 활발하지만, 가능하다면 매장을 방문해 디깅(Digging, 수많은 레코드판을 땅 파듯 파헤치며 원하는 걸 찾는 행동)을 해보세요. 매장 직원을 잘 활용하는 것도 요령입니다.” 종로서적 음반 코너 류석원 부장의 말이다. 좋은 음악은 영감을 선사하고 일상에 생동감을 더한다. LP의 표면을 긁는 듯한 마찰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기 직전 1초 동안의 침묵, 느려서 오히려 신선하다. 지금 일상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건 그 1초의 침묵이 전하는 색다른 긴장감이다.

세운스퀘어 앞에서 만난 노상 LP 판매점.

발매 20주년 기념 LP로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봄여름가을겨울
가수 김종진

Q. 이번에 발매한 바이닐 앨범으로 판매 차트 1위를 기록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앨범인지 소개해주세요.

지난 7월 1일 예약 판매한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 20주년(2022 MIX)> 바이닐 앨범인데요, 20년 전 발매한 오리지널 테이프를 복원해 다시 믹스한 것입니다. 2000장 넘버링 한정판이고, 세계 최고 기술의 엔지니어와 공장을 섭외해 바이닐 수집가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어요. 20년 만에 역주행을 경험했고, 뉴스와 TV에서도 기사화될 정도여서 놀랐답니다.

Q. 어떤 배경으로 발매 20주년 기념 앨범을 LP로 다시 믹스해 팬들에게 선보이겠다는 결심을 한 건지 궁금해요.

2002년 1월에 선보인 앨범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는 동명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는 곡이 수록되었어요. 당시 IMF 외환 위기라는 시련을 겪고 있던 국민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준 곡이었죠.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지친 분들에게 음악으로 위로와 용기를 줘야겠다고 생각했고, 현대적 사운드 믹싱으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Q. LP를 듣던 시대, 봄여름가을겨울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그룹이었어요.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는 누리지 못하는 아날로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나 향수가 있나요?

당시에는 제가 원하는 음악을 들으려면 라디오에 신청 엽서를 보내거나 음반 매장에 가서 LP 또는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들어야 했어요.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카세트테이프에 제가 좋아하는 곡을 순서대로 녹음해서 돌려 듣다 보면 테이프가 늘어지면서 소리도 점점 안 좋아졌던 기억이 나요. 동네 버스 정류장 앞에는 음반 매장이 하나 정도는 있었고, 그 앞에 놓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버스를 기다리던 기억이 그리워요.

Q. 음악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LP로 음악을 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장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상당히 큰 사이즈의 실물 재킷이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종이에 인쇄된 미술품과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고요. 불완전한 소리 골을 갖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화가 파울클레는 말했죠. “예술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데 있다”고요. 즉 라이브 공연이나 디지털 음원보다 덜 선명하지만, LP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귀로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하게 만드는 예술적 힘이 있어요.

중고 음반, 이것은 꼭 알아두세요!

1. 음반의 출신을 확인

미국 팝을 기준으로 LP는 오리지널, 라이선스, 리이슈(재발매)로 나뉜다. 같은 가수의 같은 음반이라도 차이가 나는 이유다.

2. 음반의 상태를 확인

일반적으로 잡음이 있는 베리 굿, 청음에 문제가 없는 엑설런트, 개봉했지만 거의 새것같은 니어민트, 미개봉한 민트급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정확한 기준이 없으니 신중하게 구매하자.

3. 추천하는 중고 음반

LP의 시대로 불리던 1970~1980년대 해외 원판이나 1990년대 해외에서는 LP로 제작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만 발매된 희귀한 라이선스 음반을 추천한다.

4. 음반을 제대로 즐기려면

LP 음악 감상의 기본은 턴테이블과 앰프, 스피커의 조합이다. 요즘 유행하는 일체형 LP 플레이어로 시작했더라도 조금씩 단계를 올려 바이닐의 매력에 빠져보길 권한다.

도움말 류석원 종로서적 음반 코너 부장

MINI INTERVIEW

미르터(Mirte) & 토비아스(Tobias)

네덜란드에서 서울을 방문한 두 사람은 비 오는 날 특별한 경험을 하기위해 실내 청음 공간 ‘뮤직컴플렉스 서울’을 찾았다. “테이블마다 턴테이블이 있어 음악을 듣기 좋고, 다양한 장르와 취향을 찾을 수 있는 음반이 많아 놀랐어요. 암스테르담의 청년들도 LP를 찾아 듣기도 하고, 서로 교환하거나 희귀한 앨범을 구입하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깨끗한 디지털 음원보다 번거롭긴 하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취미라고 생각해요. 서울 여행 중에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서울에서 찾은 감성 음악 감상실

서울우리소리박물관

향토민요를 비롯한 우리 전통문화를 소리로 경험할 수 있는 국내 첫 민요 전문 박물관으로, 사라져가는 민요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다양한 방법으로 듣고 체험할 수 있다. 지상 1층~지하 2층 규모의 박물관에서는 민요를 감상하고, 관련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관람료는 무료.

위치 종로구 율곡로 96
문의 02-742-2600

수리수리청음실

옛날 오디오와 진공관 앰프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 추억을 들려주는 이곳은 세운상가 창업 지원 공간 ‘세운메이커스큐브’ 3층에 위치한다. 누구나 비치된 음반이나 소장 음반을 가져와 청음할 수 있으며, 무료로 운영한다.

위치 종로구 청계천로 159 세운메이커스큐브 서302호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1층 예술다방에는 문화 예술관련 서적은 물론 장르별로 다양한 인디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서교레코즈’가 있다. CD와 카세트테이프 및 재생 기기가 구비되어 있어 청음할 수 있고, 무료 커피도 즐길 수 있다.

위치 마포구 잔다리로6길 33
문의 02-333-1551

신월음악도서관

양천구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4층 음악자료실에는 가요·팝·클래식·동요 등 다양한 장르의 CD와 LP 그리고 음악 공연 실황을 보여주는 DVD 등을 갖추고 있다. 자료실에 비치한 턴테이블을 이용해 청음이 가능하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운드 북과 연주가 가능한 피아노도 마련되어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

위치 양천구 오목로5길 34 신월4동 주민센터 4층
문의 02-2691-5919

임지영, 김태인 사진 이해리, 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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