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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냉면의 시작, 오장동 함흥냉면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서울 맛골목 이야기
국민 냉면의 시작, 오장동 함흥냉면
2022.07

실향민을 달래주던 그리운 고향의 맛

냉면의 양대 산맥은 평양식과 함흥식이다. 확장하면 평안도와 함경도다. 이 음식의 연대기랄까, 팔자가 독특하다. 전쟁이 없었으면 한반도 남쪽 서울에서 이토록 유명해지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그저 한 그릇 음식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를 품고 있는 국수다.

“시어머니가 만드신 가게죠. 아주 덩치가 크고 성격이 괄괄하셨어요. 당시 새댁이던 저는 아기 업고 일하고 그랬죠.”

‘흥남집’을 개업한 이는 노용언 할머니다. 원산에서 나서 흥남에서 살다가 월남했다. 지금 그 맥을 맏며느리 권기순(83) 회장과 아들 윤재순(62) 대표가 잇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전쟁의 기억도 아스라하다. 이제 전후(戰後)에 태어난 세대가 노인이 된 시대다. 그래도 이렇게 음식으로 그 역사를 증언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이 동네에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장사하고 살았어요. 앞에 있는 중부시장도 거의 노점이었는데, 시어머니도 좌판에서 음식 장사를 시작하셨죠. 금호동·신당동·장충동에 사는 실향민들이 우리 가게에 오셨어요.”

피란민은 세 가지가 없다고 했다. 하나, 친인척이 없다. 둘, 집과 토지가 없다. 셋, 장항아리가 없다. 반찬 만들 간장과 된장도 없었다. 이는 맨손이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서울의 경우 악착같이 시장을 근거지로 부락을 형성하고 생존했다. 이북 사람들이 생활력 강하다는 말은 거기서 나왔다.

“처음에는 국수를 팔았어요. 그때 전화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어머니가 함경도 사람이니까 고향 사람들 만나려면 이런 식당에 와서 보게 되는 거예요. 시장에서 만나 우리 가게에 와서 고향 음식 한 그릇 먹으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죠.”

얘기를 나누는 중에 냉면이 나왔다. 흥남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검은색에 가까운 면발이 보인다. 붉은 홍어회(요즘은 가자미를 쓴다)와 희고 노란 삶은 달걀이 어우러져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우리 냉면은 면발을 양념으로 한번 무쳐서 내요. 그게 보통 비빔냉면과 다른 점입니다. 참기름을 치고, 설탕도 많이 뿌리세요. 식초도 쳐야죠.”

흥남집 냉면 먹는 법이다. 이런 함경도 냉면은 억센 면발을 이로 끊어가며 먹는 맛이 있다. 좀 급하게 먹어야 제맛이다.

힘냉면록의 정승록 대표가 주문 즉시 뽑아내는 면발로 냉면 한 그릇을 만들고 있다.

“함흥냉면을 먹을 때는 참기름을 치고, 설탕도 많이 뿌리세요. 식초도 쳐야죠.”

역사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먹자골목

흔히 사람들은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라고 부른다. 한창 때인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스무 집 정도 되는 함흥식 냉면집이 이 거리에서 성업했다. 중부시장을 끼고 있는 데다가 냉면은 당시 엄청난 인기였다. 구석구석까지 냉면집이 들어섰다. 넓게 보면 예지동 시계 골목의 함흥냉면집(곰보냉면, 원조함흥냉면 등)까지 아울러 하나의 함흥식 냉면집 권역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오장동에는 신창면옥(폐업)이 있었고, 부산갈비도 함흥식 비빔냉면을 판다. 그런 가게가 20개 이상 있었다는 얘기다. 현재 예지동은 재개발로 가게가 이전했거나 폐업했다. 예지동 함흥냉면집은 양이 많은 걸로 유명했다. 흥남집도 양이 만만치 않다.

“옛날에는 정말 양이 많았어요. 어머니가 배고픈 사람들, 양 큰 손님에게는 돈 더 받지 않고 사리를 듬뿍 얹어 냈어요. 손이 크셨죠.”

권 회장은 대략 80원 하던 시절까지 기억한다. 아마도 1950년대 후반이나 1960년대 초반에는 30~40원 정도 한 것 같다. 그 당시 짜장면이 그 정도 가격이었으니 비슷했을 것이다. 짜장면은 그때만 해도 값싼 음식이 아니었다.

함경도 사람은 중부시장을 중심으로 터를 잡았다. 동대문시장과 광장시장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생존기는 곧 시장의 확장과 궤를 같이한다. 포목점, 각종 도매상이 그들의 주업이었다. 실향민들은 냉면집을 사랑했다. 실향민이 있는 곳에는 냉면집이 있었다. 이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부산·대전·대구 등 대도시에는 어김없이 실향민들이 살았고, 냉면집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장소였다.

요즘도 매일 매장에 나와 현장을 지휘하는 흥남집 2대 권기순 회장.

‘맵단짠’의 완벽한 조화, 함흥냉면

옛날 함흥냉면집의 특징이 있다. 설탕을 많이 뿌려 먹는다. 요즘 세대는 디저트도 아닌데 설탕을 직접 뿌리라면 의아해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설탕은 귀한 것이었는데 1960년대 들어 점차 가격이 싸지자 함흥냉면집들은 하나둘 탁자에 설탕 단지를 놓았다. 설탕을 듬뿍 뿌려야 제맛이다. 함흥냉면은 매운맛과 단맛의 조화, 질긴 면을 이로 끊어가며 먹는 맛, 여기에 회 고명을 씹는 맛이 더해져 하나의 미식을 이룬다. 홍어를 얹은 것도 하나의 스토리인데, 처음에는 돼지고기를 고명으로 얹었다고 한다. 전후 서울에서 해산물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원래 냉면 고명은 돼지고기 편육이라는 말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다가 홍어, 다시 가자미를 고명으로 썼다. 함흥냉면은 실향민이 많이 사는 속초에서도 인기 있다. 그쪽은 요즘 명태를 많이 쓴다. 물론 그들의 고향인 원산 앞바다 명태를 쓰면 좋으련만, 러시아산을 쓸 수밖에 없다.

노포는 어디나 그렇지만 장기근속하는 직원이 많다. 주인이 그만큼 대우해주고,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흥남집 역시 환갑을 훌쩍 넘은 장기근속자가 많다. 그러니 단골이 와도 늘 알아봐주어 편하다.

통일은 멀고, 냉면은 아직 우리와 가깝다. 그게 위안이다. 오장동 냉면골목에서 역사를 먹는다. 그게 함흥냉면이다. 질긴 면발을 뚝뚝 끊어가며 매운 양념을 넘기다 보면 매캐한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다. 꼭 양념이 매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흥남집 창업자 노용언 여사의 초상화를 넣은 간판 아래 선 권기순 회장과 박찬일 셰프.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냉면 서열을 다잡는 함냉 열전

원조 중 원조 #오장동흥남집

함흥냉면 좀 먹는다면 꼭 들러야 하는 집. 4대째 이어오는 변치 않는 손맛에 손님 역시 대가족이 찾는 경우가 많다. 간장을 기본으로 하는 특제 소스로 양념한 면발 덕분에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회비빔냉면 1만3000원.

주소 중구 마른내로 114

백 선생도 인정 #오복함흥냉면

방송에서 본 사장님이 주방에서 직접 면을 뽑는 장면을 직관할 수 있으며, 안쪽 방에서는 연신 왕만두를 빚고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손맛을 인정받은 만큼 진한 육수와 냉면에 올라간 홍어·가자미 맛이 일품이다. 회냉면 1만원.

주소 용산구 한강대로84길 4

외국인 입맛까지 정복 #명동함흥면옥

명동 중앙로 뒷길에 오랜 시간 자리해온 곳으로,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이자 깔끔하고 담백한 함흥냉면 맛으로 유명하다. 점심시간에는 명동 근처 회사원들이 몰리기도 하지만, 회전율이 높아 부담 없다. 회냉면 1만1000원.

주소 중구 명동10길 35-19

시장통 슈퍼스타 #경동함흥냉면

1995년부터 청량리 경동시장에 자리 잡아 시장 상인은 물론, 이곳의 함흥냉면을 맛보러 오는 이가 늘어 지금의 냉면골목을 조성한 주인공. 감자 전분에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든 쫀득한 면발과 넉넉하게 올려주는 홍어회무침이 일품이다. 회냉면 1만원.

주소 동대문구 고산자로38길 19

함흥냉면계 아이돌 #힘냉면록

냉면 전문 식당 중에서 가장 젊은 곳이 아닐까 싶은 성수동 냉면집으로, 함흥 스타일에 이곳만의 취향이 확고하게 반영되어 있다. 비빔냉면의 경우 청양고춧가루의 알싸한 매운맛이 인상적이고, 국내산 소고기 양지에 채수와 동치미 등을 배합한 물냉면도 인기. 힘냉면 8000원.

주소 성동구 상원1길 41

재야 고수의 힘 #진함흥냉면

냉면을 기다리며 맛본 뜨거운 육수에서 깊은 사골 맛이 느껴져 냉면 맛이 기대되는 집. 미리 양념한 얇고 부드러운 면발과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균형을 이룬 양념, 알맞게 삭힌 가자미회가 어우러진 맛으로 입소문이 났다. 회냉면 9000원.

주소 마포구 효창목길 30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이해리, 양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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