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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지킨 서울

사람이 지킨 서울>
2022.06

문화

서울 옛 이름

사람이 지킨 서울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서울은 유구한 역사만큼 특정 인물에서 유래한 동 이름도 있다.
각기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품은 서울의 동네를 가봤다.

능동 - 광진구

음악 분수, 동물원, 놀이동산, 상상나라까지 서울어린이대공원에는 어린이를 위한 모든 시설이 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2분 정도 음악 분수를 향해 걷다 보면 오른쪽에 석물이 보인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된 ‘순명비 유강원 석물’이다. 유강원 석물은 대한제국 제2대 황제 순종의 황후 순명효황후 민씨의 능인 유강원에 있던 것들이다. 순명효황후는 순종이 황제가 되기 전인 1904년에 승하했으며, 1905년 장례를 지낸 후 능의 이름을 유강원이라 지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한 후 순명효황후의 능 역시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릉 왼쪽 언덕으로 옮겨 유강원에는 석물만 남았다. 문인석, 무인석을 비롯해 말·양·호랑이 능의 석물과 장명등의 하대석·상석·난간석 등이 있다. 능동이라는 이름은 순명효황후의 묘역인 유릉(유강원)이 있던 곳이어서 ‘능말’, ‘능리’라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

+ 이야기 하나 더

능동 지역은 조선 시대에 양주군 고양주면의 일부였으나 갑오개혁 때 한성부 남서 두모방 전곶계 능동이 되었다. 이후 경성부 두모면 능동으로 불리다가 1914년 경기도 뚝도면 능리가 되었다. 1949년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성동구 능리가 되었고, 1950년 능동으로 개칭했다. 이후 1995년 성동구를 분리하면서 오늘날의 광진구 능동이 되었다.

순명비 유강원 석물 앞에 있는 안내문.

도선동 - 성동구

왕십리와 인접한 도선동. 도선동이라는 지명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우선 도선 대사를 알아야 한다. 도선 대사는 승려이지만 그보다는 풍수지리의 원조이자 대가, <도선비기>로 대표되는 예언가로 유명하다.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역사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도선동이란 이름에 얽힌 두 가지 설 모두 도선 대사와 연관이 있다. 첫 번째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선 대사가 무학봉에서 수도했다는 이야기에 따라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다. 두 번째는 조선 개국 때 무학 대사가 태조의 명으로 도읍지를 물색하던 중 왕십리에 와서 지세를 살피고 있었는데 소를 타고 지나던 한 노인이 무학 대사를 향해 서북쪽으로 10리를 더 가라고 일러주었고, 그 노인이 도선 대사라는 설이다. 도선 대사가 무학 대사에게 방향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도선동이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도선어린이공원 내에 동 이름의 유래를 적은 지명 유래 표지석과 상징물을 설치했다. 표지석은 상왕십리역 인근에도 설치되어 있다.

+ 이야기 하나 더

도선어린이공원 내 상징물은 지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무학 대사와 도선 대사의 설화 속 주요 장면을 화강암에 양각해 만들었다. 표지석과 상징물은 모두 도선동 동민회가 지명의 유래를 알리고자 주도적으로 설치했다.

무학 대사와 도선 대사를 귀엽게 표현한 도선어린이공원 내 상징물.

고덕동 - 강동구

강동구 고덕동은 ‘덕이 높다’는 뜻으로, 고려 말 형조참의를 지낸 이양중(李養中)의 높은 덕을 기리며 붙인 이름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에 반대한 이양중은 현재 고덕동이 된 마을에 숨어 살았다. 태종과 막역한 사이였던 이양중은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친구에 대한 정으로 하사한 관직을 충심을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이방원은 이양중을 설득하기 위해 지금의 고덕천까지 왔지만, 결국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궁으로 돌아간 이방원에게 대신들이 군주를 무시한 이양중을 벌해야 한다고 하자 이방원은 우정의 두터움을 강조하며 오히려 그의 높은 덕망과 충절을 오래 기리기 위해 그가 사는 곳을 고덕리(高德里)라 명명하도록 했다. 고덕동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광주군 광주목에 속했다가 1906년 광주군 구천면에 포함된 후 1914년 가재울, 비석말, 방죽말, 동자골 등 자연 마을을 병합해 고덕리가 되었다. 1963년 성동구, 1975년 강남구를 거쳐 1979년 강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 이야기 하나 더

‘고덕’이라는 이름의 자취는 강일동과 상일동을 지나 한강에 유입되는 고덕천, 이양중이 은거했다는 고지봉, 한강과 접해 있으면서 암사동과 경계를 이루는 고덕산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보행 약자와 더불어 건강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고덕산 자락길.

류창희 사진 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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