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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허기를 달래주는 노량진 컵밥거리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서울 맛골목 이야기
청춘의 허기를 달래주는 노량진 컵밥거리
2022.06

이왕이면 든든하게, 갓성비 한 끼

“우린 손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요. 아들, 공주라고 해요(웃음). 진심이에요. 밥 한 술이라도 더 퍼주려고 하죠.”노량진 컵밥거리의 터줏대감인 ‘다미네삼겹살컵밥’ 한경희 사장의 말이다. 자매가 같이 운영하는 이 가게는 공시생들에게 인심 좋은 밥집으로 유명하다.

“원래는 노량진역 쪽에 분식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었어요. 육교가 헐리면서 컵밥집들이 이쪽으로 옮겨왔죠.”

컵밥거리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골목이 아니다. 이른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뜻하는 공시생들의 든든한 밥집이자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기약 없이 이어지던 팬데믹 상황에 컵밥거리도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코로나19로 출석하는 수험생이 크게 줄고, ‘인강’으로 대체하면서 노량진 고시촌 거주 인구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아직도 컵밥거리 전체가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현재 일상이 조금씩 돌아오고 대면 강의가 늘면서 입주 상인들은 다시금 희망을 기대하고 있다. 컵밥거리는 역사가 꽤 오래된 만큼 단골의 역사, 사람 사이의 사연도 쌓였다.

“여기서 공시를 준비하다가 결혼해서 아이 데리고 오는 단골을 만날 때 제일 반갑죠. 나들이를 겸해 이 동네에 오기도 하고요.”

고객의 취향에 맞춘 먹거리

물론 컵밥거리가 처음부터 조성된 것은 아니다. 역사는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화문, 종로 등지에 몰려 있던 입시 학원이 도시 정비와 과밀 해소 차원에서 노량진 등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이때 수험생들의 출출한 배를 책임지는 노점도 같이 이전했다. 현재 동작경찰서가 있는 라인 앞이 제일 붐볐고, 길 건너 노량진역에도 노점과 포장마차가 많았다. 주 종목은 역시 떡볶이, 순대, 어묵 등의 분식. 그러다가 점차 공시생이 늘어난 것이 컵밥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출퇴근하는 입시생과 달리 1년 이상 장기간 거주 공간을 얻어 숙박하며 공부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늘면서 밥 위에 햄·소시지·참치·김치 등을 올려 ‘컵에 담은 밥’을 파는 포장마차가 하나둘 생겼고, 이내 노량진을 대표하는 먹거리인 ‘컵밥’ 집이 모여 거리를 형성한 것이다. 현재는 자치구의 지원으로 포장마차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튼튼하고 예쁜 부스가 생겨났고, 수도와 전기 시설도 놓였다. 거리가 더러워지지 않게 전담 청소 요원이 일하고 있으며, 원래 서서 먹던 손님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부스 사이사이에 쉼터도 마련했고, 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혀줄 쿨링 포그까지 설치했다. 당연히 입주 상인들은 도로점용료를 당국에 지불하고 장사한다.

“컵밥은 본디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이제는 양이나 맛 어느 것도 꿀리지 않는 별미이자
노량진을 대표하는 특화 거리의 주인공이 됐다.”

한 끼라도 풍성하고 든든하게

원래 노량진 공시촌은 저렴한 ‘월권밥’, ‘식권밥’으로 유명하다. 한 끼 가격이 도시 평균보다 훨씬 싸다. 백반 중심의 옛 메뉴와 달리 신세대 공시생들은 다양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거리 포장마차에서 밥 비슷(?)한 든든한 음식을 팔기 시작한 이유다. 초기에는 볶은 김치, 김 가루, 달걀, 햄 등을 얹은 비빔밥 형태였다. 당시 젊은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입맛을 고려한 것. 그러다가 고기가 등장하고, 다채로운 메뉴가 생겨나면서 현재 컵밥거리의 명성을 얻게 됐다.

“토스트 같은 간식에서 점차 한 끼 정식으로 먹는 식당 같은 포장마차가 많이 생겼어요. 간식에서 주식으로 업종 전환을 많이 한 거죠. 공시생들은 돈이 없잖아요. 무엇보다 든든하고 색다른 맛을 찾아온 것이기도 해요.” 자매가 함께 다미네삼겹살컵밥을 운영하는 한정희 사장의 말이다.

전체 23개에 이르는 컵밥 부스의 메뉴는 역시 원조인 컵밥이 60% 정도이고 와플 같은 디저트류, 기타 일본 라멘과 베트남 쌀국수, 떡볶이, 꼬치류, 수제비 등 다채로운 매장이 입점해 있다. 단순히 주머니 가벼운 공시생들의 음식이라고 우습게 보았다가는 큰코다친다. 맛있는 집이 아주 많다.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거니와 수험생들은 원래 신경이 예민하고 입맛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세대 불문, 사랑받을 자격 충분한 컵밥

이 거리의 컵밥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메뉴가 20개 정도 되고, 여기에 다양한 고명(토핑)을 얹은 확장 메뉴가 일고여덟 가지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100여 가지 가까운 메뉴가 준비되는 셈이다. 김치볶음과 김, 달걀은 고정된 고명이고 온갖 고기 종류, 그 고기를 조리하는 방식, 소스, 특별 토핑에 따라 메뉴가 다양해진다. 예를 들어 손님은 이렇게 주문한다.

“스페셜 김치덮밥 5번이요.”

그러면 주인은 컵에 밥을 담고 김치볶음과 달걀 고명을 준비한 상태에서 볶은 삼겹살, 훈제 오리 고기, 모차렐라 치즈 등 추가 고명을 얹어 내준다. 당연히 주인은 이 모든 메뉴를 외우고 있다. 어마어마하다. 치열한 경쟁과 고민, 소비자인 공시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메뉴의 변화가 오랜 시간 쌓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맛이 없을 수도 없다. 말하자면 미각과 현대 음식 문명의 총정리판, 일타 강사 족집게 맛이다. 이렇게 내는 음식값이 4000~5000원 선이다.

노량진은 서울에서도 물가가 싼 동네다.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제일 먼저 생긴 곳도 노량진이라고 한다. 소비력 왕성한 청춘들이 1~2년 이상 시험 준비를 하면서 인구가 집중되었고, 하나의 작은 소비 도시가 생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청춘들의 별미 집이라는 것도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솔직히 요리사인 필자가 보기에도 이 음식들은 아주 맛있고, 내용도 충만해 보였다.

자, 이제 여러분도 노량진을 사랑해줄 마음이 생겼을 것 같다. 입맛과 취향을 모두 만족시킬 노량진의 다양한 먹거리를 즐겨보시길 바란다. 지하철표 한 장과 1만원짜리 한 장이면 충분하다.

오랜 시간 컵밥거리를 지켜온 유메나라멘 사장님.

노량진 공시생들의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고 있는 다미네삼겹살컵밥의 자매 사장님과 박찬일 셰프.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 노량진 컵밥거리 명물 열전

3호점 노량진와플

물 대신 우유로만 반죽해 겉바속촉인 와플로, 달콤한 우유 생크림이 기본 재료다. 모든 메뉴는 1500~3000원이며, 500원만 더하면 사과잼이나 생크림, 생과일 등 토핑을 추가할 수 있다.

6호점 다미네삼겹살컵밥

<수요미식회>에서 인정한 곳으로, 제육을 비롯해 스팸·날치알·삼겹살·훈제 오리 고기 등을 재료로 40가지 넘는 메뉴가 있다. 3500원부터 모든 고명을 얹은 다미FLEX컵밥은 9000원.

11호점 오가네팬케익

컵밥거리에서 단일 품목으로 가장 유명한 곳. 소시지가 들어가 든든한 팬케이크부터 슈크림 가득한 디저트까지 2000~2500원에 맛볼 수 있다.

12호점 유메나라멘

박찬일 셰프도 인정한 ‘찐’ 맛집. 오사카 어느 골목의 맛집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야키소바와 라멘이 추천 메뉴. 가격은 3500원부터, 곱빼기는 5500원까지.

15호점 컵밥매니아

두툼한 닭 다릿살을 직화로 구워 불맛이 살아 있는 곳으로, 다양한 메뉴를 4500~5500원 선에 맛볼 수 있다. 컵밥거리 제일의 청결함이 돋보인다.

18호점 치킨카레떡볶이

쌀떡과 밀떡이 함께 들어 있는 매콤한 카레떡볶이와 바삭한 순살 치킨이 만났다. 대표 메뉴인 치킨카레떡볶이 4000원, 김밥 2000원, 떡·튀·순 4500원.

19호점 만나흑미컵밥토스트

컵밥거리의 시작이 된 토스트를 맛볼 수 있는 곳. 베이컨햄치즈토스트 3500원, 채소토스트 2000원부터. 흑미밥을 제공하는 컵밥도 인기다.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양성모,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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