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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인심으로 정을 나누는 국수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서울 맛골목 이야기
넉넉한 인심으로 정을 나누는 국수
2022.05

공릉동 멸치국수거리

태릉입구역에는 국수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역사성이란 이런 것에서 출발한다. 기억이다. 거리를 지나는 연세 지긋한 행인에게 여쭈었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어. 한 40년쯤. 이 동네에 국숫집이 한두 개 있다가 점점 늘어났고, 가내 국수 공장도 있었지. 복개하기 전에도 개천 옆길에서 국수를 발에 걸어 내다 말리곤 했어. 그때야 뭐 다 한 뭉치씩 사다가 끓여 먹었지. 싸고 맛있었거든.”

국수는 사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해 잔치국수는 매식(買食)하는 음식이라기보다 집에서 해 먹는 밥이었다. 만들기 쉽고, 쌌다. 이 국수를 받아다 파는 허름한 국숫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수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역사란 애초에 아주 작은 존재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구청에서 설치한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공릉동 복개천에는 잔치국숫집이 많다. 그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원조멸치국수는 1980년대 후반 반지하 3평짜리 점포에서 야간에만 국숫집을 운영하였다.”

현재 태릉입구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시작되는 국수거리는 2012년 거리 조성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도로와 간판을 정비해 깔끔하다. 한때 20개 정도 되던 국숫집은 명멸하면서 지금은 10개 정도가 영업하고 있다. 원래 잔치국수, 비빔국수 정도 팔던 메뉴가 조금씩 확장하면서 김밥과 칼국수도 함께 취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 집에 들어가 국수를 시켜봤다. 1998년에 문을 연 초기 개업 집이다.

“어머니(김정애 씨, 75)가 문을 연 집이에요. 원래 더 작은 가게였는데, 옆 가게를 터서 지금 규모가 되었어요. 동네에 벽돌 공장도 있고, 공사가 많으니까 장부에 달아놓고 밥을 먹는 수요가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국숫집으로 점차 변해갔어요.” 2대 주인인 딸 오은미 씨의 말이다. 공릉동 토박이인 그이는 어머니, 남편과 함께 원조멸치국수 가게를 꾸리고 있다. 국수를 시켰다. 엄청난 멸치 육수다. 진하다. 4000원짜리 국수에 아직도 이 정도의 육수를 내는 집이 있다. 공릉동 국수거리의 힘이다. 곁들이는 삭힌 고추 양념이 별미다. 매운 고추를 소금에 삭힌 후 파와 간장에 절여서 낸다. 이걸 한 숟갈 얹어 잔치국수를 먹으면 그야말로 완벽해진다. 서민의 음식이지만, 이 국수만의 미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마을이 생기고, 사람이 모이고

공릉동은 원래 성북구에 속했다가 도봉구로, 다시 1988년에 노원구가 생기면서 현재에 이른다. 노원구라는 정체성이 시작되고, 공릉천이 복개되면서 공릉동 국수거리의 효시가 되었다. 1987년 신문 기사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도봉구는 공릉동 366번지 일대 공릉천 복개 공사를 실시, 차량 통행 불편을 해소하고 주변 악취를 개선하기로 했다.”

이 공사로 공릉동 주거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다. 당시 서울 곳곳에 복개 바람이 불었다. 하수 시설이 좋지 않을 때라 갈수기에 악취가 심했고, 차량이 늘면서 통행과 주차 공간의 수요가 많아졌다.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복개 공사였다. 서울이란 도시는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온갖 개울과 개천이 마을 사이를 흐르다가 한강으로 내려가는 구도로 되어 있다. 북한산 쪽 지대가 높고, 하천 쪽이 낮기 때문이다. 당시 청계천 복개가 가장 큰 공사였다.

구청의 안내판에 “야간에만 운영하였다”라는 근거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벽돌 공장 일꾼들의 참으로 팔리다가 택시 기사들의 맛집도 될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이다. 당시 이 동네는 차 대기가 어렵지 않았고, 야간에 일하는 택시 기사들의 출출한 속을 달래줄 음식으로 잔치국수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당시는 택시 전성시대였다. 대중교통이 부족해 택시 운행량이 엄청났고, 합승이 일반화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야간에 일하다가 짬이 나면 기사들이 한 끼 가볍게 국수를 먹었다. 값이 쌌고, 주문하면 빨리 나오고, 또 빨리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엔 한 그릇에 1000원 정도였다. 소문이 나면서 국숫집이 늘었고, 공릉초등학교를 중심으로 1.3km 구간에 국수거리가 형성되었다. 지역 명물이자 서울의 명물이 된 것이다.

“멸치는 고기가 귀할 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감칠맛 내는 국물 재료였다.
고마운 해산물이 밀가루와 만나 국수 한 그릇을 완성한다.”

우리가 누구? 국수의 민족!

알다시피 우리나라 사람은 국수에 진심인 민족이다. 국수는 기다란 모양이 장수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그건 사후에 만든 얘기이고 국수 자체가 맛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 잡곡 중심으로 식사하던 과거, 국수는 가루 내어 기다랗게 모양을 만들어 삶아 먹으니 물리적 맛 자체가 달랐다. 조선 시대만 해도 밀가루가 귀해서 밀국수 한 그릇은 어지간한 여유가 없으면 먹기 힘들었다. 밀가루를 비싸고 귀하다는 뜻으로 진말(眞末, 진짜 가루)이라고 했다. 밀가루가 귀한데 국수는 좋아하니, 무엇으로든 국수를 만들었다. 메밀, 보릿가루, 칡가루 등을 썼다. 국수는 중요한 잔칫상에 올라갔다. 잔치국수라는 명사는 그렇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결혼이나 환갑잔치에 누구나 국수를 낼 수 있게 됐다. 잔치국수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는 잔치 때 한 젓가락이라도 국수를 먹으면서 역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공릉동 국수거리에는 요즘도 낮이나 밤에 택시들이 들어온다. 후루룩, 한 그릇 먹고 가기 딱 좋다. 값도 헐하다. 뜨거운 국물에 넉넉한 탄수화물, 맛있는 김치를 곁들여 4000~5000원 하는 음식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서울에 잔치국수를 파는 집들이 점차 사라져간다. 온갖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특히 고기로 만든 음식이 대세가 되면서. 기사식당도 불고기백반이나 순댓국, 돈가스가 많다. 잔치국수는 정식 밥상의 절반 정도 가격에 소박한 맛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그 현장이 바로 공릉동 국수거리다.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 옛 동네의 서정이 살아난다. 국수를 미어지게 입에 넣으면 구수하게 씹힌다. 육수가 아직 뜨거울 때 그릇째 들이켜본다. 공릉동 국수거리의 하루가 지나간다.

멸치뿐 아니라 건어물도 깨끗하게 손질해 맛이 깊은 육수를 낸다.

2대째 공릉동 국수거리를 지키고 있는 원조멸치국수의 오은미 부부와 박찬일 셰프.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닮은 듯 다른 맛! - 취향 저격 멸치국수

국수거리의 명성 #공릉동원조멸치국수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 물려받은 공릉동 토박이 딸이 2대째 운영하는 곳. 모든 식자재는 국내산을 이용하며, 6~7가지 멸치와 새우로 육수를 낸다. 진하고 깊은 맛의 멸치국수와 깔끔한 비빔국수가 인기.

주소 노원구 동일로173가길 50
문의 02-971-5900

복고 감성 그대로 #성북동구포국수

성북동에 나란히 1·2·3호점을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깊은 맛의 육수를 맛볼 수 있는 멸치국수와 과일 비빔장이 감칠맛 나는 비빔국수, 각종 전과 튀김 등 메뉴가 다양하다.

주소 성북구 성북로12길 2
문의 02-744-0215

탱글한 면발 #동교동명품잔치국수

주문하면 바로 삶아내기 때문에 면발의 식감이 좋고, 멸치 육수를 낼 때 고추씨를 사용해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다. 유부가 듬뿍 들어간 유부국수와 순두부가 들어가 든든한 두부유부국수도 인기.

주소 마포구 동교로 103
문의 02-336-2004

동네 찐 맛집 #신월동원조우리분식멸치국수

근처 6개 학교 학생은 물론, 멀리서까지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이들로 붐비는 곳. 김 가루와 김치 고명을 올린 멸치국수뿐 아니라 짜장밥, 냉면, 비빔국수 등 두루 인기가 많다.

주소 양천구 오목로 14
문의 02-2691-9014

국수 짝꿍 김밥 #삼각지옛집국수

삼각맨션 1층에 자리한 38년 된 국숫집. ‘온국수’라는 이름의 멸치국수와 잘 어울리는 시원한 김치 맛이 일품이다. 두툼한 달걀지단이 들어가는 김밥도 추천한다. 매주 토요일은 휴무.

주소 용산구 한강대로62길 26
문의 02-794-8364

공릉동 국수거리를 찾는다면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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