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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흘러가는 서울

유유히 흘러가는 서울>
2022.03

문화

서울 옛 이름

유유히 흘러가는 서울

400개가 넘는 동이 있는 서울. 수많은 서울의 지명 중에는 특히 ‘물’에서 유래한 이름이 많다.
이달에는 물에서 유래한 지명을 찾아 그 지명의 변천사부터 숨은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물 여행’을 떠나본다.

광나루 - 광진구

광나루는 ‘광주로 가는 나루’라는 뜻으로 천호대교와 광진교가 없던 시절, 한강을 건너 경기도 광주군으로 가는 데 자주 이용되는 나루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강원·충청도 지역의 곡류 및 목재 등의 운송은 물론, 행인과 상인이 한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조선 시대에는 좌수참을 두어 별감을 파견해 세곡을 관리 ·감독하고, 범죄자 등의 출입을 감시했을 정도. 예전에는 강폭이 넓어 ‘너븐나루’라고도 불렀으나, 1936년 광진교가 생기면서 광나루는 자취를 감췄다. 광진교 아래 자리한 광진정보도서관 앞에서 겸재 정선이 그린 ‘경교명승첩’ 중 ‘광진(廣津)’의 사본을 볼 수 있는데, 정면의 아차산 아래로 언덕과 모래톱이 어우러져 있는 광나루의 모습과 한강을 오가는 나룻배가 함께 담겨 있다.

+ 이야기 하나 더

광나루는 조선 시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장소다. 조선 전기의 서거정과 조선 후기의 다산 정약용 등 다수의 문인이 시를 통해 광나루의 옛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특히 시에 능하던 서거정은 광나루 인근에 수시로 나와 시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광진정보도서관 앞의 광나루터 기념 표석.

약수동 - 중구

약수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약수터’에서 따온 이름이다. 남산 줄기인 응봉 기슭의 버티고개에 있던 약수터 이름에서 유래한 약수동의 약수는 특히 위장병에 좋다고 전해진다. 1950년대 전쟁 이후 도시를 복구하기 위해 시작한 도로포장과 1970년대에 시작한 지하철 공사, 도시 개발 등으로 지하수가 고갈돼 약수터의 자취는 사라졌다. 현재 약수동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약수동 전망대는 약수터의 모습을 재현해 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을 담은 공간이다.

+ 이야기 하나 더

약수동 지명의 유래가 된 약수가 있던 버티고개는 옛날에 길이 좁고 도둑이 많아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마음씨가 곱지 않은 사람을 두고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이다”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였다. 지하철 6호선에 버티고개 이름을 딴 버티고개역이 있다.

금호터널 위에 마련한 주민들의 쉼터, 약수사랑터.

학여울 - 강남구

전시 컨벤션 센터 SETEC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학여울역. 학여울은 탄천과 양재천이 만나는 지점인 한강 갈대밭 부근의 옛 지명이 ‘대동여지도’에 ‘학탄(鶴灘)’으로 표기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여울’은 강이나 바다에 물살이 빠르고 세찬 곳을 뜻하는 ‘탄’의 우리말이다. 탄천과 양재천이 만나는 이곳의 지형이 학처럼 생겼다고 하여 학여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 이야기 하나 더

지형이 학 모양을 닮아 학여울이라고 불렀다는 설과 여울에 학이 자주 날아들었기 때문에 그 풍경을 보고 학여울이라 이름 붙였다는 설도 존재한다. 1998년 10월,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이 들어섰다.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 앞에 자리한 학여울 유래 표지석.

옥수동 - 성동구

지하철 3호선과 경의중앙선이 지나는 옥수역이 있는 옥수동. 옥수동 339번지에 있던 옥정수(玉井水)라는 우물에서 이름을 따 ‘옥정숫골’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한강과 중랑천의 두 물이 만난다는 뜻에서 유래한 ‘두물리’에서 다시 ‘두모포’로, 그리고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두모동’이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경성부 관할구역이 확장되면서 ‘옥수정(玉水町)’이 되었다가 광복 후 성동구 옥수동으로 자리 잡았다. 옥수동의 기원이 된 우물은 4·19혁명 이후 옥수로가 개통되면서 매몰되었다. 조선 시대에 옥정수 우물물을 왕에게 바칠 정도로 맛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 이야기 하나 더

1936년 ‘옥수’라는 지명이 처음 공식화되었다. 1955년 금호동과 통합되어 금옥동이 되었다가 1959년 금북동, 금남동, 옥수동으로 다시 나뉘었다.
이후 1975년 성동구가 인근 지역과 경계를 조정하면서 옥수동의 서쪽 일부가 한남동으로 편입되었으며, 현재는 옥수 1·2동이 통합되었다.

옥수동 삼성아파트 정문에 세워진 옥수동 유래비.

류창희 사진 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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