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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추억이 담긴 파전 한 판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서울 맛골목 이야기
청춘의 추억이 담긴 파전 한 판
2022.03

골목을 가득 채우던 기름 내음

모세혈관은 가늘고 혈액 공급량도 적지만 인체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다. 모세혈관을 타고 산소와 영양물질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골목으로 이루어진다. 골목은 일종의 모세혈관과 같다. 미세하고 영세하지만, 그것이 모여 큰길에 합쳐지고 다시 도시의 혈맥이 된다. 골목은 사람들이 기억과 추억을 쌓는 곳이며, 함께 호흡하는 곳이다. 그래서 골목에 들어서면 안온함과 연민에 젖는다. 그곳에는 사람이 산다. 그리고 술과 음식이 있다. 회기역 앞 파전 골목도 그렇다.

“이 골목이 회기역을 사람들의 기억에 남겨놓고 있지요. 그저 파전과 막걸리를 팔 뿐이지만.”

골목의 터줏대감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어 이젠 ‘고참급’에 속하는 이모네왕파전 주인 박명옥(56) 씨의 말이다. 그는 20년 전 이 골목에 들어왔다. 한창나이였다. 어린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이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회기역은 1980년에 들어섰다. 회기역이 이 골목을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실은 역보다 골목이 먼저 생겼다. 1970년대를 파전골목이 시작된 시기로 보는데, 나그네파전이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회기역은 1980년에 생겼으니, 그 전에는 판잣집 수준의 수더분한 술집이 있는 골목이었을 뿐 이다. 회기역은 원래 작은 역이었는데, 경의중앙선과 경춘선, 수도권 1호선이 겹치는 ‘메가 환승역’이 됐다. 1번 출구로 나오면 경희대 방향, 2번 출구는 서울시립대로 갈 수 있다. 한 정거장만 더 가면 외대로 가는 역이 나오고, 고려대와도 그다지 멀지 않다. 이곳의 왕초 격인 나그네파전의 분점이 고대 앞에 생긴 것도 이 권역의 경계를 말해주는 듯하다.

대학가 파전의 대명사, 경희대 파전골목

아주 옛날, 그러니까 내가 대학생일 때 경희대 다니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 이랬다.

“놀러 와라. 파전 사줄게.”

파전 따위(?)를 먹으러 경희대까지 가느냐고 대꾸하면 경희대생은 화를 냈다.

“얼마나 크고 맛있는데, 5000원만 있으면 넷이서 뒤집어 쓴다고.”

1980년대 초에는 5000원 정도로 4명이 소주에 안주까지 간단히 먹을 수 있었다. 배가 부르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 골목에 오면 해결되고도 남았다. 왕골이나 대나무 채반(생선 말리는 용도 같았다)이 얼마나 큰데, 거기 가득 파전이나 김치전이 담겨 나왔다. 주방 이모들이 번철에 굽는 전이 너무 커서 뒤집는 게 어려운 기술이었다. 그정도로 컸다. 경희대 앞 명물이 바로 이 파전골목이었다.

사실 경희대 앞이라고 부르기에는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이곳에서도 한참 걸어가야 한다. 지각할 것 같은 학생들이 합승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거리였다. 게다가 경희대가 정문에 도착하면 끝이냐? 천만의 말씀. 경희대는 캠퍼스가 큰 것으로도 유명해 정문에서 한참 걸어 올라가야 강의동이 나왔다. 옛날에는 그런 캠퍼스가 넓고 예뻐서 ‘유원지’라는 애칭이 있었고, 나중에는 ‘경희랜드’라고도 불렀다. 하여튼 그래도 경희대생들은 걸어서 이 골목까지 진출해 먹고 마셨다. 싸고 넉넉하고 인심이 좋아서였다.

“다들 이곳 파전집 한 곳에서 먹고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지요. 개강하는 봄에 손님이 제일 많았어요. 맺힌 게 많은 시절이었으니까. 가요도 부르고 젓가락을 두드리기도 했어요. 파전집이 네댓 넘게 있었는데 큰길까지 노랫소리가 들려왔으니까요.”

“당시 파전은 ‘운동장만 하다’고 했다. 배고픈 학생들에게 은혜로운 축복이었다.
경희대 앞 명물이 바로 이 파전골목이었다.”

사라져가는 노포의 흔적

이 골목은 나그네파전을 필두로 낙서파전이 오랜 노포다. 아쉽게도 두 집은 문을 닫았다. 1세 할머니들의 노쇠가 그 원인이다. 나그네파전의 주인 공씨 할머니가 피란 갔다가 부산에서 동래파전을 맛본 것이 오늘날 파전골목의 시초가 되었다. 이곳 개천을 당시 경희대생들은 ‘파리의 센강’ 이라고 불렀다. 센강 변에서 파전을 먹는 대학생이라니! 운치와 낭만의 시대였다.

이제 이 골목에는 학생들이 과거처럼 많이 오지 않는다. 다른 먹거리가 많은 데다 단체로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청춘을 구가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2년 동안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비대면 수업으로 출석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노포들은 오지 않는 학생을 기다리다가 문을 닫았다. 그래도 아직 파전골목의 힘은 남아 있다.

“파전이 메인이기는 하지만 다른 메뉴도 팔아요. 저희 집은 세트 메뉴로 유명하고요. 낙지홍합탕도 있어요. 학생 외에 등산객이나 직장인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서 이런 메뉴도 잘 나갑니다.”

이모네왕파전 박 사장의 말이다. 그렇지만 제일 맛있는 건 파전이다. 특히 기름을 넉넉하게 둘러 겉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부치는 파전이 이 일대의 표준적인 맛이다. 돈가스처럼 바삭하게 부친다고 ‘돈가스파전’이라는 애칭이 붙은 경우도 있다. 광장시장 빈대떡도 부드러운 질감이 바삭하게 바뀌었듯이. 세상이 다 바뀌는데 파전이라고 그대로 있겠는가.

골목의 역사, 먹거리와 함께 기억하다

1970년대는 파전 한 장에 1000원, 2000원 하다가 1980년대에 3000원, 2000년대에는 5000~6000원 했다. 요새는 1만원이다. 등록금이 1970년대에 비해 20배가량 올랐는데 파전값은 10배도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싸고 푸짐한 맛에 사람들이 몰려온다. 현재 대여섯 곳의 파전집이 영업하고 있는데, 과거처럼 파전 하나로 승부하는 집은 없다. 그래도 여전히 주메뉴는 파전이다. 배고픈 청춘들이 오직 양으로 승부하는 이 골목을 사랑했다. 지금은 학생 외에 시민의 발길도 잦다. 파전골목은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고소한 파전 냄새가 골목에 다시 가득 찬다. 저녁 시간이 시작되었다.

두툼한 파전을 부치고 있는 이모네왕파전의 박명옥 사장.

회기역 파전골목을 지키는 이모네왕파전 직원들과 박찬일 셰프.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인생 파전을 만나다. 달큰한 파와 해물의 찰떡궁합

노포의 자존심 #이모네왕파전

파전골목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취향대로 고를 수있는 A~L의 다양한 세트 구성과 해물파전 1만원 등 좋은 가성비로 유명하다. 파전은 기름망에 올려 나와 끝까지 바삭하게 먹을 수 있고, 11시부터 운영해 점심 식사 메뉴로도 인기다.

주소 동대문구 회기로28길 12-3
문의 02-959-8318

타임머신 파전 #동학주점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다면 주저 말고 문을 열어야 한다. 시간여행을 하듯 7080 분위기가 물씬 나는 노포로 신림동 녹두거리의 인기 주점이다. 직접 담그는 국내산 기본 김치부터 파전과 도토리묵무침, 제육볶음까지 메뉴 대부분이 1만원대다.

주소 관악구 대학5길 29
문의 02-872-6107


한국형 피자의 원조 #나그네파전

경희대를 기점으로 고려대, 한양대 등 대학가에 파전집 여러 곳을 운영하던 나그네파전이 새롭게 자리를 옮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배달이나 주문에 적합하도록 피자 박스를 닮은 파전 박스를 준비했다. 고추튀김과 왕동그랑땡도 추천.

주소 성북구 고려대로28길 7
문의 02-929-4838


낙지한마리 파전 #무교동유정낙지

일반적인 파전에 오징어가 주인공이라면, 이곳은 낙지볶음의 원조답게 낙지 한 마리가 호방하게 들어 있다. 매콤한 낚지볶음과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은 낙지한마리 파전은 깔끔하면서도 낙지의 쫄깃한 식감까지 놓치지 않는다.

주소 중구 세종대로21길 22 태성빌딩 101호
문의 02-725-0646


회기역 파전골목을 찾는다면

박찬일 취재 김지영 사진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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