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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고을

이야기가 있는 고을>
2022.02

문화

서울 옛 이름

이야기가 있는 고을

고을은 마을보다는 큰 단위로, 조선 시대 행정구역인 주·부·군·현 등을 두루 이르던 말이다.
서울의 옛 지명 중에는 고을의 준말인 ‘골’에 장소의 특징이나
전해오는 이야기를 결합한 다양한 이름이 존재한다.
이달에는 고을의 이름을 통해 그 유래부터 숨은 이야기까지
유추해보는 재미가 쏠쏠한 장소로 떠나본다.

무수골 - 도봉구 도봉동

지하철 1호선 도봉역에서 도봉초등학교 방향으로 걷다 보면 기다랗게 이어진 물길인 무수천을 만날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무수골’이라는 자연 마을에 닿는데, 이 마을은 500년이 넘는 묵직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 시대 세종의 아홉째(서자) 아들인 영해군의 묘를 만들면서 생성된 마을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무수골이라는 마을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세종이 생전에 영해군의 묘를 찾았다가 이곳의 물맛을 보았는데, 물맛이 좋고 마을의 경치 또한 훌륭해 ‘없을 무(無)’와 ‘근심 수(愁)’ 자를 써 ‘아무 걱정이 없는 곳’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하나는 대장장이가 많아 수철동 또는 무쇠골로 불리던 것이 와전되어 무수골이 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도봉구 도봉로173길, 무수교 인근에 세운 무수골 유래비.

· 이야기 하나 더

무수골은 1971년 그린벨트로 지정되었고, 이후에는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해 개발이 제한되었다. 2003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자연 풍광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무수골에는 서너 개의 다랑논(비탈진 경사면을 개간해 계단식으로 조성한 좁고 긴 논)이 남아 있는데, 이는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논으로 알려진다.

궁골 - 구로구 궁동

궁동은 조선 시대 선조의 일곱째 딸인 정선옹주가 출가한 후 머무른 곳이다. 정선옹주는 예조판서를 지낸 충정공 권협의 손자 권대임과 혼인했는데, 이 집안은 상당한 재력을 갖추어 궁궐 못지않게 크고 화려한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궁이 있는 마을과도 같다 하여 이곳을 ‘궁골’이라고 불렀다. 현재 궁동저수지생태공원 바로 옆에는 정선옹주 묘역이 문화유적지로 보존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정선옹주뿐만 아니라 옹주의 남편인 권대임과 안동 권씨 집안의 무덤 총 6기가 조성되어 있다. 현재 지명인 궁동은 이 궁골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며, 궁골의 유래를 새긴 표지석이 서서울생활과학고등학교 도서관 건물 맞은편에 세워져 있다.

궁골 표지석.

· 이야기 하나 더

풍수지리학자들은 하나같이 안동 권씨 일가의 묘역 터를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는다. 궁동의 주산인 와룡산의 동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가 좌청룡, 서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가 우백호를 이루고, 산줄기 중심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 끝에는 저수지가 있어 풍수지리설에서는 이를 ‘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빨래골 - 강북구 수유1동

빨래골은 이름부터 무엇을 하던 곳인지 명확하게 전달되는 장소다. 조선 시대 궁궐 무수리들이 빨래를 하기 위해 찾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무수리들은 대개 궁궐 근처인 청계천에서 빨래를 했지만, 그 가운데 속옷과 같은 빨랫감은 따로 모아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와서 빨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아낙들의 빨랫감과 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잠시나마 궁궐과 떨어진 곳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도 있어서였다고. 빨래골 입구에 설치한 ‘빨래골의 유래’ 안내판에는 “빨래골은 답답하고 엄격한 궁을 떠나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쉴 수 있었던 곳으로서 옛 궁녀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는 곳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강북 03번 마을버스를 타면 기점인 빨래골까지 갈 수 있으며, 북한산 둘레길 구간에도 속해 발밤발밤 걷는 길 역시 잘 조성되어 있다.

강북구 인수봉로23길 60, 빨래골공원지킴터 인근에 세워진 빨래골 터 표지석.

· 이야기 하나 더

수유동은 예로부터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의 양이 많아 ‘무너미’ 라고 불렸다. 무너미는 저수지의 물을 저장하기 위해 둑을 쌓고 한쪽 둑만 조금 낮추어 물이 넘쳐흐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 빨래골의 물 흐르는 방향과 경사를 보면 적당히 기울어져 있어 빨래하기에 용이한 환경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빨래골공원지킴터 앞 표지판에는 과거 이곳 주변의 계곡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

제민주 사진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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