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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역사가 담긴 닭한마리 냄비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서울 맛골목 이야기
서울의 역사가 담긴 닭한마리 냄비
2022.02

진짜배기 서울 요리

서울엔 많은 골목이 있지만 서울이 발상지인 음식 골목은 그리 많지 않다. 인구가 몰리고 소비력이 높아지면서 골목을 형성해 음식 문화가 꽃피우기는 했어도 ‘오리지낼리티’가 100%일 수는 없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닭한마리(붙여 쓰는 이유는 조금 후에 설명하겠다)는 진짜 서울산이라 할 수 있다. 닭은 전국에서 먹었지만 ‘닭한마리’ 특유의 먹는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 닭칼국수도 팔고 안주로 닭한마리도 내기 시작했어요. 1970년대 일이에요.”

‘원조원할매소문난닭한마리’ 안복순(67) 대표의 말이다. 열여덟 살 무렵인 1970년대 후반, 사람 많이 모이는 동대문시장 골목에 작은 식당 자리를 마련한 어머니(간판에 적힌 ‘원할매’)를 도와 이 가게를 시작했다는 안 대표는 “시장 상인과 공장 직공, 주머니가 가벼운 월급쟁이의 가게로 유명해지면서 닭한마리 골목이 형성됐어요”라고 말한다. 닭한마리는 당연히 띄어 써야 한다. 하지만 이 원고에서는 일단 붙여 쓰고자 한다. 일종의 고유명사화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사람이라면 상당수가, 아니 대다수가 닭한마리의 명성을 알고 있고, 그렇게 굳어진 입말이 언론이며 공식적인 자료에 등재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부분은 국립국어원에서 내리는 해석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이 동네에는 원래 동대문고속버스터미널이 있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많이 다녔다. 나중에 마장시외버스터미널, 강남서울고속터미널이 생기면서 폐쇄되었지만 규모가 꽤 컸다. 터미널을 이용하는 손님이나 시장 상인, 미싱사들이 바쁜 시간에 쫓기듯 “닭 한 마리 빨리 달라”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한 가지는 닭 한 마리를 시켜서 백숙으로 먹고, 국물에 국수를 삶아서 ‘완전하게 먹는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은 속도를 무기로 한다.

닭백숙은 상당수 집이 예약 전화를 받고 삶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골목에서는 닭을 미리 애벌로 익혀둔다. 그리고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한 번 더 끓여 고기 먼저 재빨리 먹고, 국물에 국수를 마는 것이 고유한 방식이 되었다. 청계천 평화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 등을 아우르고 있는 곳이라 미싱사, 점포 주인들의 수요가 많았다. 바로 붙어 있는 생선구이 골목과 함께 빠르게 양질의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닭한마리 성지가 된 셈이다.

“평화시장 손님이 정말 많았지요. 지금은 인구가 꽤 줄었어요.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식사 시간이 다 다른데, 그래서 하루 종일 손님으로 미어터졌지요. 닭을 몇백 마리씩 삶았어요. 최대 1000마리까지 삶았으니까요.”

이 골목은 둘러보면 사람이 꼬일 수밖에 없는 지리적 특성이 있다. 조선 시대 후기에 이미 청계천과 을지로는 중인들이 강력한 상업적·기술적 현장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에 시장이 들어서면서 그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졌다.

“닭한마리의 매력은 없이 살던 시절에 다 같이 나눠 먹던 재미에 있어요.
냄비를 앞에 두고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배부르게 닭고기 뜯고, 국수를 삶는 데 있지요.”

출출함을 채우는 푸짐한 냄비

닭한마리가 백숙과 다른 결정적 이유는 닭고기 육수를 사용한 칼국수를 이 음식의 원형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닭한마리는 꽤 거한(?) 냄비 요리인데도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국수사리까지 넣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1980~1990년대 호황으로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은 커졌고, 이 명성을 듣고 인근 회사원들까지 가세하면서 골목은 급성장했다. 안 대표는 닭한마리 한 냄비 가격이 2500원일 때 시작해서 2만원대에 이르는 지금까지 골목의 역사를 그대로 지켜보았다.

집집마다 조리법이나 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비슷해졌다. 원래 골목 음식은 제공 방식이나 재료 등을 집집마다 어느 정도 서로 선을 맞춘다. 한 집에서 시작한 방식이 인기를 끌면 다른 집도 금세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온 구성이 8호나 9호 닭 한 마리에 감자, 많은 양의 대파와 다진 마늘 등을 넣고 탕을 끓인 후 여기에 부수적으로 양념을 하고 국수를 끓여 먹는 형식이다. 닭한마리 골목이 유명해지면서 점차 구성이 다양해져 버섯 등을 넣어 먹기도 했다.

“닭한마리의 매력은 없이 살던 시절에 다 같이 나눠 먹던 재미에 있어요. 냄비를 앞에 두고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배부르게 닭고기 뜯고, 국수를 삶는 것이지요.”

닭한마리가 백숙과 다른 점이 또 있다. 닭한마리는 양념을 찍어 먹는다. 백숙은 보통 소금이 기본인데, 정신과 육체가 모두 고달픈 시장 사람들의 까칠한 입맛에는 매콤새콤한 맛이 제격이었다. 간장에 식초를 넣고, 겨자와 매운 다지기를 넣어 뻑뻑하게 만든 양념장에 닭고기를 찍어 먹으면 고기의 수분이 섞여 농도가 점차 변한다. 닭고기를 다 먹은 시점이 되면 양념장이 묽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국수사리를 넣는다. 감각 있는 닭한마리 주인의 아이디어가 이런 식사 방법을 맞추듯 만들어낸 셈이다. 닭고기와 육수가 내는 진하고 담박한 맛, 여기에 곁들이는 배추 물김치의 개운함과 톡 쏘는 양념의 배합은 거의 완벽한 맛의 흐름을 타면서 멋지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게 된다.
이처럼 개성 있는 음식이 외국에도 알려진 건 당연한 일. 처음에는 일본인이 몰려왔고, 중국인도 대세에 합류했다. 여담이지만, 트럼프 정부 시절 국무부 장관으로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지낸 스티븐 비건이 닭한마리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한국을 떠날 때 외교부에서 닭한마리 전문 식당을 통째로 빌려 만찬을 치른 일화는 유명하다.

코로나19 탓도 있어서 닭한마리 골목의 경기가 예전만 못 하다. 골목 밖으로 퍼져나가던 구수한 닭 삶는 냄새와 왁자한 손님들의 흥성한 분위기가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한소끔 끓여가며 먹는 닭한마리.

3대째 닭한마리 골목을 지키고 있는 안복순 대표와 박찬일 셰프.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서울’표 닭한마리 4鷄4色

젊은 입맛 사로잡은 #홍대닭한마리

얼리지 않은 신선한 브랜드 닭만 사용해 무엇보다 깔끔한 맛이 일품. 식당을 찾는 인원수에 맞춰 닭부터 사리까지 골고루 들어 있는 세트를 주문하면 좋다. 특히 물김치를 칼국수와 함께 넣어 끓이면 시원한 김치칼국수 완성.

주소 마포구 월드컵북로2길 81
문의 02-334-7326

진짜 원조 #원조원할매소문난닭한마리

분점 없이 처음 그 자리를 지키며 3대째 닭한마리 골목의 역사를 쓰고 있는 45년 전통의 노포. 보양식인 닭백숙 못지않게 11가지 한약재와 채소, 그리고 50일 된 닭으로 우려낸 깊은 맛의 육수가 일품이다. 40일 된 신선한 닭은 손님상에 낸다.

주소 종로구 종로5가 282-22
문의 02-2279-2078


줄 서서 먹는 #공릉본점닭한마리

메뉴 한 가지로 공릉동을 넘어 전국에 닭한마리 맛을 전파하는 곳. 깨끗하게 손질한 통닭을 냄비째 제공하며, 능숙한 직원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면 10분 정도 끓인 뒤 먹으면 된다. 포장 손님도 끊이지 않는 곳으로 맛집 인정.

주소 노원구 동일로 1020
문의 02-972-7459


퇴근길 필수 코스 #백부장집닭1마리

떡, 감자, 대파와 함께 깔끔하게 자른 닭한마리가 냄비째 상에서 끓으면 쫀득한 떡 사리를 먼저 먹어보자. 담백한 육수의 비법은 깨끗하게 손질한 닭발. 이곳만의 새콤달콤한 특제 양념과 닭고기, 그리고 칼국수의 궁합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주소 종로구 삼봉로 100-1
문의 02-732-2565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을 찾는다면

박찬일 취재 김지영 사진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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