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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너머 토박이말

인터뷰 · 탐방 · 서울 옛 이름

고개 너머 토박이말
2022.01

‘고개’의 사전적 정의는 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이다. 경사가 어느 정도 있지만 대부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기에 고개는 사람들의 주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다. 서울에는 이러한 고개가 230여개 있다고 알려진다. 북한산을 진산으로 한 서울에는 이 외에도 북악산·인왕산·남산 등 크고 작은 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런 지형적 특성이 서울 곳곳의 다양한 고개를 형성했다. 이번 달에는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고개로 떠나 그곳의 토박이말을 확인해본다.

배오개(배오개다리) - 종로구 인의동

세종로 청계광장에서 청계천을 따라 걷는다면 여기서 아홉 번째로 만나는 다리를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자. 이 다리의 이름과 관련한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종로구 예지동과 중구 주교동을 연결하는 위치에 조성된 이 다리는 ‘배오개다리’로, 토박이말 지명 ‘배오개’에서 이름을 따왔다. 과거 이 일대에 있던 배오개고개는 워낙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짐승은 물론, 때로는 도깨비가 출몰한다는 이야기도 퍼져 있던 곳. 그래서 ‘도깨비고개’라고도 불렸는데, 사람들은 밝은 대낮에도 고갯길을 넘기가 무서워 ‘100명은 모여야 넘을 수 있는 고개’라는 의미로 ‘백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백재’, ‘백채’ 등으로 변하다가 발음상 편의를 위해 ‘배오개’로 정착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 이야기 하나 더

배오개고개의 또 다른 이름 유래는 한자 ‘배나무 이’, ‘고개 현’을 딴 이현(梨峴)이라는 명칭과 관련이 있다. 고개 입구에 있던 여러 그루의 배나무 때문에 이 이름으로 불렀는데, 음이 변하며 ‘배오개’가 되었다는 것. 인근에 자리한 조선시대 광해군의 사저이름을 이현궁으로 지은 점을 고려하면 배오개의 유래가 배나무와 연관이 깊다는 점도 꽤 큰 설득력을 지닌다.

산골고개 - 은평구 녹번동

은평구 녹번동과 서대문구의 경계 지점인 이 고갯길은 조선시대만 해도 호랑이가 나올 만큼 산세가 험하고 울창한 숲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도로 정비를 마친 현재는 서울 북서쪽 교통의 요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고갯길을 지나는 길에는 ‘산골’이 새겨진 비석이 여럿 자리한다. 도로변에는 ‘산골고개’ 유래비가, 도로 옆으로 난 석벽에는 ‘산골’과 ‘산골판매소’라는 비석이 있는데, 이 고개와 산골이라는 이름은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산골이라고 하면 흔히들 ‘산과 산 사이의 움푹 들어간 으슥한 곳’을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곳의 산골은 다른 의미다. 판매소가 존재했다는 데서 유추할 수 있듯 여기서의 산골은 장소가 아닌 물건이다. 이황화철,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한 푸른빛을 띠는 광물질을 바로 산골이라고 부르는 것. 이 물질은 접골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예로부터 골절 치료를 위해 찾는 이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산골은 다른 말로 자연동, 녹반으로도 불린다. ‘푸른 광물’이라는 뜻을 가진 녹반에서 ‘녹반현’으로, 울창한 숲으로 인해 푸른 울타리라는 의미의 ‘녹번현’으로도 불렸고, 이것이 현재 녹번동 지명의 유래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은평구 응암동 산 1-120에 세워져 있는 산골고개 유래비.

· 이야기 하나 더

녹번동의 옛 이름은 양천리다. 이 지명에도 숨은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에 이곳은 북쪽으로 의주까지, 남쪽으로 부산까지 각각 1000리여서 ‘천리(양방향으로 1000리)’라고 불렸다.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해 한양을 기점으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길목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서울혁신파크(통일로 684) 앞에 지명의 유래를 새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진고개 - 중구 명동

서울의 옛 마을 이름 중에 ‘남산골’이라는 곳이 있다. 이 마을 주변에는 야트막한 고개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는데, 고갯길의 흙이 유난히 질어 비라도 내린 날에는 통행이 어려웠다. 진흙의 원인은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마른내)가 약해 흙이 빠져나가지 못한 탓이었고, 사람들은 길이 진 고개라 하여 이곳을 ‘진고개’로 불렀다. 길이 마를 때까지는 사람의 왕래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진고개의 위치는 현재 충무로2가 전 중국대사관 뒤편부터 세종호텔 뒤편 일대까지 해당한다. 1906년 고갯길을 파내고 높이를 낮춰 현대식 도로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때 묻은 하수도가 서울 시내 하수구 도랑의 시초라고 알려진다.

중구 명동8가길 32에 세워진 진고개 유래비.

· 이야기 하나 더

진고개 일대의 남산골 마을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가난한 선비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터였다. 날이 좋으나 흐리나 나막신 하나만 신고 다녔던 선비의 발걸음 소리에서 따온 ‘남산골 딸깍발이’라는 표현은 당시 모습을 잘 보여주는 단어로 남아 있다. 진흙투성이의 고갯길은 재정비를 통해 가장 화려한 번화가로 다시 태어났다. 명동의 명성이 자자해지는 출발점이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제민주 사진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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