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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으로 맛보는 천국

국밥 한 그릇으로 맛보는 천국>
2022.01

여행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서울 맛골목 이야기

국밥 한 그릇으로 맛보는 천국

음성·문자 지원

언제나 그 자리에, 낙원동 국밥 골목

흔히 낙원동이라 부르고, 탑골공원 동네라고도 하는 이 일대는 국밥의 성지다. 2000년대 들어 치킨집과 카페가 들어섰지만 오랫동안 국밥이 이 동네의 주인이었다. 특히나 해장국이 원조다. 이곳 국밥집의 쌍두마차인 ‘이름난집’과 ‘소문난집’은 현재도 2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의 국밥으로 많은 이를 ‘먹여 살렸다’. 나는 이들 국밥이 500원 하던 시절부터 다녔다. 라면이 300원일 때니까 얼마나 싼값이었는지. 당시 다른 국밥은 1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늘 반값이 이곳 낙원동 국밥집들의 표준이었다. 이 동네는 지금도 무엇이든 대체로 반값이다. 이발비도 5000원이고, 치킨도 두 마리에 1만원이다.

낙원상가는 서울시 초기 주상복합아파트로 기념비적 주거 작품이다. 특히 공용 도로 위에 건물을 띄워 ‘토지가 없고 건물만 있는’ 초유의 역사적 건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도 건재하다. 이 상가 지하에 시장이 있다는 걸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현재는 많이 쇠락했지만, 한때는 주상복합아파트를 떠받치는 시장, 근처 상가에 물건을 대는 시장으로 기능했다. 이곳에 지금도 분식과 국수를 파는 노점 같은 가게가 꽤 있다. 현재도 3000원대 잔치국수를 판다. 막걸리 한 병에 국수 한 그릇으로 요기하는 어르신들이 애호하는 곳이다.

조선시대 탕반부터 오늘날의 돼지 부속 고기까지

바로 허리우드극장 앞이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국밥 골목이다. 순댓국이라고도 하고, 돼지국밥이라고도 하는 국밥을 주로 판다. 공식 이름은 ‘낙원동 돼지국밥 골목’이다. 국밥은 옛날 조선인, 나중에는 한국인의 외식 중 으뜸이었다. 김홍도의 그림 ‘주막’에도 뚝배기를 기울여가며 국물을 퍼먹는 청년이 보이고, 여러 기록에도 외식에는 언제나 국밥이 있었다. 더구나 이 일대는 국밥의 성지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탕반집인 이문설농탕, 청진옥이 바로 이곳을 무대로 한다. 나랏일을 보던 육조거리와 한양의 종합시장 격이던 육의전(남대문시장은 초기에는 그저 창고였다)이 지척이었으니 사람이 엄청나게 몰렸고, 그들의 한 끼 식사로 빨리 먹을 수 있는 국밥만 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밀국수는 비싸고 뽑는 데 시간이 걸렸으므로 국밥이 먼저였다.

낙원상가 하부, 과거 허리우드극장이었고 현재는 서울시에서 실버영화관으로 운영하는 극장을 향해 들어가는 좁은 골목이 바로 낙원동 돼지국밥 골목을 이룬다. 현재 아홉 집 정도가 영업하고 있으며, 원래는 해장국 등 다양한 국밥을 팔았지만 현재는 돼지(순대)국밥과 돼지 부속 고기로 만든 수육을 주로 낸다. 사람들 기호에 더 맞고 원가도 더 싸서 값을 저렴하게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해장국은 소뼈와 내장 등을 넣어야 해서 원가가 꽤 든다. 반면 돼지국밥은 돼지 머릿고기와 간, 허파, 내장 등을 쓰므로 저렴하게 서민의 국밥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 일대는6000원 정도가 표준가격이다. 순댓국이 보통 8000원 하기 때문에 도심에서 아주 싼 가격이라 할 수 있다.

43년 전부터 이 골목에서 장사한 서숙녀 할머니는 ‘강원도집’이라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골목의 역사를 아는 증인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영하 20도에도 가게 앞에 앉아 계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로해서 이제 일은 많이 못하니 지배인(?) 몫을 하신다.

“내가 젤로 오래 했지. 다들 주인이 많이 바뀌었어. 여기일하기가 힘들고 값이 싸서 남질 않으니까. 그래도 단골이나 배고픈 사람들이 오니까 즐겁게 일해.”

“낙원동 일대의 돼지국밥은 6000원 정도가 표준가격이다.
순댓국이 보통 8000원 하기 때문에 도심에서 아주 싼 가격이라 할 수 있다.”

골목 정취 따라가는 추억 여행

낙원동 국밥 골목의 연원은 분명치 않은데, 한국전쟁 후 이 일대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미군 시레이션(군용식량)나무 상자, 판자 등으로 얼기설기 엮은 임시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밥집도 생겨났다. 이 골목도 대략 1960년대에는 모양을 갖추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 것. 점차 골목의 전문화 경향에 따라(그렇게 함으로써 인지도, 지명도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돼지순댓국밥이 특화된 먹자골목으로 이름이 나고 있다. 탑골공원을 지나 낙원상가로 향하면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강원도집, 광주집, 전주집, 호남집, 충청도집 등 전국 각지에서 고향을 떠나 상경한 이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국밥집이 줄지어 있다. 현재 이 골목에서 순대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많이 팔았는데, 머릿고기를 중심으로 낙원동 국밥의 경향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골목 스타일이 정해졌다. 아예 부산·경남식 국밥을 표방하는 돼지국밥집이 생겨서 성업을 이룰 정도다.

서울에는 많은 순댓국밥·순대 골목이 있는데, 대개 시장을 끼고 성업한다. 한데 신림동 순대타운(과거에는 물론 그냥 순대 골목이었다)은 순대를 주메뉴로 하는 특이한 곳이다. 대학생과 고시생이 모이는 곳인 만큼 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의 술안주, 외식 메뉴로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는 건물의 몇 개 층을 가득 채우는 독특한 형태의 타운이 형성되어 있는데, 각 층의 좁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후끈한 열기 가득한 난전이 펼쳐진다. 코로나19사태 이후 이곳도 배달이나 밀키트 형태로 판매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다고 한다.

돼지는 원래 농가의 부업 정도로 몇 마리씩 치던 것이 사료 수입과 공급이 크게 성장하면서 1970년대부터 소비량이 늘었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게 되면서 자연스레 부속물인 머릿고기, 내장, 족발을 쓰는 식당도 늘어났다. 순댓국밥, 분식집 순대, 족발집의 성장은 이런 저변에서 비롯한 것이다.

서울의 골목은 여전히 무럭무럭 김이 오르는 국밥 솥이 있어야 진짜 같다. 오늘도 우리는 국밥을 ‘뜨시게’ 한술 뜨고 다시 일할 힘을 북돋우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국밥집들이 오랫동안 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신림동 먹자골목의 명성을 지키고 있는 신림동 순대타운 전경.

낙원동 국밥 골목의 터줏대감인 서숙녀 대표와 박찬일 셰프.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순대의 변신은 무죄!

국밥부터 스테이크까지, 어디까지 먹어봤니?

추위를 날리는 먹킷 리스트

낙원동 숨은 고수 #강원도집

단골 많기로 소문난 ‘강원도집’은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솥에 뽀얀 국물이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끓고 있다. 돼지국밥은 토렴식으로 넉넉한 고기와 순대까지 담겨 나오고, 주문 즉시 다양한 부위로 내주는 머릿고기 역시 일품이다.

주소 종로구 삼일대로 422
문의 전화 문의 불가

모둠순대 편백찜 #청와옥

국내산 돼지고기에 여덟 가지 한약재를 넣어 끓이고, 주제가 있는 인테리어로 시선까지 사로잡은 신생 순댓국밥집. 기본 빨간 국물에 맵기와 국밥의 고기도 취향껏 선택 할 수 있다. 편백찜기에 종류별로 담겨 나오는 모둠순대 역시 인기 메뉴.

주소 중구 을지로 110
문의 02-2266-1300


백순대 철판볶음 #호남집 영미네

신림동 순대타운은 7080 세대 청춘들의 아지트였으며, 그 시절 추억의 먹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산처럼 쌓인 순대곱창과 곱창볶음. 당면, 각종 채소와 함께 철판에 볶은 후 특제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주소 관악구 신림로59길 14 원조 민속 순대타운 308호
문의 02-874-4414


한국형 소시지 순대 #순대실록

독일 전통 소시지가 연상되는 순대 스테이크는 구운 다음 따뜻하게 데운 철판 접시에 담아 상에 올린다. 칼로 잘라 포크로 한 입 넣으면 각종 견과류부터 돼지고기, 채소의 향연이 펼쳐진다. 치즈를 추가하면 눈앞에서 화려한 불쇼가 펼쳐진다.

주소 종로구 동숭길 127
문의 02-742-5338

박찬일 취재 김지영 사진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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