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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생각나는 종로 보쌈골목

이맘때면 생각나는 종로 보쌈골목>
2021.11

여행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서울 맛골목 이야기

이맘때면 생각나는 종로 보쌈골목

음성·문자 지원

종로 먹자골목의 흔적, 아래피맛골

예전 서울 도심 사람들은 한잔하자고 하면 종로와 중구로 나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 외식 음식인 설렁탕, 불고기(너비아니·갈비 포함), 장국밥, 빈대떡 같은 온갖 음식이 이 일대에서 번성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터도 제일 많았고, 주요 기업의 본사와 관공서,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업 시설이 몰려 있어 그만큼 직장인도 많았다. 일은 음식과 유흥을 요구했고, 종로는 조선 시대부터 배태되어 이어온 ‘먹자골목’의 명성을 이어갔다. 피맛골과 육의전 뒤, 그러니까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해당하는 먹자타운, 최근에 번성하긴 했으나 금천교시장(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낙원동 일대, 고급 요정과 술집이 있던 와룡동과 인사동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빼면 섭섭한 것이 현 YMCA 건너편인 관철동과 종로3가 쪽으로 이어진 관수동 라인이다. 관철동은 1970~1980년대에 청춘 문화의 거점이었고, 명동의 통기타·생맥주 문화의 대중 버전이자 확장 버전이었다. 특히 고고장, 디스코텍이 많아 젊은이들이 진을 쳤다.

피맛골은 흔히 종로1가에서 2가로 이어지는 뒷골목을 이른다. 현재 시점으로 보면 교보빌딩에서 YMCA 뒤편까지로, 위피맛골과 아래피맛골로 나뉜다. 그중 아래피맛골은 종로3가 관수동의 좁은 골목길을 이른다. 이곳은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에 서민의 밥집, 술집이 몰려 있는 곳으로 명성을 떨쳤다. 위피맛골도 그렇지만, 피맛골이란 고관들이 타고 다니던 말을 피해 서민이 숨어드는 곳이라는 의미대로 아주 좁고 바글거리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래 피맛골도 마찬가지다. 사람 두엇이 겨우 어깨를 피해 오갈 정도로 좁다. 좁아서 골목의 서정이 제대로 살아나며, 좌우로 늘어선 가게들의 풍경과 음식 냄새가 서울 사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골목에 가득한 고기 삶는 풍경

우리가 오늘 거닐고 취재할 동네는 이른바 ‘보쌈골목’이라 부르는 곳이다. 서쪽으로는 종로2가, 동쪽으로는 종로3가에 닿는 중간 지점의 아래피맛골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에 이미 먹자골목으로 기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밥집과 술집이 꽉 차 있는 골목이다. 낮에는 밥, 저녁에는 술을 팔았다. 나의 1970~1980년대 기억으로 낮에는 생선구이를 비롯한 백반이, 저녁에는 온갖 안주가 다 등장했다. 1980년대 들어 차츰 인기가 오르기 시작한 족발집과 보쌈집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골목에서 보쌈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삼해집’이 인기를 모으면서 하나둘 보쌈으로 메뉴를 변경했고, 현재는 스물 남짓한 가게가 보쌈을 취급한다. 그중 굴보쌈으로 유명한 ‘최부자보쌈’의 송영민 대표(54)는 20년 전 이 골목에 들어와 현재까지 보쌈을 팔고 있다.

“연말이면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이 많아서 눈코 뜰 새 없었어요. 보쌈이 제일 인기 있어서 하루 종일 고기를 삶아 내느라 쉴 틈도 없었죠. 함께 내는 굴은 매일 통영에서 들여왔습니다.”

이 골목의 특징은 거저 주는 안주가 많다는 점이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하나둘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보쌈을 주문하면 동태전과 감자탕이 따라 나온다. 원래 보쌈은 김치를 추가하면 돈을 더 받지만, 이 동네는 어지간하면 거저 준다. 양이 아주 많아 5만~6만원이면 서너 명이 술까지 넉넉하게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돼지고기 수육에 굵직하게 썰어서 씹는 맛이 있는 무채와 갖은양념을 넣어 둥글게 말아 싼 보쌈김치를 곁들여낸다. 굴 철이 되면 굴보쌈이 더해지는데, 바로 이 굴보쌈이 보쌈골목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찬바람 불면 이 동네로 굴보쌈을 먹으러 오는 시민이 줄을 이었다. 보쌈은 경기도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함께 내는 보쌈김치는 서울의 뿌리 중 하나인 개성의 명물 음식이다. 비록 형태와 맛은 변했을 테지만, 보쌈은 서울다운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식당용 보쌈은 원래 민가에서 김장철에 먹던 음식이 식당 메뉴가 되었을 것이다. 또는 고급 개성 음식점의 계절 메뉴가 일반 대중식당으로 번져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사철 배추를 구할 수 있는 지금은 고정 메뉴로 팔리고 있다.

“돼지고기 수육에 굵직하게 썰어서 씹는 맛이 있는 무채와
갖은양념을 넣어 둥글게 말아 싼 보쌈김치를 곁들여낸다.”

서울 맛골목의 진수, 종로 골목

원래 보쌈은 찬 바람 불고 배추가 나와야 가능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는 이 동네에서 온갖 요리를 팔았다. 조선 말기 무렵에는 이 동네에 선술집이 많았고, 내외주점과 너비아니집 등이 있었다고 한다.

종로라는 현재의 지명은 두 가지 유래가 있다. 하나는 운종가(雲從街), 즉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는 의미에서 비롯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신각의 종각이 있어 종로(鐘路)라 칭했다는 설이다. 어떤 의미든 이 일대가 고려시대에 이미 행궁이 있었고, 조선 시대에 크게 번성하기시작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위엄과 규모를 알려주는 곳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도 종로구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확장하는 동안 중구가 크게 성장했으나 한양의 심리적·정치적 핵심은 종로였다. 흥미롭게도 종로는 재개발과 역사적 변화로 큰 빌딩이 들어서고 스카이라인이 바뀌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옛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상업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주거지역이었던 종로는 지가 상승, 교육 환경의 변화 그리고 강남 이전 등으로 민가가 대폭 줄어들기는 했지만, 서울의 명물인 피맛골의 정서는 지켜가는 쪽으로 진행되었으면 한다.

올해 굴은 일찍 맛이 들었다. 갓 담근 보쌈김치에 싱싱한 생굴을 올려 먹는 생각만으로도 침이 넘어간다. 종로3가 아래피맛골의 굴보쌈골목이 바빠질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삶아낼 정도로 인기 있는 보쌈용 고기.

종로3가 보쌈골목에서 만난 박찬일 셰프.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당신을 위한 먹킷 리스트

서울에서 보쌈 즐기기

고기 맛, 김치 맛 #보쌈 맛집

통영굴과 함께 먹는 #최부자보쌈

보쌈 먹으러 왔다가 굴 맛에 반하고, 즉석에서 구워내는 생선전과 돼지 등뼈 감자탕까지 한 상 제대로 대접받는 식당. 종로3가 보쌈골목에서도 통영에서 매일 공급받는 굴을 활용한 굴보쌈으로 유명하다.

  • 주소 종로구 수표로20길 22
  • 전화 02-2272-4726

귀한 돼지항정살을 사용 #영광보쌈

오로지 ‘보쌈’ 한 가지 메뉴만 취급하는 40년 전통 식당으로, 예쁘게 모양 내지 않고 막 썰어 낸 수육이 일품이다. 시원하면서도 달지 않은 개성식 보쌈김치와 함께 제공하는 부추무침도 보쌈과 궁합이 좋다.

  • 주소 마포구 만리재로1길 14
  • 전화 02-716-0873

청국장과 오징어까지 #이조보쌈

배추김치와 무채김치 그리고 잘 삶은 돼지고기와 오징어의 조합으로 서울의 보쌈 맛집 순위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곳. 당산역 4번 출구와 바로 맞닿아 있으며, 함께 내는 청국장의 깊은 맛 또한 보쌈과 잘 어우러진다.

  • 주소 영등포구 당산로 244
  • 전화 02-2671-3257

한 끼 든든한 고기백반 #장수보쌈

‘원할머니보쌈’을 함께 시작했던 주인장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콩나물국과 밑반찬까지 알차게 나오는 보쌈백반이 별미다. 보쌈김치는 굴을 넣어 맛이 시원하면서도 달큰해 계속 입맛이 당긴다.

  • 주소 중구 동호로 378
  • 전화 02-2272-2971

고구마를 만난 보쌈김치 #회기왕족발보쌈

35년 동안 대학가 맛집으로 인정받은 곳으로, 특히 보쌈김치가 유명하다. 달콤한 고구마를 채 썰어 보쌈김치로 돌돌 만 후 김치 양념을 듬뿍 올린 모양만으로도 입맛을 돋운다.

  • 주소 동대문구 회기로 158
  • 전화 02-966-4955

※ 식당 방문 시 마스크 착용과 출입자 명단 기입, 손 소독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이용하세요.

박찬일 취재 김지영 사진 양성모, 이해리, 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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