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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말로 만나는 서울 동네 옛 이름

인터뷰 · 탐방 · 서울 옛 이름

토박이말로 만나는 서울 동네 옛 이름
2021.10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100% 우리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 70% 이상의 우리말이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고, 이 밖에도 외래어·새말·신조어 등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은 한자어로 대체할 수 없는 토박이말 지명이다.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 서울을 수도 이름으로 고스란히 사용한 것. 서울을 구성하는 각 자치구에도 한자어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토박이말 지명이 많다. 본래 뜻이 일부 사라진 새 이름 대신 지역의 역사를 품고 있는 정겨운 토박이말로 동네를 불러보는 건 어떨까. 한글날을 맞이하는 10월, 정겨운 우리 동네를 살방살방 걸어보며 예로부터 부르던 토박이말에 담긴 이야기를 되새겨보자.

우리 동네 옛 이름은

복사골

마포구 도화동

옛날 마음씨 착한 김 노인과 외동딸 도화 낭자가 살고 있었는데, 도화 낭자의 아름다운 모습과 마음씨가 천궁에까지 알려져 옥황상제의 며느리가 되었다. 그 후 딸을 애타게 그리는 김 노인의 마음을 안 옥황상제는 복숭아씨를 보내주었다. 김 노인은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복숭아나무를 애지중지 돌보고 가꾸었다. 이 복숭아나무가 번성해 마을의 자랑이 되었고, 그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이 동네를 ‘복사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복사꽃어린이공원에 마을 설화와 관련한 동상이 서 있다.

두텁바위마을

용산구 후암동

후암(厚岩), 말 그대로 두꺼운 바위가 존재해 두텁바위마을로 불리던 곳이 지금의 후암동이 되었다. 일제강점기까지는 이 바위가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찾기 어려운 상태다. 현재 남산순환길을 지나다 보면 두텁바위마을 상징석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 살던 실학자 안정복의 제자 황덕길의 문집 <하려집>에는 그가 자신의 집 위치를 소개하며 “두꺼비같이 생긴 섬암(蟾巖) 아래”라는 표현을 썼는데, 두꺼비를 ‘두터비’라고도 부른 걸로 보아 이 유래도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

무쇠막

성동구 금호동

무쇠막은 조선 시대 주철을 녹여 무쇠솥, 농기구 등을 주조해서 국가에 바치거나 시장에 내다 파는 야장들과 대장간이 많은 지역으로, 무수막·무쇠막·무시막이라 부르기도 했다. 전에는 ‘왕십리 배추 장수’와 함께 ‘물쇠골 솥 장수’라 일컬어온 무수막. 이를 한자음화한 수철리의 철(鐵)에서 ‘금’을, 수(水)에서 ‘호’를 인용해 금호동이 되었다. 철을 다듬는 무쇠 망치는 용비교를 건너 금호로로 향하는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김시웅,제민주 사진이해리 참고 자료서울의 토박이말 땅이름>(배우리, 우리말땅이름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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