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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책에서 듣는 책으로! 라디오를 넘어 소리의 시대

기획 · 서울 트렌드

읽는 책에서 듣는 책으로! 라디오를 넘어 소리의 시대
2021.07

TV, 인터넷, 유튜브 등 눈으로 보는 영상 콘텐츠와 달리 귀로 듣는 콘텐츠를 뜻하는 ‘오디오 콘텐츠’.
라디오 등을 통해 4050세대에게 익숙했던 오디오 콘텐츠가
MZ세대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부여받으며 새로운 유행을 일으키고 있다.

※ 코로나19 거리 두기 단계에 맞는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촬영했습니다.

‘Video Kill The Radio Star’. 1979년 영국 밴드 버글스가 발표한 곡이다. TV 때문에 라디오가 구세대 유물이 됐다고 푸념하는 내용의 이 노래는 영상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처럼 쓰이곤 했다. 문화의 주요 소비 세대가 교체를 거듭하며 확실히 영상은 없어서는 안 될 콘텐츠가 되었다. 대부분 라디오보다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보는 재미에 빠져 있으니 현 인류를 ‘호모 비디오쿠스(Homo Videocus)’라 불러도 무방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버글스가 한탄한 것처럼 비디오(영상 콘텐츠)가 라디오(오디오 콘텐츠)를 ‘죽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줄 알았던 오디오 콘텐츠가 요즘 부활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것도 영상에 익숙한 MZ세대를 중심으로 말이다.

리코딩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콘텐츠 녹음으로 바쁜 프리랜스 아나운서 윤지향 씨.

4050세대에는 레트로, MZ세대에는 뉴트로

프리랜스 아나운서 윤지향 씨는 요즘 마포와 강남의 녹음실을 오가느라 바쁘다. 오디오 북부터 이러닝(e-Learning) 교재까지 다양한 콘텐츠의 녹음 의뢰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저녁 마포의 한 녹음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새로운 의뢰를 받아 ‘소리로 듣는 교재’를 녹음 중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디오 콘텐츠라는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요즘은 오디오 콘텐츠 천하 시대라는 게 실감 나요. 제가 받는 의뢰만 해도 포맷이나 내용 면에서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있거든요. 저 같은 아나운서뿐 아니라 성우, 가수 등 소리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유튜브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귀로 듣는 ‘소리 시장’은 이미 폭발적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감각을 경험하는 영역에서 소리의 미디어는 늘 시각과 청각을 겸비한 미디어에 압도당해왔지만, 코로나19로 일상의 위로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비대면 콘텐츠에 대한 경험이 쌓여가면서 ‘말’과 ‘소리’에 대한 이용자들의 태도가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MP3 플레이어를 통해 음악이 음원으로 변형되어 유통되기 시작했고, 디지털 오디오 기기의 대중화로 팟캐스트가 많은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유튜브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뒷전으로 밀려났다. 몇 년 사이 AI 스피커, 무선 이어폰, 커넥티드 카 등 오디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개선되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을 맞이했다.

국내 최대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의 경우만 보더라도 연간 청취 시간이 2017년 약 4000만 시간에서 2020년 약 2억5000만 시간으로 6배가량 늘었다. 네이버가 2년 전 출시한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네이버 NOW’(이하 ‘나우’)도 연일 인기 고공 행진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나우는 출시 후 1년간 누적 시청자 수가 2000만 명 이상이며, 그중 10~20대 비율이 28.2%로 가장 높다. <VIBE 최신곡 믹스>, <올타임훼이보릿 탑골가요> 등은 모두 MZ세대의 취향에 맞춰 선곡한 것이다. 나우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콘텐츠도 서비스하고 있다. 명상 전문가, 심리학 전문가와 함께 책 낭독과 리뷰로 구성된 유튜브 채널 ‘세 여자에게 명상을 부탁해’를 운영한 적이 있는 윤지향 아나운서는 “누군가는 오디오를 레트로로 생각하겠지만, 영상 매체에 익숙한 MZ세대는 오디오 콘텐츠를 힙한 뉴트로로 받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윌라’, ‘밀리의서재’ 등 오디오 북 서비스를 ‘청취’하는 30대 직장인 김정호 씨.

라디오에서부터 누구나 쉽게 제작하는 음원까지

MZ세대의 오디오 콘텐츠는 과거 인기를 누린 팟캐스트와 ‘콘텐츠’ 면에서도 확연히 구분된다. 과거 팟캐스트가 일부 시사·정치 분야에 집중되었다면, 요즘의 팟캐스트는 경제·사회·문화·어학 등 다양한 콘텐츠의 폭을 자랑한다. 오디오의 특성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요즘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적합하다는 분석도 이를 뒷받침한다. 점심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이용해 회사가 있는 강남구청역 근처 공원이나 카페에서 오디오 북을 ‘청취’하는 30대 직장인 김정호 씨는 “어릴 적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목소리처럼 포근한 느낌이 들고, 눈의 피로를 유발하는 유튜브 보는 습관도 사라져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 구독 중인 오디오 북 앱에 있는 ‘내가 만든 오디오 북’에 도전해 내 목소리로 책을 읽어 음원으로 남기는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오디오 북은 책을 ‘읽어주는’ 낭독 봉사나 목소리 재능 기부 혹은 한글 독해가 어렵거나 시각장애로 문자 정보에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제한적 콘텐츠였으나 지금은 책을 ‘듣는’ 새로운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시각 매체로 생각되는 매거진도 소리를 통해 ‘듣고’ 있는 것처럼 시각을 청각으로 확장한 오디오 북 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지만 성장세는 무섭다. 2019년 론칭한 오디오 북 서비스 ‘윌라(Welaaa)’는 작년 한 해에만 유료 구독자 수가 전년 대비 800% 늘었다. 김혜수, 이병헌 등 목소리 좋은 배우를 ‘책 읽어주는 사람’으로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배우 김태리가 15~20분 길이의 세계 고전문학을 낭독하고 소개하는 ‘김태리의 리커버북’은 지난해 5월 오픈한 후 구독자 14만8000명을 모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래된 신선함 vs 새로운 익숙함

그렇다면 구시대 유물로 취급받던 오디오가 다시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얼까. ‘소리’ 콘텐츠가 대세로 떠오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다중 작업이 용이 하다는 것.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영상 콘텐츠와 달리 오디오 콘텐츠는 운전, 공부, 운동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심지어 자면서도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 가을 저녁 귀뚜라미 울음소리, 여름날 호숫가에 비 내리는 소리 등 각종 ASMR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속도전에 능하고 다중 작업이 생활화된 MZ세대에게 시공간 제약 없고 끊김 없이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콘텐츠는 즐기는 것을 넘어 직접 생산하는 대상으로 넘어가고 있다.

서울에는 손쉽게 오디오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중 낙원상가에 둥지를 튼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에서는 시민이 직접 DJ가 되어 사연과 음악을 들려주는 일일 DJ 체험을 할 수 있고 유튜브로 실시간 스트리밍도 가능하다. 금요일 오후 초등학생 2명이 방송하던 것을 지켜보고 즐거워하며 일일 DJ로 참여한 50대 시민 조태정씨는 “우리 때는 상상도 못한 기회”라며 “직접 DJ가 되어 선곡한 음악을 들려주니 청취자 모드로 들을 때보다 훨씬 더 즐겁다”고 말했다. 마포구에서 리코딩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대여도 하고 있는 한찬희 씨는 “예전에는 전문 성우나 가수들이 와서 녹음을 했지만, 요즘은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녹음하기 위해 찾는 일반 시민이 부쩍 늘고 있다”며 뜨거운 오디오 콘텐츠 열풍을 전했다.

서울도서관 오디오 북

서울도서관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도서관을 직접 찾지 않고도 집에서 스마트폰이나 PC로 인기 도서와 신간을 바로 빌려 볼 수 있고, 오디오 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약 3배 늘렸다. 그중에서도 전문 성우가 읽어주는 오디오 북 3000종을 갖추고 있다. 특히 도서 한 권당 대출 인원 제한이 없는 구독형 콘텐츠는 전자책 유통사에서 콘텐츠를 구독해 도서관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동시 접속자 수에 제한이 없고, 신간 도서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이용방법
서울도서관 홈페이지(lib.seoul.go.kr)에서 회원 가입 → 온라인 회원증 발급 신청 후 비대면 자격 확인 → 서울도서관 전자책·오디오 북 선택 → 구독형 오디오 북 검색 및 대출 → ‘내 서재’에서 대출한 구독형 온라인 콘텐츠 선택 → ‘책을 읽으시겠습니까?’ 재생 버튼을 누른 후 이용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에서 시민들이 직접 DJ가 되어 사연과 음악을 들려주는 일일 DJ 체험을 하고 있다.

비디오 홍수 속에서도 건재 과시한 오디오의 매력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도 오디오 콘텐츠는 괜찮은 옵션으로 진입장벽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졌다지만, 마음에 드는 영상 하나를 찍으려면 장비도 갖춰야 하고 편집 프로그램 사용법도 익혀야 한다. 그에 비해 오디오 콘텐츠는 듣기 좋은 소리를 내거나 대화하듯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영상 콘텐츠처럼 신상 공개 부담을 감수하며 얼굴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그 때문인지 라디오계의 유튜브로 불리는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라디오’에서는 매일 10만 개의 콘텐츠가 생성된다. ‘카카오 음(mm)’과 초대장으로 입장하는 클럽하우스, 팟캐스트, 오디오 북, ASMR까지 현재 오디오 콘텐츠의 인기는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영상 콘텐츠와 경쟁하고 있다. 언뜻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모바일 장치 중심의 뉴미디어 환경에 최적화된 21세기 오디오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디오 콘텐츠만의 매력은 생각보다 강렬하다. 오디오 콘텐츠가 영상 콘텐츠와 생존 경쟁을 벌이는 대신 독자적 시장을 개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버글스는 시대에 맞는 곡을 하나 더 써야 할 듯싶다. ‘Video can’t Kill the Radio Star’ 라는 타이틀로 말이다.

서울에서 만나는 오디오 콘텐츠 제작소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

서울시민 누구나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으로 녹음실, 라디오 제작실 등 시설을 활용한 교육은 물론 애니메이션 더빙, ‘오늘은 내가 라디오 DJ’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온라인으로 회원 가입을 하면 음원 녹음이 가능한 녹음 기기나 라디오 체험 스튜디오, 녹음실, 1인 미디어 제작실, 편집실 등을 무료로 대관할 수 있다.

위치 성북구 길음로7길 20 서울성북미디어문화마루 3층
문의 02-6949-2380
홈페이지 kcmf.or.kr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생활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과 문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 악기 나눔 사업, 생활 음악 동호회 활동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연습실과 녹음 스튜디오도 대여해준다. 매주 금요일에는 사전 신청자에 한해 일일 DJ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다목적 공간 ‘N스페이스’에서 진행하며, 유튜브로 실시간 스트리밍되어 현장감을 더해준다.

위치 종로구 삼일대로 428 낙원상가 1층 하부 공간
문의 02-6959-8323
홈페이지 nakwon-communityart.or.kr

임지영 사진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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