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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때때, 푸짐한 칼국수 한 상 차림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서울 맛골목 이야기
시시때때, 푸짐한 칼국수 한 상 차림
2021.04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남대문시장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남대문시장 남쪽으로 들어서게 된다. 시장은 온갖 물화를 거래하는데, 어떤 시장이든밥집이 있게 마련이다. 상인들도 밥을 먹어야 하고, 장꾼들도 출출한 배를 달래야 하기 때문이다. 남대문시장에는 유명한 밥집이 많다. 수요가 늘 넘치는 까닭이다. 회현역 5번 출구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한국전쟁 이후 남대문시장 인기 외식집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냉면집 ‘부원면옥’이 있고, 메인 통로에서 왼쪽의 숭례문 지하상가 쪽으로 방향을 틀면 ‘갈치조림골목’이 나온다. 한창때는 줄을 서서 먹는 집들이다. 그중 한 집을 놓쳐서는 안 되는데, 바로 ‘은호식당’이다. 이 집은 남대문시장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왕년의 기본적인 장터 음식이 설렁탕이나 해장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남대문시장은 18세기경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기록을 보면 영조 29년(1753년) 이 일대에 있던 선혜청이 전국에서 모이는 쌀과 베, 화폐 등을 출납하면서 상인들이 모여 장사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남대문시장의 전신이라는 이야기다. 현재의 남대문시장이란 이름을 얻기 전에는 시민들이 ‘남문안장’ 또는 ‘신창안장’이라고 불렀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한 곳으로, 남대문시장이란 이름이 등록된 것은 1910년으로 알려져 있다.

아침부터 먹는 칼국수의 맛

남대문시장이 단순한 시장을 넘어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실향민과 이주민이 서울로 몰리면서 사람과 물화의 홍수를 이루었고, 1980~1990년대 호황기에는 물건을 떼려는 상인들이 새벽부터 시장을 가득 메우는 진풍경을 이루기도 했다.

“이 근처 액세서리 상가나 옷 상가에서 보따리장수들이 장을 보고 여기서 아침밥을 먹었어요. 경제가 좋을 때라. 칼국수를 아침부터 먹는 곳은 전국에서 아마 이 골목밖에 없을 겁니다.”

회현역 5번 출구 앞에 자리한 ‘칼국수골목’ 상인의 말이다. 밖에서는 가게 하나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가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닥다닥 붙은 개미굴 같은 정겨운 칼국숫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골목의 역사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아마도 한국전쟁 이후에 이미 밥집과 선술집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대문시장과 길 건너 회현동 일대에서는 당시 ‘꿀꿀이죽’이라고 하여 이런저런 식자재 부산물로 끓이는 구황음식을 팔았는데, 이 골목에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칼국수가 이 골목 음식이된 것은 아주 중요한 계기가 있다. 바로 미군정의 시작이다. 해방과 함께 미군이 들어왔고, 이들은 남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유엔과 연합해 밀가루와 쌀 등을 공급했다. 배급된 물자가 시장에도 풀렸고, 수제비와 칼국수 등을 만들어 팔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칼국수가 전국적으로 저렴한 인기 메뉴가 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시장이 활성화된 1960년대 이후로 보고 있다. 이는 남대문시장뿐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었다.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밀가루로 만들 수 있는 주요 메뉴였다.

“지금은 비를 가릴 수 있지만 옛날에는 천막으로 대충 가리고 팔았어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먹었지요.”

세 자매가 같이 일하는 식당으로 유명한 ‘남해식당’의 맏언니 김진순 씨의 설명이다.

이 골목은 얼핏 상가 건물의 1층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시장 안 도로 양옆으로 노점이 붙어 선 형태의 노천이다. 그러니까 골목을 관통하는 도로는 가게 부지가 아니다. 비나 눈이 내리고, 추위가 그대로 들이닥치는 노점 골목에서 점차 상가의 모습으로 변모해온 셈이다. 이런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이 골목의 정취이고, 남대문시장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는 칸으로 부릅니다. 한 칸 한 칸이 다 칼국수 가게지요. 더러 한 상인이 여러 칸을 잇댄 채 장사를 하는 큰가게도 있고요.”

한 칸짜리 가게에는 등받이 없는 간이 의자 4개 정도가 겨우 들어간다. 손님이 많을 때는 어떻게든 의자를 더 놓아서 어깨를 맞대고 칼국수를 먹는다.

“남대문 칼국수골목에서는 칼국수를 시키면 비빔냉면과 보리밥 등이
딸려 나온다. 보리밥을 시키면 물론 칼국수가 서비스다.”

명물이 되려면 맛으로 승부하라

이 골목이 명물이 된 것은 우선 칼국수의 맛 덕분이다.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더 나은 맛으로 진화했다. 한 집에서 양념과 고명을 더하고 맛을 더 내면 인근 가게들도 따라 하게 마련. 자연스레 전체적으로 맛 경쟁이 벌어지면서 칼국수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진한 멸치 육수에 김 가루와 매콤한 양념, 유부 등이 올라가는 현재의 칼국수 버전은 그래서 가게마다 대동소이하다. 전국의 많은 칼국숫집이 사람 손이 귀해지며 기계화되고 있지만, 이 골목에서는 어림도 없다. 손칼국수라는 오랜 상징이 유지되고 있다. 역시 경쟁 때문이다. 칼국수 반죽은 대개 전날 배합해 하루 숙성한 뒤 다음 날 판다. 좁디좁은 부엌에서 칼국수를 손으로 썰고 육수에 ‘제물국수’ 방식으로 삶는다. 솥 안에서 끓고 있는 육수에 칼국수를 그대로 넣어 삶아내고, 그 걸쭉한 육수를 부어내는 방식이다. 진하고 걸다.

원래는 각기 독립된 메뉴였지만 한 상인이 고안해낸 ‘떨이’ 방식의 아이디어가 인기를 끌었고, 다른 상인들도 경쟁을 위해 모방하면서 생겨난 이 골목의 특별한 메뉴다. 가게마다 다섯 가지 메뉴가 있고, 이 메뉴는 모두 여러 서비스 메뉴가 조합된 형태다. 잔치국수 메뉴가 있느냐 없느냐 정도만 차이 있고, 어느 집이나 기본 방식과 고명 등이 유사하다. 조금씩 손맛의 차이가 있어 단골도 많다. 보통 수십 년씩 한 가게만 다닌다.

쫄깃하고 구수한 칼국수를 빨아들이고, 진한 육수를 마시고 나니 아직 춘삼월 봄인데도 땀이 밴다. 보리밥과 된장국으로 디저트(?)를 삼는 이 명물 골목이 오래 남아 있으리라.

남해식당의 큰언니 김진순 씨와 박찬일 셰프.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찾아라! 내 입맛 사로잡는 #칼국수

내가 진짜다! 남대문시장 칼국수골목

남해식당

골목 내 거의 모든 식당이 한 번쯤 방송 출연을 했을 정도지만, 세 자매가 운영하는 이곳은 30년 전 한 칸에서 시작해 지금은 다섯 칸에서 20~30여 명의 손님을 받아내는 베테랑 칼국숫집이다.

먹는 데 진심이다! 광장시장 칼국수골목

고향손칼국수

넷플릭스 ‘길 위의 셰프들 - 서울 편’에 등장해 세계적 인지도를 얻게 된 ‘고향칼국수’. 5000원에 즉석 손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찐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도 놓치지 말 것.

※ 식당 방문 시 마스크 착용과 출입자 명단 기입, 손 소독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잊지 마세요.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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