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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서 시작된 환경운동 지구를 위한 이유 있는 편식 입문기

기획 · 서울 트렌드

밥상에서 시작된 환경운동 지구를 위한 이유 있는 편식 입문기
2021.03

코로나19 이후 건강은 챙겨야 할 대상에서 ‘사수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면서 건강과 직결된 식습관도 변화하고 있다. 채식의 길이 멀고도 험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더 건강한 선택은 의외로 더 쉽다.

우리 가족은 고기보다 채소, 꽃보다 채식

토요일 아침, 박지혜·김도형 씨 부부의 주방이 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오늘 아침 메뉴는 홍게맛살배추죽이다. 얼핏 평범한 건강식 같지만, 요리에는 웬만한 눈썰미로는 도저히 알아챌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실은 게맛살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게맛살이 아니에요. 100% 식물원료로 맛과 식감을 거의 똑같이 만든 채식 게맛살로 요리했어요.” 박지혜 씨의 남편 김도형 씨는 원래 세상에서 돈가스와 삼겹살이 제일 맛있다는, 못 말리는 ‘육식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플렉시테리언으로 돌아선 건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아내의 변화를 눈으로 목도하면서부터다.

“트러블성이던 아내의 피부가 채식과 더불어 맑게 개선되는 게 눈에 보였어요. 몸놀림도 이전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고요.” 지글거리는 고기와 기름기가 지배했던 부부의 ‘느끼한’ 식탁은 점차 싱싱한 채소로 ‘담백하게’ 변해갔다.

“이상했어요. 고기 한 점 안 먹는 날에도 힘이 솟았죠. 뽀빠이가 이래서 시금치를 먹었구나 싶었어요(웃음).” 이들이 내린 결정의 배경에는 결혼하면서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 ‘태풍이’도 자리하고 있다. 지금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생명과 먹이가 되는 생명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

강서구 방화동에 사는 홍슬기 씨는 이제 갓 7개월 된 딸소은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해 임신과 출산을 모두 경험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높아졌다. 채식주의를 위한 점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는 요즘 소은이를 위해 직접 채소죽을 만든다.

“이왕이면 우리 아이에게 보다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는 터전을 물려주고 싶어 채식을 시작했어요. 채식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가장 쉬운 일상의 실천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에겐 소은이가 좀 더 자라면 함께 주말농장이나 도심형 텃밭을 직접 가꾸고, 수확한 채소로 맛있는 한 상을 차리는 꿈이 새싹처럼 움트고 있다.

함께 채식 홍게맛살배추죽을 즐기는 박지혜·김도형 씨 부부.

7개월 된 딸을 위해 채소죽을 만드는 홍슬기 씨.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이유식처럼 채식도 단계별로

채식 문화가 발달한 서구에서는 어떤 종류의 식품까지 허용하느냐에 따라 채식의 유형을 분류한다. 리듀스테리언부터 비건까지 단계별 채식에 대해 알아보고, 채식 생활을 업그레이드해보자.

리듀스테리언 (Reducetarian)

고기를 끊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고기의 소비를 가능한 만큼 줄이는 채식 지향자.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평소에는 비건 채식을 하지만, 강도가 센 노동을 해야 할 때 등 평소와 다른 상황에서는 일부 육식을 허용하는 채식 지향자.

폴로 베지테리언 (Pollo Vegetarian)

동물성 식품 중 오직 붉은색 고기만 먹지 않는 채식 지향자. 소고기, 돼지고기는 No! 닭고기는 Yes!

페스코 베지테리언 (Pesco Vegetarian)

동물성 식품 중 달걀과 함께 생선, 해산물까지 허용하는 채식 지향자.

오보 베지테리언 (Ovo Vegetarian)

동물성 식품 중 달걀(조류의 알)만 허용하는 채식 지향자.

락토 베지테리언 (Lacto Vegetarian)

동물성 식품 중 우유만 허용하는 채식 지향자.

비건 (Vegan)

100% 식물성 영양만 섭취하는 채식주의자.

맛에 영양, 감동까지 사로잡은 채식 메뉴들

종로구의 직장을 다니는 황선영 씨는 서울시 누리집의 ‘서울시 채식 식당 가이드북’을 통해 최근 직장 근처에 있는 채식 맛집을 알아냈다. 서촌에 자리한 카페 ‘소이로움’ 이다. 1년여 전 플렉시테리언을 거쳐 비건이 된 그에게 햄버거와 햄버그스테이크는 물론 케이크, 맥주까지 비건식으로만 제공하는 이곳은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 천국’이다. 이날 황선영 씨가 선택한 햄버그스테이크 메뉴에는 열 가지 채소와 글루텐프리 콩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비건 치즈가 올라왔다. “채식은 맛없다는 편견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콩고기는 스테이크만큼, 비건 치즈는 일반 치즈만큼 맛있어요.” 건강한 음식과 생활 습관을 고민하다가 어머니와 함께 비건식당을 오픈했다는 카페 소이로움의 전미진 대표는 더 많은 사람과 건강한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많은 분께 알리기 위한 먹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건강식, 채식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비건 전문 식당도 있지만, 저마다 채식에 대한 선호도가 다른 만큼 채식 메뉴를 포함하거나 육류가 포함된 기존 메뉴를 비건 메뉴로 전환하는 곳이 늘어나는 등 서울 시내 채식 식당 지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 채식은 선호하지만 아직 비건은 자신 없는 채식 입문자들 사이에서 이미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강남구 학동역 부근의 갤러리 카페 ‘모스가든’ 역시 건강식을 찾는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해 보다 접근하기 쉬운 채식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단계별 채식이 가능한 이국적 메뉴와 카페 옆에 마련된 정원 테라스, 유기농 마켓, 반려동물 동반까지 고려한 에티켓은 음식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동물 및 환경과의 공존을 생각하게 만든다. 모스가든 내 레스토랑 ‘굿사마리안레시피’에서 막 식사를 마치고 나온 김형규 씨는 ‘도심 속 오아시스에서 힐링을 한 기분’이라고 첫 채식 데이트를 묘사했다. “속이 편안해서 마음까지 편안한 데이트였어요. 푸른 정원 덕분에 눈이 힐링했다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 덕분에 위장이 힐링한 느낌이에요. 오늘은 여자친구의 권유로 채식을 했지만 다음에는 제가 분위기 좋은 채식 식당으로 초대하고 싶어요.”

채식 입문자도 환영, ‘비건스페이스’

비건의, 비건을 위한 식료품점과 카페, 음식점을 겸한 곳. 해방촌 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판매하는 모든 제품은 비건식이다. 감미료부터 냉동식품, 비건을 위한 채식 육포까지 국내 비건 제품뿐 아니라 수입 비건 제품도 고루 취급해 선택의 폭이 넓다. 식료품과 음식 외에 티셔츠와 에코백, 물비누 등 환경과의 공존을 생각한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판매한다. 온라인 주문도 가능해 채식주의자로의 길을 더욱 가깝게 해준다.

위치 용산구 신흥로2길 7
홈페이지 veganspace.co.kr

초식마녀 @tozeetoon

채식 도전, 어렵지 않아요!
일러스트레이터 초식마녀로 활동 중인 박지혜 씨의 책 <오늘 조금 더 비건>은 쉽고 맛있는 채식을 소개하는 네 컷 요리 만화다. 따라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채식 메뉴 ‘이런 마라 라면’ 레시피를 공개한다.

우리를 위해, 지구를 위해 (For Us, For Earth)

‘나’를 위해 조용히 식탁에서 시작된 채식 혁명은 어느덧 지평을 확대해 ‘우리’를 위한 환경운동으로 퍼지고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채식의 필요성을 알린 <해방촌의 채식주의자>의 저자 전범선 씨는 채식주의자로 살고 싶어 몇 년 전 해방촌으로 이사 왔다. 토바이어스리나르트라는 벨기에의 비건 운동가가 자신이 살던 헨트시에 세계 최초로 주 1회 채식하는 날을 지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것을 보고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해방촌은 대한민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기 가장 좋은 동네입니다. 전국 유일의 비건 슈퍼마켓이 있고, 웬만한 식당에 비건 메뉴가 하나씩은 있거든요.” 그는 뜻을 함께하는 친구, 동료들과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을 결성했다.

채식하는 습관을 나누는 의사들의 모임 ‘베지닥터’의 상임대표인 유영재 한양여대 교수는 다수의 강연을 통해 ‘건강한 자연식은 모든 시민의 권리’임을 설파해왔다. “채식은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동물권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류가 먹는 대부분의 고기는 참혹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된 동물들입니다. 인위적인 지구온난화 유발 요인 중 육식에 의한 것이 무려 51%나 됩니다.” 물론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채식의 경우 ‘앎’이 반드시 ‘생활’로 이어지지 않기에 그 둘이 하나로 연결될 때 더욱 의미가 있다.

‘한국고기없는월요일’의 대표로 100가지 비건 레시피로 구성된 <채식연습-천천히 즐기면서 채식과 친해지기>를 펴낸 이현주 한약사는 채식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채식에 대한 편견부터 버려야 합니다. 채식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먹어온 식사거든요. 더 많은 사람이 조금씩 채식을 연습한다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위해 채식만큼 분명한 행동은 없으니까요.” 기후변화 위기를 체감하면서 자발적으로 채식을 선택하는 시민들이 점점 늘고 있다. 처음엔 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점점 우리, 사회, 지구를 위한 선택임을 깨닫게 된다는 ‘채식’. 고기 ‘지향’에서 ‘지양’으로 방향을 선회한 사람들의 쉽고도 어려운 결정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해방촌의 채식주의자>의 저자 전범선 씨는 TV에 출연해 채식의 필요성을 알렸다.

‘한국고기없는월요일’의 이현주 한약사가 채식 식단을 만들고 있다.

한눈에 보는 ‘서울시 채식 식당 가이드북’

서울시는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건강한 채식 한 끼를 찾는 시민의 음식 선택권 확대를 위해 채식 메뉴를 취급하는 내 주변 채식 식당 948개소를 발굴해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육류를 제외한 채소, 유제품, 달걀, 해산물 등 채식 유형별로 정보 활용이 가능하며, 채식 전용 식당부터 채식 메뉴를 제공하는 일반 음식점까지 포함해 누구나 채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서울시 채식 식당 가이드북’ QR코드를 스캔하면 ‘스마트서울맵’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서울시 홈페이지에서도 ‘서울시 채식 음식점 현황’을 검색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임지영 사진 양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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