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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 울리는 주꾸미의 매운맛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서울 맛골목 이야기
낙지 울리는 주꾸미의 매운맛
2021.03

주꾸미볶음의 시작, 용두동

용두동은 서울의 중요 주거지역으로 오랫동안 건재했다.

인근 답십리, 청량리, 신설동 등과 함께 동부 지역의 핵심을 이룬다. 특히 전형적인 서민 주거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동네의 얼개가 바뀌고 있지만, 전형적인 서울 서민 동네의 느낌을 아직은 남겨두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동네에 유명한 먹자골목이 있다. 그렇다. 골목이라는 오랜 기억의 공간이 주꾸미로 유명세를 얻었다. 용두동은 서울 사람들도 그다지 잘 모르는 변경처럼 묻혀 있었는데, 이제는 주꾸미 때문에 찾는 이가 많다. 별난 일이다. 원래 음식 골목은 자연스레 한둘씩 서울 부도심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주꾸미골목도 그렇다. 이 동네는 예전부터 작은 가내수공업 작업장이 많았다. 수출용 제품의 가내 하청이 인기를 끌던 1970~1980년대의 흔적이다. 이런 현장에는 노동자가 많았고, 그들에게 공급해야 할 밥집이 크게 번성했다. 이곳의 밥집은 보통 낮에는 끼니를 해결해주고, 저녁에는 노동자의 수요에 의해 술집이 된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술을 팔았다. 생계와 유흥이 가장 낮은 곳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은 셈이다.

“처음에는 ‘호남식당’이었어요. 나중에 내 이름을 붙여 별호를 얻은 거지. 참 사람이 많았고, 밥집으로 아주 바빴어요.” 용두동 주꾸미골목의 시조라 할 나정순 여사의 증언이다. 그이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서울로 이주한, 전형적인 서울의 1대 이주민 출신이다. 알다시피 1960~1970년대는 지방의 도시 러시가 이어졌고, 그 주 목적지는 서울이었다. 서울은 만원이었고, 서울 부도심을 중심으로 주택가가 급작스레 늘어났다. 이들 지방 이주민의 다수는 서울에서 노동자로 흡수되었다. 구로공단이 가장 유명했지만, 서울 곳곳이 공장이던 시기가 있었다. 용두동이 그런 곳으로, 아주 오랫동안 기능한 동네이기도 하다. 많은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작은 공장지대에서 전형적인 주택가로 변모했지만, 용두동은 ‘애매한’ 포지션으로 옛 형태의 주택가 겸 작은 가내수공업 공장이 공생하는 특별한 동네였다. 그곳의 노동자들이 몰려가서 목에 낀 먼지를 씻어낸곳이 바로 주꾸미골목이 된 것이다.

주꾸미 동상부터 주꾸미 가로등까지

이곳은 유명 주꾸미골목답게 경례하는 주꾸미상과 골목길 바닥에 그려진 주꾸미, 주꾸미 모양을 반영한 가로등이 있어 눈길을 끈다. 나름 명물이다. 이 골목은 특이하게도 ‘원조’ 논쟁이 없다. 시조니 태조니 하는 원조 이름 다툼도 없다. 한 가게가 원조라는 말을 붙이면 뒤따라 인근 업소들이 비슷한 말을 쓰면서 원조 논쟁, 원조 낭비가 일어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이 동네는 가장 먼저 생긴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호남식당(나정순할매쭈꾸미)도 원조라는 말을 외부에 붙이고 있지 않다. 참 점잖다고 할까,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와 불신이 없는 골목인 셈이다. 이 동네를 관할하는 동대문구청 역시 이 골목의 존재를 아끼고 있으며, 골목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1980년대 초부터 주변 가내수공업 공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다가 우연히 반찬으로 만든 주꾸미볶음이 인기가 많아 1980년대 후반부터 주 메뉴로 팔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부터 하나둘씩 다른 가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며, 매운 양념의 주꾸미를 철판에 볶아내는 것이 주 메뉴다.”

가게가 여럿이다. 호남식당, 용두동임오네쭈꾸미, 용두동쭈꾸미, 고흥쭈꾸미, 쭈꾸미일번지 등의 식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재미있는 건 가게마다 별관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워낙 주꾸미로 명성이 높으니 다른 업태의 가게들이 하나둘 주꾸미집에 자리를 내주었다.

우연히 반찬으로 만든 주꾸미볶음이 인기가 많아 1980년대 후반부터 팔기
시작했다. 매운 양념의 주꾸미를 철판에 볶아내는 것이 주 메뉴다.

3대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호남식당의 나정순 여사 가족.

각양각색 입맛을 저격하는 주꾸미 한 상

주꾸미볶음은 사실 양념이 비슷하다. 하지만 가게마다 조금씩 개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를테면 호남식당은 청국장 맛 된장찌개를 볶음밥에 제공하고 있고, 용두동쭈꾸미는 차가운 카레 소스를 제공한다. 매운 볶음을 이 소스에 찍어 먹으면 얼얼한 기운을 덜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가게마다 이른바 ‘사리’라고 하는 추가 고명이 가지각색인 것도 흥미롭다.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고 있달까. 그래도 기본은 주꾸미볶음이다. 양념이 다르듯 불판도 각기 다르다. 호남식당의 경우 솥뚜껑을 엎어서 사용한다.판이 두꺼워야 오래 열을 보존하고, 양념이 잘 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디저트가 볶음밥이라고 하던가. 이 골목은 주꾸미볶음도 일품이지만, 다 먹고 난 후 그 양념에 볶아 먹는 밥이 일품이다. 누룽지까지 만들어 박박 긁어 먹고 나면 아주 후련한 기분이 든다. 매운 양념으로 열을 올리고, ‘쿨피스’라고 통칭하는 음료나 맥주로 열을 식힌다. 짧은 식사 시간에 우리는 쾌락 중추를 최대로 가동하는 셈이다.

주꾸미는 문어과에 속한다. 별로 시답잖은 어물인지 옛어른들도 대우를 별로 안 해준 모양이다. 오래된 신문과 잡지에서도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그런데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등장한다. 정약전 선생이 위대하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이야기다. 시시해 보이는 존재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

그 기록에 따르면 주꾸미는 한자어로 준어, 속명은 죽금어(竹今魚)라 불렀다. 주꾸미라는 속명을 따서 한자어를 만든 것이다. “크기는 4.5치에 지나지 않고, 모양은 문어와 비슷하나 다리가 짧으며, 몸이 겨우 문어의 반 정도다”라고 쓰여 있다. 최대 길이가 30cm짜리도 있다고 하나 <자산어보>에 나온 것처럼 4.5치(약 18cm)가 보통이다. 낙지보다는 문어처럼 생겼다. 성질도 아주 기세 있다. 잡아서 도마 위에 올려놓으면 머리를 치켜세우고 성을 낸다. 낙지나 문어처럼 다리 두 개가 더 길지 않고, 여덟 개의 길이가 비슷하다. 용두동 주꾸미골목에서는 수입산을 쓴다. 수입되는 종류 중에는 최상품이다. 크고 쫄깃하다. 요즘 국내산은 워낙 비싸서 이 동네의 기본 1인분 단가인 1만원대 초반에는 도저히 맞출 수 없다.

용두동 골목은 살아 있다. 꿈틀거리는 주꾸미의 힘처럼.

가게를 쭉 돌았다. 거리로 다시 나서니 매운 양념이 후각을 마비시키는 것 같다. 매운 것이라도 먹고 우리는 힘을내어 살아간다. 그게 서울의 힘이기도 하다.

주꾸미볶음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은 다름 아닌 볶음밥이다.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용두동 VS 천호동 #당신의선택은

세대를 뛰어넘는 정통파, 용두동

#중독적인매콤함 #철판구이

신선한 주꾸미와 감칠맛이 느껴지는 매콤한 양념의 조화가 중독적이다. 입안을 감도는 강렬한 뒷맛이 특징이다. 천사채와 깻잎에 싸서 먹으면 풍미가 가득하고, 마지막에 양념에 비벼 먹는 밥이야말로 주꾸미볶음의 하이라이트.

호남식당 (나정순할매쭈꾸미)

  • 가격 주꾸미 1인분(350g) 1만2000원
  • 주소 동대문구 무학로 144
  • 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 전화 02-928-0231
#카레와꿀조합 #맵기조절가능

기본 제공하는 삶은 콩나물에 삼겹살까지 추가하면 육해 진미가 펼쳐진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이들을 위해 덜 매운 양념을 선택할 수 있는데, 서비스로 제공하는 카레에 찍어 먹으면 어느 정도 맵기를 조절할 수 있다.

용두동쭈꾸미

  • 가격 주꾸미 오리지널 1인분 1만2000원
  • 주소 동대문구 무학로36길 10
  • 시간 24시간 영업
  • 전화 02-925-3127
#사리백배즐기기 #매운맛이당길때

보기만 해도 식은땀이 나는 빨간 양념에 통통한 주꾸미가 새송이버섯, 떡과 함께 나오는 오리지널 메뉴. 기본양념만으로도 충분히 맵지만, 기호에 따라 더 맵게 주문 할 수도 있다. 주꾸미를 적당량 먹은 후에 통통한 우동 사리를 먹는 맛 또한 별미다.

용두동 임오네쭈꾸미

  • 가격 주꾸미볶음 1인분 1만원
  • 주소 동대문구 무학로36길 6
  • 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30분
  • 전화 02-925-1628

골라 먹는 추가 사리가 별미, 천호동

#철판날치알볶음 #주꾸미따로양념따로

천호동 주꾸미골목의 터줏대감. 양념을 따로 올려 내기 때문에 기호에 따라 맵기를 조절할 수 있으며, 국물이 많이 생기지 않아 깔끔하다. 별미는 날치알을 듬뿍 넣어 볶아주는 철판 볶음밥. 톡톡 터지는 식감과 참기름의 고소함이 일품이다.

독도쭈꾸미

  • 가격 주꾸미 1인분 1만2000원
  • 주소 강동구 천호대로158길 13
  • 시간 오전 11시~오전 6시
  • 전화 02-477-7701
#주꾸미와새우의만남 #스파게티사리

주꾸미볶음에 삼겹살만큼이나 새우와의 궁합이 잘 어울린다. 특히 이곳의 히든카드인 스파게티 면 사리를 추가하는 순간 매콤한 한국식 해물 스파게티가 완성되면서 새로운 퓨전 요리가 탄생한다.

쭈꾸쭈꾸쭈꾸미

  • 가격 쭈새 1만3000원
  • 주소 강동구 천호옛길 98
  • 시간 오전 11시 30분~오전 1시
  • 전화 02-484-1472
#색다른주꾸미 #숙성양념

천호점을 시작으로 전국 20여 개가 넘는 지점을 둘 만큼 인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메뉴와 아이디어가 넘치는 브랜드. 3일간 숙성한 양념이 이곳의 비결이며, 가장 인기 있는 대창주꾸미의 경우 온라인에서 밀키트로도 판매하고 있다.

쭈꾸미도사

  • 가격 대창주꾸미 1인분 1만5000원
  • 주소 강동구 천호대로158길 9
  • 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 전화 02-488-0523

※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음식점 이용 가능 여부와 이용 시간, 시설 면적당 인원 등이 제한됩니다.
식당 방문 시 마스크 착용과 출입자 명단 기입, 손 소독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잊지 마세요.

박찬일 취재 김시웅, 오승해 사진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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