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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나는 독립운동의 발자취

인터뷰 · 탐방 · 서울 랜선 유람

서울에서 만나는 독립운동의 발자취
2021.03

항일운동의 정신을 오롯이 간직한 종로구. 최근 이곳에 도시 재생으로
새롭게 단장한 역사적 문화유산이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Part 1

조선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집, 딜쿠샤

딜쿠샤(Dilkusha)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W.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와 그의 아내 메리 L. 테일러(Mary Linley Taylor)가 살았던 가옥이다. 1924년 완공된 이후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2021년 3월 1일 드디어 독립운동 역사의 중요한 장소로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집 이상의 딜쿠샤

종로구 행촌동에는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460여년의 웅장한 은행나무가 있다. 그 옆에는 권율 장군 생가터가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이름마저 신비로운 딜쿠샤가 근 100년의 시간을 지킨 채 서 있다. 안타깝게도 딜쿠샤에 대한 비밀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 2006년 미국에 살던 브루스 T. 테일러(Bruce Tickell Taylor)가 방한하면서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그는 바로 1919년 <뉴욕타임스>를 통해 조선의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보도한 앨버트 W.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 L. 테일러의 아들이었다. 알려진 대로 앨버트는 1897년부터 조선에서 활동한 광산 사업가이자 연합통신사의 통신원으로 일제강점기에 처한 조선에서 생애 대부분을 살았다.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든 역사 문화의 공간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을 지닌 딜쿠샤. 이국적인 이름처럼 1924년에 완공된 이곳은 당시 조선인들에겐 낯설고 색다른 집이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높이는 물론 200평에 가까운 규모는 서울에서 가장 큰 서양식 주택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92년 만에 서울시는 이 가옥을 당시 지어진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역사적 이유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도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는 데다 도시 재생 사업의 역사적·문화적 발견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고증과 검증을 거쳐 복원된 딜쿠샤는 전시관으로 재탄생해 3월 1일 개관하고 시민과 만난다.

위치 종로구 사직로2길 17

딜쿠샤 관람 정보

개관 시간
화~일요일 오전 9시~오후 6시(1월 1일과 매주 월요일 휴관, 공휴일의 경우 개관)

외국어 해설 제공
전시 안내 해설사(영어, 중국어)가 인솔해 전시 설명

이용 방법
사전 예약제 관람(일 4회, 매회 15~20명 이내),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에서 접수

한눈에 보는 딜쿠샤

약 100년 만에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완성된 딜쿠샤.
항일운동을 세계에 알린 테일러 부부의 가옥으로 건축학적으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딜쿠샤의 탄생

1923~1924년
행촌동은 은행나무골로 불리던 곳이다. 마을을 따라 산책하던 중
은행나무가 마음에 들었던 테일러 부부는 그곳의 땅을 매입해 집을 지었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 명령으로 테일러 부부는 강제 출국해야 했다.

딜쿠샤의 복원

2005~2006년
테일러 부부의 아들인 브루스 T. 테일러가 자신이 살았던
딜쿠샤에 가족과 함께 방문했다.

2016~2017년
서울시는 기획재정부와 문화재청, 종로구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딜쿠샤 원형 복원에 합의했다. 테일러 부부의 가옥은
국가등록문화재 제687호로 등록되었다.

딜쿠샤의 발견

2016~2018년
테일러 부부의 손녀 제니퍼 L. 테일러가 3년에 걸쳐 딜쿠샤에 살았던
조부모의 관련 자료 1026건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2018~2020년
원형 복원 공사 착수.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민 개방 행사를 진행했다.
고증 연구를 통한 딜쿠샤 내부 복원과 테일러의 언론 활동 등을
바탕으로 전시관을 조성했다.

2021년 3월
딜쿠샤 전시관 정식 개관

Part 2

정세권의 조선집, 북촌한옥역사관

한옥의 정취와 매력으로 가득한 북촌. 그러나 이곳이 일제강점기하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펼쳤던 기농정세권에 의해 근대 가옥으로 재창조된 계획 주거지였음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북촌의 항일 저지선을 기획한 인물

기농 정세권은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로 전환해 조선인을 교란하려 했던 일본의 전략에 맞선 ‘공공 개발자’이자 독립운동가다. 그는 1920년대 서울의 남쪽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북쪽으로 이동하려 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건축 회사 ‘건양사’를 설립해 당시 부자가 많이 살던 북촌의 큰 집을 여러 개로 쪼개 작은 도시형 조선집(도시형 한옥)으로 개조한 후 당시 조선인들에게 대량으로 공급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기존 주택 생태계를 정치적·사회적 상황에 맞게 조율해 도심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려 애쓴 것이다. 매매 지역은 서대문에서 혜화문 일대와 행당동으로 확대되었고, 그로 인해 일본인 생활권과 분리되면서 조선은 고유의 생활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북촌 한옥에 대한 올바른 시선

3월 1일 정식 개관한 북촌한옥역사관은 오늘날 도시 재생사업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기농 정세권의 업적을 조명함과 동시에 북촌의 한옥을 역사적·문화적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는 <북촌, 민족문화방파제>라는 이름으로 상설 전시될 예정이며, 도시형 한옥이 즐비한 북촌 소재의 한옥을 소개한다. 특히 재료의 형태를 비교해 그 특징을 현대적이고 미학적으로 표현했으며, 영상 자료를 통해 전통 한옥과 도시형 한옥의 차이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실속형 한옥을 연상케하는 아담한 크기의 역사관은 각종 강연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해 북촌 한옥을 심도 있고 재미있게 다룰 계획이다. 아울러 북촌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소통 공간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위치 종로구 계동4길 3
홈페이지 hanok.seoul.go.kr

북촌한옥역사관 프로그램

- 역사학자가 들려주는 역사 토크 콘서트 운영 (연 7회 / 5~6월, 9~10월)
- 시민 대상으로 건축사가 진행하는 한옥 컨설팅(연 4회 / 9~10월)
- 한옥 명패 만들기 등 체험 키트 제작·배포 및 SNS 이벤트 실시 (코로나19 확산 시 비대면 진행)

Part 3

역사와 도시 재생의 시너지, 남산예장공원

지난 1월, 공원의 일부를 공개하며 시민을 위한 쉼터로 거듭나고 있는 곳. 삼일대로와 퇴계로 사이에 한적하고 평화롭게 자리하지만, 역사의 고충이 서려 있는 유서 깊은 장소다.

아픈 역사의 장소가 시민 공원으로

2015년에 시작한 남산 예장자락 재생 사업이 5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마침내 오는 5월 전면 개장을 앞두고 있다. 이곳은 조선 시대 군사들의 무예 훈련장(예장) 터였지만, 일제강점기에 그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조선총독부 관사가 들어섰다. 특히 일제는 임진왜란 때 왜병이 머무르는 동안 성을 쌓았다는 이유로 왜성대 공원을 만들고, 남산 전역에 통감부 등의 기관과 신사를 건립해 조선인의 정서를 말살하는 데 주력했다. 광복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선 군부 정권 기간에는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는 아픈 역사가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100년 넘게 뼈아픈 역사와 시대의 비극을 품고 있는 남산 예장자락. 서울시는 역사적 도시 재생을 통해 이곳을 누구나 찾아가고, 쉬고, 느낄 수 있는 시민 공간으로 전환했다.

역사가 숨 쉬는 유적지

남산예장공원에 오르면 가장 먼저 유선형의 빨간색 건물이 눈에 띈다. 우체통의 상부를 닮은 외형으로 ‘기억6’이라고 명명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설립된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 6국 건물이 있던 곳으로, 내부에는 옛 중앙정보부의 지하 고문실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이곳에는 실제로 ‘역사에 말을 걸어달라’는 문구가 적힌 우체통이 있다. 건물 앞에는 조선총독부 관사의 기초 일부인 유구 터가 보인다. 비록 유적지는 아니지만, 시민들이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조성했다. 공원 지하로 내려가면 오는 5월에 개관 예정인 ‘우당기념관’이 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자신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헌액한 인물이다. 그 앞의 예장마당 맞은편으로는 버스 주차장이 연결돼 있고, 녹지 공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다.

위치 중구 예장동 4-1 일대

남산예장공원 방문 포인트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애국가 2절에 나오는 소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전북 고창에서 옮겨 심었다.

접근성과 편의성
지하철 4호선 명동역과 충무로역의 중간 지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임신부 휴게실, 장애인 화장실 등의 편의 시설 또한 잘 갖추고 있다.

친환경 공간으로 더욱 상쾌하게
남산 1호 터널 입구 지하차도가 보행 전용 터널로 변모했다. 공원 아래에는 친환경 서울 녹색순환버스 전용 주차장이 있다.

삼일대로를 따라 되새기는 3·1운동의 현장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66년 ‘삼일로’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래
2010년 한남 고가도로까지 구간을 연장하면서 삼일대로로 변경되었다.
서울시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이 일대를 시민의 공간이자 역사적인 길로 조성했다.

안국역 5번 출구
독립운동을 테마로 디자인한 첫 역사인 안국역 5번 출구 앞 바닥에는
3·1운동 전개 과정을 시간순으로 나타낸 금속판이 설치돼 있다.


독립선언서 배부 터 (현 수운회관 앞)
현재의 조계사 대웅전 앞 보성사에서 찍은 선언서를 천도교 대교당 마당에
두었다가 종교계와 학생 대표들에게 미리 나눠주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대교당을 짓기 위해 모금한 돈을 임시정부 수립 등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면서 당초에 계획했던 크기보다 작게 건립되었다.


서북학회 터 (현 낙원동 건국빌딩 주차장)
도산 안창호 선생을 중심으로 설립한 서북학회는
교육 계몽운동 단체로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현재는 표지석만 남아 있다.


태화관 터 (현 종로구 공영주차장)
민족 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3·1운동의 발원지가 된 곳이다.


탑골공원 후문
의창학교 교감이던 정재용 장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시민들은 일제히 태극기를 꺼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오승해 사진 이정우 영상 양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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