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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헤엄치는 생선, 명태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미식 이야기
시대를 헤엄치는 생선, 명태
2021.01

한국인이 사랑하는 ‘넘사벽’ 생선, 명태

“원산 명태 1만5000쾌가 단오절에 맞추어 시중에 풀리며….” “조선은행 조사에 의하면 현미, 백탄, 명태 등의 물가가 올라서….”

1920년대 신문에도 명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함경도 원산은 가장 중요한 명태 산지였으며, 서울에서도 명태는 물가지수에 나올 만큼 가격에 민감했다. 물가지수에 나오는 어종은 곧 가격이 뛰면 정부가 개입한다는 뜻이다. 민심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그정도로 많이 먹는 어종이 명태였다. 과거 우리나라 어선이 어획한 명태는 연간 1억∼2억 마리가 넘었다고 한다. 국민 한 사람당 열 마리가량 먹던 대표 생선이었다. 고등어, 멸치, 갈치 등 흔한 생선이 아무리 최고라 한들 명태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냥 ‘넘사벽’ 1등이 명태였다.

명태는 주로 함경도, 강원도 같은 추운 바다를 낀 지방에서 잡혀 전국에 유통됐다. 가장 흔한 방식은 북어였다. 말린 명태를 북어라고 불렀다. 요즘은 황태와 구별하기 위해 북어를 쓴다. 황태는 인제의 추운 산골에서 덕장을 설치해 말린 것을 뜻하며, 북어는 보통 명태가 들어오는 바닷가 덕장에서 말려 유통시키는 것이다. 요즘은 황태가 꽤 많은데, 과거에는 대개 바싹 마른 북어였다. 북어는 상하지 않아 사철 먹을 수 있고, 냉장고가 없어도 유통시키기 좋았다. 무엇보다 맛과 영양이 뛰어난데 무게는 가벼워서 산골까지 장수가 가지고 갈 수 있었다. 북어는 상하지 않아서 곧 화폐 역할도 했다. 북어로 대소사의 부조를 치르는 경우도 흔했다. 집을 사면 현관 위에 매달아두었고, 새 차를 뽑아도 한동안 차 안에 매달린 북어를 볼 수 있었다. 북어, 아니 명태는 곧 한국이었고, 한국인이었다. 그런 명태가 안 잡힌 지 오래다.

저 멀리 러시아 앞의 추운 바다를 보통 ‘북양’이라고 부른다. 그곳에 우리 어선이 명태잡이를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명태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1977년에 우리 명태잡이 어선이 '소련’의 200해리 어업구역 선포에 따라 북양 캄차카해에서 빈 배로 돌아왔다는 기사가 신문에 나왔다. 그때 이미 우리 바다에서 명태가 잘 안 잡혔 다는걸 알 수 있다.

집을 사면 현관 위 에 매달아두었고, 새 차를 뽑아도 한동안 차 안에 매달린 북어를 볼 수 있었다.
북어, 아니 명태는 곧 한국이었고, 한국인이었다.

겨울철 명태의 자리를 채우던 동태

어렸을 때 평균적으로 서울 사람들이 먹는 생선 중 1등은 단연 명태였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데, 아마도 이때 이미 원양(북양어장)에서 잡은 동태가 들어왔던 것 같다. 한겨울에는 아마도 잡으면 그대로 얼어서 동태가 되었을 것이다. 리어카에 동태를 실은 생선 장수가 골목을 누볐다. 꽝꽝 언 동태를 즉석에서 손질해 팔았다. 손질이라고 해봐야 복잡할것도 없었다. 도마에 대고 커다란 조선 칼로 쾅쾅 내리쳐서 토막 내어 종이 봉지에 싸주면 끝이었다.

겨우내 가장 많이 먹은 찌개가 아마도 김치찌개 다음으로 동태찌개가 아닌가 싶다. 싸고 맛도 좋았다. 겨울엔 무가 맛있으니 쓱쓱 썰고 두부와 파(겨울 파가 또 좀 맛있나!), 더러는 콩나물을 넣고 끓였다. 고춧가루 정도 풀면되는 찌개였다.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명태의 해부학적(?)구조를 알았다. 우선 대가리만 해도 이렇다. 주둥이의 미끈한 젤라틴 성분, 눈깔의 두 가지 맛(알은 고소하고 딱딱하며, 그걸 둘러싼 주위 조직은 물컹하고 진하다), 볼살의 쫀득한 맛 그리고 아가미 빨아먹는 재미도 있었다. 등살은 푸짐하지만 좀 퍽퍽하다는 걸 알았고, 검은 내장막이 있는 가슴살과 뱃살 쪽.이 아주 부드러웠다. 다만 큰 가시가 있어서 먹기 쉽지 않았다. 알과 이리가들어 있는경우가 많았는데, 아마도 얼린 상태로 들어오는 원양어선의 동태는 녹여서 내장을 따로 추리기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대로 유통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동태는 내장 먹는 맛이 아주쏠쏠했다. 특히 ‘선수’는 간 맛을 알았다. 간은 오래 끓이면 국물에 녹아버려 비린 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살짝 끓었을 때 잘 갈무리하면 입에서 살살녹았다.

끝이 없는 변신의 귀재

그냥 흔한 동태찌개가 아니라 한겨울에 좀 고급한 찌개가 생태찌개였다. ‘어른들’이 가는 곳이었고, 대개는 대기업과 관공서가 몰려 있는 무교동, 을지로, 여의도 같은 곳에서 파는 음식이었다. 생태는 얼리지 않았으니 한겨울 제철에만 팔렸다. 살이 더 부드럽고, 잡맛이 적었다. 더 춥고 깊은 바다인 북양어장에서 오는 동태가 더 맛이 깊다는 주장도 있었다. 생태는 연근해산이었고, 나중에 우리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지자 일본산이 많이 들어왔다. 명태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 바다에서도 어느 정도 잡혔다. 그러다가 점차 안 잡혔고, 이제는 실질적으로 어획이 안 된다. 인공부화에 성공해 치어를 방류하기도 한다. 물고기는 바다에 보내면 대개 자기가 살았던 곳으로 알을 낳으러 돌아온다. 연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2018년도인가 동해에서 명태 떼가 걸려 사람들은 그 치 어가 성장해 돌아온 줄 알고 흥분했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 결과 우연히 나온 자연산이 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명태가 잡혀서 초겨울 동해안에 가면 생태 몇 마리를 사서 찌개를 끓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그때는 생태를 사면 요즘은 몸값이 귀한 산 오징어 몇 마리를 '서비스’로 줬다.

북어와 동태의 시대가 힘을 잃은 사이, 새로운 명태 요리가 우리 입을 즐겁게 해주기 시작했다. 코다리다. 산지에서 얼말려 꾸들꾸들하게 유통시키는방식이다. 냉기가 있는 실내 건조장에서 송풍기를 돌려 빨리 말린다. 북어처럼 딱딱하지 않고 동태처럼 생살이 아니니 또 묘한 맛을 낸다. 코다리는 2000년대 들어 인기를 끌기 시작해 지금은 시골 장터에도 나오고, 도시에는 전문 프랜차이즈 가 있을 만큼 아주 흔한 명태의 한 부류가 되었다. 시대가 흐르니 명태를 먹는 방식도 달라지는 것이다.

1949년, 함경도의 한 바닷가 지역에서 선사시대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그 흔적에 명태 뼈가 있었다. 그들은 명태를 어떻게 먹었을까? 날로 회를 쳐 먹었을까? 아니면 구워서 먹거나 말려서 더 오래 두고 먹었을까? 적어도 우리 선조가 가장 오랫동안 가장 사랑하며 먹었던 물고기는 명태가 틀림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날 이 추우니 동태찌개 한 양푼이 그립다. 같이 먹던 친구들이 더 그립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코다리를 손질해 양념에 조려내면 감칠맛이 난다.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명태의 변신은 무죄

구워 먹고, 끓여 먹고, 조려 먹는
#명태만상

#해장에일품 #국물무한리필

1968년부터 을지로, 다동, 무교동의 직장인들에게 편애를 받아온 노포이자 시원한 해장국으로 손꼽히는 북엇국 단일 메뉴로 승부하는 곳이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자리를 지키며 그 맛을 이어오고 있는 이곳은 쌀, 배추김치, 마늘, 고춧가루는 물론 육수용 사골까지 국내산을 사용한다. 이 집의 북엇국은 몽글몽글하게 푼 달걀과 북어 그리고 넉넉한 두부가 허한 속을 시원하게 채워준다.

무교동북어국집

  • 가격 북어해장국 7500원
  • 주소 중구 을지로1길 38
  • 시간 오전 7시~오후 8시 (주말·공휴일 오전 7시~오후 3시)
  • 전화 02-777-3891
#달큼한무 #요리가된코다리

꾸덕꾸덕한 식감에 양념이 잘 밴 이곳의 코다리찜은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 은 없을 정도다 반건조한 명태인 코다리를 깨끗하게 손질한 뒤 겨울이라 더욱 달큼한 맛을 뽐내는 무를 넉넉하게 넣고 특제 양념과 대파를 듬뿍 올려 조림 형태로 만들어낸다. 건강한 식재료를 중시하는 주인장의 손맛 덕분에 코다리찜 외에도 명란젓찌개, 오징어볶음, 오이소박이 등 인기 메뉴가 많다.

코다리찜(구 길목식당)

  • 가격 코다리찜 8000원, 북엇국 7000원
  • 주소 중구 마른내로13
  • 시간 오전 8시~오후 9시 (휴식 시간 3시 30분~ 4시 30분, 토·일요일 휴무)
  • 전화 02-2267-4957
#동태인가생태인가 #칼칼한맛

종로5가 보령약국을 끼고 큰 골목으로 들어선 후 다시 오른쪽으로 난 작은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칼칼한 국물 냄새가 코끝을 사로잡는다.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 쪽에 자리한 커다란솥에서 벌건 동탯국이 끓고 있는데, 바로 이 동탯국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 동탯국을 주문하면 따끈한 국내산 흰 쌀밥과 함께 푸짐한 국 한 사발이 나오는데, 마치 생태처럼 탱탱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동태와 녹진한 곤이가 추위를 단번에 녹여준다. 기호에 따라기 본과 곤이 추가 메뉴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연지얼큰한동태국

  • 가격 동탯국6000원, 곤이내장국 7000원, 알탕 8000원
  • 주소 종로구종로31길 8-1
  • 시간 낮12시~오후9시 (휴식 시간 오후 4시~6시, 일요일 휴무)
  • 전화 02-763-9397
#기사식당맛집 #중독적얼큰함

‘북어찜이 거기서 거기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강력 추천한다. 넓게 편 북어 한 마리가 넉넉한 국물에 담겨 나오는데, 채 썬 양배추와 양파 덕분에 달콤하면서도 청량고춧가루의 맵고 알싸한 맛이 강렬해서 입안이 얼얼할 정도다. 그럼에도 계속 손이 갈 만큼 중독적인 맛을 자랑한다. 달콤한 양념의 북어구이도 별미니 놓치지 말 것.

역삼동북어집

  • 가격 북어찜 백반 7000원, 북어구이 (2마리)1만3000원
  • 주소 강남구 논현로85길 5-14
  • 시간 오전 9시~오후 9시 (주말 오전 9시~오후 8시)
  • 전화 02-558-6605

※식당 방문 시 마스크 착용과 출입자 명단 기입, 손 소독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잊지 마세요.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한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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