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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매일 서울을 만납니다

런던에서 매일 서울을 만납니다>
2020.10

에세이

나의 서울

선안남

런던에서 매일 서울을 만납니다

런던에서 서울을 재발견하다

2년 전, 저는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넘어 삶의 무대를 바꿔보는 큰 변화를 감행했습니다. 두 돌을 넘긴 둘째는 등에 업고, 7개월 된 셋째는 품에 안고, 여섯 살 된 첫째의 손을 꼭 쥐고 런던에 왔습니다.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자신에게 익숙한 안전지대를 허물고 내 삶을 총체적으로 뒤집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2년 전 그때가 저에게 ‘지금이야!’를 촉구하는 시기였지요.

그렇게 런던에 살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런던에서 생활하는 동안 제가 만난 것은 런던이 아닌 서울이었으니까요. 런던에 와서야 서울의 진가를 재발견하면서 서울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공간에 대한 사랑은 그곳을 떠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변화를 ‘선택’했기에 얻은 삶의 선물이었지요.

코로나 시대, 적응 능력은 필수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가능성에 제동이 걸린 올 한 해 동안 ‘변화’는 모두에게 중요한 키워드였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런던의 숲길에도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했지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서로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고안된 ‘한 방향 이동 규칙(One-way System)’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입구와 출구 근처에 있는 화분마다 그 규칙을 알려주는 세심한 문구가 쓰인 푯말이 세워져 있지요.

‘Entry Only, Exit Only, Ahead Only.’

어쩔 수 없는 곳에만 드물게 ‘양방향 이동(Two-way)’도 가능하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어요. 이 모든 푯말이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배려와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을 대변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변화에 맞춰 새로운 규칙을 짜고, 그 규칙에 맞춰 과거의 나와 결별하고, 새로운 나를 재배열해내는 우리 내면의 능력 말입니다. 물론 상실감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한없이 날카로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어떤 상황 속에서든 새 판을 짜내고 변화를 감당해나가는 우리의 능력은 질기고도 강합니다.

새로운 규칙에 맞춰 길을 걸으며 앞사람의 무수한 발자국을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서로가 뒤늦게 겹쳐지는 발자국으로만 만날 수 있고 전과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지만, 그렇게 사회적 거리는 두더라도 우리의 마음속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한곳에 겹쳐지지요. 또 한편으로는 이 모든 변화가 전혀 낯설고 새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지구별 여행자의 태도

런던에 오면 꼭 가보고 싶던 공간 중 하나가 테이트모던 미술관(Tate Modern Museum)이었습니다. 런던 생활 초기, 모든 것이 낯설고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가득해서 마음 둘 곳이 필요했던 그 시기, 두리번거리다가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한 층에서 이 문구를 마주했습니다.

“Everything is Going to be Okay!(다 괜찮아질 거예요!)”

처음에는 어떤 문장인지 확실치 않다가 가만히 시선을 두고 보면 문장이 서서히, 더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잊고 있던 이 문구를 요즘엔 더 자주 생각해보곤 합니다.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사실 제가 앉아 있는 곳에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서울에서 테이트모던 미술관을 생각하던 때만큼 아득히 멀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위로를 시작으로 이 시간을 잘 운용해나갈 마음의 태도를 다지다 보면 어느 순간 힘이 납니다.

“상황이 어떻든 내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꺼내기로 합니다. 모든 유한한 아름다움을 더 소중히 음미합니다. 어둠이 있어 별이 더 빛난다는 사실을 주목하며, 어둠에 함몰되기보다는 반짝이는 별이 되기로 합니다. 긴 터널의 시간을 통과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망하기보다는 어떤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내내 곁에서 깜빡이는 다정하고 친절한 불빛이 있음을 잊지 않습니다. 잃은 것을 세기보다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음에 감사합니다. 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모르던 것을 새롭게 재발견해갑니다. 멀리 가지 못하기에 가까운 사람의 숨소리와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이 기회를 활용합니다. 이 모든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꿔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을 꾸준히, 묵묵히 쌓아갑니다.”

이 모든 힘에 기대어 저는 오늘도 런던에서 서울을 가고, 온 세상을 갑니다. 지구별을 여행합니다.

선안남

선안남
상담심리사로 상담실에서 그리고 상담실 밖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 적으며 더 나은 변화로 가는
마음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명륜동 행복한 상담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썼고, 지금은 내년에 돌아갈 새로운 서울 생활을 꿈꾸며 런던에 머무는 중이다.

글·사진 선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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