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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 가족의 라디오

인터뷰 · 탐방 · 역사 산책

그 시절 우리 가족의 라디오
2020.10

1927년 2월 16일, 정동에 있던 경성방송국에서 라디오 전파가 송신되었다.
우리나라의 첫 라디오 전파였다. 시민들의 일상과 함께하며 때론 울고 때론 웃게 한
그 시절 우리 가족의 라디오를 만나봤다.

고달픈 삶에 친숙한 벗이 되었던 라디오

“TV가 등장했을 때도 라디오는 위기였고, 인터넷이 나왔을 때도 라디오는 위기였다. 계속되는 위기 속 라디오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소소한 일상을 파고드는 힘 때문이다.” –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展 에필로그

‘집콕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TV와 유튜브 등 비디오 정글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라디오가 재조명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직접 대면이 줄어든 대신, 라디오를 들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이들이 다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인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는 1970년 대 라디오 문화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획 전시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를 열고 있다. 1920년대 경성방송국에서 처음 방송을 탄 이후 1970년대에 TV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인기가 떨어질 때까지 라디오는 교통 정보와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고달픈 시민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가장 친숙한 벗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라디오가 없었더라면 문화의 토양은 척박했을 것이고, 우리의 삶은 더 고달팠을지도 모를 일이다.

환호받던 스포츠 중계, 축소 편성된 보도 프로그램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은 1927년 일제강점기의 경성방송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성방송은 보도, 교양, 오락 프로그램 위주로 구성되었다. 1940년대 들어 라디오는 일제에 의해 국민 동원과 전쟁을 위한 선전 도구로 변모했다. 라디오 방송의 시작과 함께한 보도는 광복 후 더욱 증가했다. 광복 후 경성방송은 명칭을 서울중앙방송(KBS)으로 바꾸었고, 미군정기를 거치며 미국의 방송 시스템을 도입했다.

해방 3년 후인 1948년 서울중앙방송은 국영방송이 되었다. 같은 해 제14회 런던 올림픽이 열리자 특파원을 파견해 BBC 단파를 통해 경기를 중계했다. 이후 라디오의 소형화로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며 중계를 듣는 등 스포츠 중계 전성시대가 열렸다.

1970년대에 TV가 보급되며 다른 프로그램의 청취율이 감소할 때도 스포츠 중계는 여전히 인기를 끌었다. 라디오의 ‘속보성’ 덕분이었다. 반면 운명을 달리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1954년 기독교방송(CBS)을 시작으로 문화방송(MBC), 동아방송(DBS), 라디오서울(RSB, 이후 JBS를 거쳐 TBC로 개칭) 등 민영방송국이 차례로 개국했다. 당시 민영방송은 오락 프로그램을 대량 편성해 청취율 경쟁에 돌입했다. 청취자 확보가 라디오 방송의 중요한 목표가 되면서 보도 프로그램 역시 경쟁에 나섰다. 아나운서가 단순히 기사를 읽는 형식에서 벗어나 논평이나 해설을 더하는 형식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청취자의 호응을 얻었지만, 이후 정국이 경색되고 탄압이 심해지면서 보도 프로그램의 편성은 차츰 줄었다.

국산 스카이보이스 진공관 라디오.

금성 A-501 라디오.

TV, FM/AM 카세트 녹음기.

삼성 카세트 라디오.

음악방송과 드라마로 이룬 ‘라디오 전성시대’

일제강점기의 교양 프로그램은 한국인의 문화 개발을 위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사상 선도에 중점을 두었다. 광복 후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게임>은 퀴즈 프로그램의 효시로, 이후 <장학퀴즈>로 연결되었다. 1956년 <청실홍실>로 라디오 연속극 시대가 열렸다.

1960년대는 아직 TV가 보급되기 전이어서 그야말로 라디오의 전성시대였다. 방송국은 드라마를 30분 단위로 띠편성하기에 이르렀고, 대부분이 멜로물인 라디오 드라마는 인기를 누렸다. 인기 드라마는 대부분 영화로 제작 되었고, 책이나 음반으로도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대다. 또한 차량이 본격 증가한 시기이기도 했다. 차량이 증가하면서 방송국마다 아침 교통 체증 시간에 교통방송을 편성했다. 버스 및 택시 운전기사들에게 교통 통신원 자격을 부여했고, 교통 통신원들은 시내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방송국에 전했다. 라디오는 TV와 생존경쟁을 벌였다.
속보성을 이용한 뉴스와 생활 정보 프로그램, 스포츠 중계, DJ 음악방송을 주로 편성하고 심야 및 새벽, 정오 무렵을 전략 시간대로 설정하며 살길을 모색했다.

라디오 키드의 출현

라디오를 들으며 성장기를 보내는 청춘들이 늘면서 인기 음악방송과 인기 DJ의 팬덤이 형성된 것도 이 시기였다. 1978년 당시 방송된 대표 음악방송으로는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TBC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DBS 라디오 <0시의 다이얼>, CBS 라디오 <꿈과 음악 사이> 등이 인기를 끌었다. 가요와 팝, 영화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송을 통해 라디오 키드는 다른 사람의 사연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자신의 사연을 엽서에 띄워 보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 시대에 젊은 날을 보낸 청춘들은 전파를 타고 흐르는 언어와 소리를 통해 삶의 순간과 시대 감성을 공유했다.

방송국 표시장.

중계차용 마이크.

<MBC 예쁜 엽서전>에 출품된 엽서들.

<별이 빛나는 밤에> 목판 엽서.

<별이 빛나는 밤에> 사연 모음집.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시낭송 음반.

바람 소리 음향 효과 도구.

디지털 시대에 각광받는 라디오의 아날로그 감성

한국전쟁 중 전차나 천막에 모여 라디오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방송통신대학교와 방송통신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라디오로 교육 기회를 누리기도 했다. 라디오는 외국어 학습에도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각 방송국은 아침 시간에 영어 강좌를 방송했고, AFKN 또한 영어 학습에 활용되었다. 초기 국악을 주로 방송하던 음악방송은 1960년대 들어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심야 음악방송을 편성했다. 당시 라디오와 TV를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불어넣어준 방송인 황인용 씨는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분이 많다.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라디오의 역할을 강조했다. 배현숙 서울역사박물관 관장은 “그 시절 라디오는 세상 소식을 듣는 통로이자 가족이 즐기는 대중문화 매체였다. 소통이 줄어든 언택트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라디오가 다시금 의미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라디오가 오래전 그때처럼 시민의 삶에 활기와 에너지를 부여하는 빛과 소금이 되길 기대해본다.

황인용

전 아나운서,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

“지금도 많은 분이 황인용 하면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떠올립니다. 팝 프로그램 DJ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게 굉장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정부에서 방송국에 심야 프로그램을 아나운서에게 맡기라는 지시를 내려 제가 하게 된 것인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라디오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라디오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밤을 잊은 많은 ‘그대’와 함께할 수 있어서 진정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한국 라디오 연표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 개국

경성방송국 마이크.

1933년 4월 26일

이중방송(한국어, 일본어) 개시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 방송

1946년 10월 18일

정시방송제 실시

1947년 9월 3일

호출부호 HL 배정

1948년 7월 29일

제14회 런던 올림픽 중계

런던 올림픽 기행.

1951년 4월 3일

라디오 청취료 폐지

조선방송협회 청취료 영수증.

1954년 12월 15일

기독교방송 개국

1961년 12월 2일

문화방송 개국

1963년 4월 25일

동아방송 개국

1964년 5월 9일

라디오서울 개국

1969년 3월 17일

문화방송 음악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시작

1973년 3월 3일

한국방송공사 창립

그 시절 우리의 라디오 DJ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전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는 1978년 서울 미아동에 있는 어느 한 가족의 주택을 재현해 1970년대 라디오 문화를 전시한다. 전시장에서는 당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했던 DJ 황인용의 목소리를 통해 가족의 사연을 들을 수 있어 더욱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해당 전시는 9월 29일부터 사전 예약 관람제로 만나볼 수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VR 온라인 전시를 통해서도 관람할 수 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위치 노원구 동일로174길 27
문의 02-3399-2900
홈페이지 서울생활사박물관 https://museum.seoul.go.kr/sulm/index.do

홍현도

서울생활사박물관 학예사

“언택트 시대의 소통 수단으로 라디오에 주목했습니다. 라디오야말로 오랫동안 언택트하면서 서민과 소통해온 가장 두드러진 소통 수단이니까요.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서울 미아동에 사는 가상의 영희네 가족을 등장시켰습니다. 국내 최초의 국산 라디오와 1960~1970년대 라디오 편성표, 라디오 드라마 <전설따라 삼천리> LP판 등 다양한 기록물을 전시했습니다. 라디오 시대 속 서울의 소리를 듣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지영 사진 한상무 일러스트 한성원 사진 제공 서울생활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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