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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시에는 강이 흐른다

나의 도시에는 강이 흐른다>
2020.09

에세이

나의 서울

홍인혜

나의 도시에는 강이 흐른다

심상치 않은 강

포르투갈의 포르투라는 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수도인 리스본에 이어 두 번째로 번화한 도시라고 들었다. 도시 가운데에는 도루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강 북부에 머물고 있었는데, 주요 관광지인 광장, 궁전, 탑 등은 모두 북쪽에 빼곡해서 강을 넘어갈 일이라곤 없었다.

딱 한 번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 강을 건너본 적이 있다. 그 유명한 포트와인 공장들은 도루강 이남에 늘어서 있었다. 다리를 건너며 강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건너온 후엔 상대적으로 고즈넉한 분위기에 놀랐다. 어딘가에 터를 잡고 앉아서는 이편에서 바라보는 저편이 너무 아름다워 놀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거대한 강이 양분한 두 구획을 한 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토록 판이한 두 지역은 사실상 각각의 도시가 아닐까?

여기에서 나는 잠시 생각을 멈칫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서울에서 온 녀석이. 나는 한강을 떠올렸던 것이다. 쾌속으로도 한참을 건너야 하는 널따란 강. 도시의 허리를 뚝 자른 거대한 물. 우리는 이를 사이에 두고도 두 구역을 자연스레 하나로 묶는다. 물론 강북과 강남이라는 용어가 있긴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 내 머릿속에는 당연하게도 명동·강남역·합정동·이태원·가로수길·서촌 등이 산발적으로, 그러나 하나의 유기체처럼 떠오른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강을 서울의 한 구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장엄한 흐름은 내 도시의 일부였다. 경계가 아니라 내부였다. 한강은 도시를 나누고 있지 않았다. 도시를 접착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강이었다.

늘 새삼스러운 강

삶의 자잘한 부스러기들을 정돈하고 줄 세우느라 골똘해질 때가 있다. 잡스러운 걱정과 부산한 감정 탓에 시선이 가슴 안쪽으로 수렴해 도무지 바깥이 안 보일 때가 있다. 예컨대 내일 오전에 있을 클라이언트 미팅 따위를 근심하며 걷고 있자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이처럼 유령같이 부유하던 나를 삽시간에 ‘지금’으로 데려와 또렷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문득 눈에 들어온 새파란 하늘, 갑자기 귀에 걸린 아름다운 음악, 우연히 마주친 반가운 얼굴 같은 것들. 우리는 그를 마주한 순간 반투명 인간에서 돌연 명징한 존재가 된다. 과거와 미래 어딘가를 맴돌던 내가 지금에 벼락같이 꽂힌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강이다. 나는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허깨비 같은 상태로 전철의 규칙적인 리듬에 흔들리다가도 열차가 강을 건너는 순간 현실로 돌아온다. 쇳소리를 내며 캄캄한 지하를 달리던 열차가 강 위를 날기 시작하면 고개를 빼고 창밖을 본다. 볕이 좋은 낮에는 반짝이는 물비늘이 아름답고, 석양 무렵엔 티백처럼 몸을 담그며 붉게 풀어지는 태양이 근사하다. 오랜 비 끝엔 불어난 강물에 선득하고 깊은 밤엔 알약처럼 풀어지는 불빛들이 아련하다.

수십 해를 봤지만 늘 새삼스럽다. 거듭거듭 감동적이다. 오직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열차가 강을 건너는 순간 공기에 강바람이 깃드는 것을 느낀다. 휴대폰 게임에 열중하던 사람이 고개를 들어 흘끗 창밖을 보고, 발을 까딱거리던 아이의 눈이 커지고, 누군가는 등을 돌려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한강은 그런 곳이다. 다른 곳을 서성이던 우리를 지금 여기로 데려다 놓는 곳.

만져지는 강

나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간다. 낮의 강은 활기차다. 산책하는 개와 사람이 많다. 개는 사람을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이고, 사람은 개가 자랑스러운 얼굴이다. 캠핑 의자에 앉아 볕을 즐기는 이도 많다. 잘 여문 열매들처럼 이마가 반짝거린다. 나는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는다. 종아리가 부풀어 오르고 온몸이 하나의 심장처럼 박동한다. 육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력. 내리막길에선 다리를 멈춘다. 하강의 감각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서늘하다.

밤의 강은 느긋하다. 어둠이 서린 강바람이 묵직하다. 도시가 흘린 빛의 파편들이 검은 강에 내려앉는다. 강은 조각난 도시를 조금 가지고 놀다가 조용히 삼킨다. 흘러간 유행가가 누군가의 바퀴에 실려 내 왼편을 스쳐간다. 노래의 꼬리가 나부끼며 멀어진다. 강도 숨을 죽인다.

사실 나는 강을 그리워하며 이 모든 풍경에 대해 쓰는 중이다. 세계에 창궐한 역병이 어느새 내 창문까지 두드리고 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강이 있지만 도무지 갈 수가 없다. 나는 둔치의 피크닉이 그립고, 편의점 라면이 그립고, 익살스러운 오리배가 그립다. 삐죽 솟아 있던 럭비 골대가 그립고, 늘씬한 자전거의 행렬이 그립고, 보닛을 덥히며 늘어서 있던 주차장의 차들마저 그립다. 나는 한강이 그립다. 이 기약 없는 구금 기간이 끝나면 나는 가장 먼저 강으로 달려갈 것이다. 가서 코와 입을 풀어놓고 손과 발을 놓아줄 것이다.

홍인혜

홍인혜
시인, 카피라이터, 에세이스트, 만화가로 불리는 그는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광고 회사에 입사해
광고쟁이로 청춘을 보냈다. ‘기억하지 않으면 애초부터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매일을
기록해나가는 그는 오늘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루나 파크’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

글·사진 홍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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