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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빵, 추억을 품다

인터뷰 · 탐방 ·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미식 이야기
서울의 빵, 추억을 품다
2020.06

‘빵’이 이어준 인연의 끈

1960~1970년대는 서울에 수많은 빵집이 생겨나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였다. 서울은 지리적으로 남북과 동서로 나눌 수 있는데, 독립문에서 서대문-광화문-명동-을지로-충무로-동대문-청량리-왕십리로 이어지는 동서 축, 서촌·북촌과 혜화동 라인에서 시작해 남쪽인 용산-노량진으로 이어지는 남북 축이다. 이 양 축선의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빵집이 생겨났다. 과자와 빵을 따로 구별하는 경우도 있었고, 함께 생산하기도 했다. 고려당, 무과수제과, 덕수제과, 태극당 등 수많은 제빵·제과점이 시내 중요한 공간에 자리 잡고 손님을 끌었다. 이들 제과점은 빵과 과자를 생산하고 판매했으며, 동시에 그런 제품을 먹을 수 있는 사교 공간, 간이식당 역할을 했다. 밥집과 술집 외에 젊은이들이 갈 만한 공간이 부족했던 당시의 서울은 이런 장소가 배를 채우는 목적을 넘어 세대의 욕망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소비되었다. 빵집은 미팅과 친구들의 사교 장소가 되었고, 맞선과 특별한 가족 나들이 공간이 되었다. 더러는 단순히 빵이라는 제품을 파는 장소를 넘어 간이 양식당 역할도 했다. 간단한 수프와 샐러드를 팔았고, 더러는 떡볶이와 칼국수, 냉면을 같이 파는 젊은이들의 복합 공간으로 충분히 기능했다.

동네 빵집에서 브랜드 빵집으로

빵과 과자는 동시에 영등포, 용산 등지의 공장에서 생산되어 시내의 소매점에 납품되며 소비층을 넓혀갔다. 요즘 최고로 강력한 브랜드가 된 파리바게트도 이 당시에 샤니, 삼립빵 등의 브랜드로 소매점 빵 시장을 장악하던 회사였다. 1980년대 들어 시내 대형 제과점 시대의 번영과 함께 동네 빵집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대형 제과점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속속 작은 빵집을 차려 독립했고, 서울의 주거 공간이 점차 확장되고 아파트 등으로 밀집 형태를 띠면서 제과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데 힘입은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이런 동네 제과점은 프랜차이즈를 내세운 대형 회사들의 협공으로 위축되고, 폐업이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매점에 빵을 납품하던 회사의 후신에게 밀려난 셈이었다. 이후 소매점 빵 시장은 위축되었고,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소비가 대거 수렴되었다. 그런데 이 무렵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유학한 새로운 세대의 제과·제빵인들이 젊은이가 많이 몰리는 압구정동, 홍대 등지에 유럽형 정통 빵집을 속속 개업하면서 빵 시장의 구조가 재편되기 시작했다. 물론 물량으로는 비교할 수 없이 적지만, 정통 빵(흔히 식사용 빵이라고 부르는 바게트 계열, 마카롱이 상징하는 유럽 과자류, 케이크 등)을 갈망하는 새로운 세대에게는 큰 영향력을 가진 세력이 되었다.

제과·제빵 모두가 빵이다

잠깐 용어의 혼란을 피하자면, 과자와 빵은 엄연히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제과점=빵집’의 등식이 쓰이고 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도 과자와 빵은 서로 다른 세계임에도 실제로 빵이 더 많이 팔리므로 대다수 기술자들이 제빵에 더 치중하고 있다. 그래서 제과점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빵만 파는 경우도 많고, 과자를 다뤄도 그냥 ‘빵집’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한국에 빵이 처음 들어온 것은 1800년대 초반 안팎 정도로 보고 있다. 선교사가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다. 이들은 자신의 식사에도 필요했고, 또 선교용으로도 쓸 수 있는 빵을 원했다. 밀가루는 유럽 본토나 중국으로부터 반입했고, 오븐과 제과 도구까지 들여왔다. 물론 상업적인 빵은 아니었다.

이후 외국 공관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던 대한제국 시기에 빵은 궁에 납품되기도 했고, 조선의 몇몇 명사가 맛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약간의 시장이 생겼다. 물론 외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이나 공사관 등에서 만들어지는 수준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는 한반도에 제빵·제과 문화가 본격화 된 시기였다. 유럽 문명을 받아들여 일찍이 개화한 일본은 빵과 과자 문화도 재빨리 이식받았는데, 식민지 수도 경성에도 이런 문화가 그대로 진입했다. 일본인 주재원들과 군인은 물론 조선인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일본의 제과사들이 자본과 함께 들어와 경성 곳곳에 빵집(제과점)을 열었다. 특이한 것은 일본화된 서양과자가 많았다는 점이다. 단팥빵, 크림빵 등과 함께 찹쌀떡(모치), 센베이(유럽 와플을 일본화한 것으로, 간장과 김 등이 들어간다) 등을 많이 팔았다.

젊은이들이 갈 만한 공간이 부족했던 당시의 서울은
빵집이 배를 채우는 목적을 넘어 미팅과 친구들의 사교 장소가 되었고,
맞선과 특별한 가족 나들이 공간이 되었다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있는 서울의 빵

봉건사회에서 서구형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데 빵은 중요한 몫을 했다. 빵은 독립적인 식사를 가능하게 했고, 더 깨끗하고 개인적이며 서구형인 입체적인 문화생활의 진입구 역할을 했다. 이때 빵을 먹은 사람들은 새 시대를 이끌어가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1950~1960년생인 베이비붐 세대다. 우리가 지금 ‘386’ 세대라고 부르는 이들은 한반도에서 어린 시절부터 배를 곯지 않고 자라나기 시작한 최초의 세대였다.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은 한국의 전통적 사회를 완전히 바꾸는 동력이 되었다. 민주주의를 체험했고, 1987년 국민 항쟁을 열었으며, 결국 군사정권을 물리쳤고, 21세기 정보통신 사회를 여는 핵심 세력이 됐다. 빵은 우연히도 그 자리에 있었고, 그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빵은 우리 식생활에 핵심이 되었으며, 서울의 빵은 매우 독자적인 형태로 세계 제빵사에도 유례가 없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의 여러 제빵 기술이 도입되어 사랑받고 있으며, 동시에 일본에서 유입 된 전통적인 팥빵, 소보루빵 등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은 제과점이 더 이상 맞선 장소로 쓰이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빵 카페의 형태로 그 유산을 이어가고 있어 신기할 따름이다.

빵으로 식사를? 밥빵의 시대를 열다

정웅 오월의종 대표

그동안 쌀과 밀가루는 우리에게 주식과 부식의 개념이 컸다. 빵 역시 단팥빵이나 크림빵처럼 달콤한 간식용이었지만, 최근엔 원재료의 맛이 살아 있는 담백한 식사용 빵이 주목받고 있다. ‘소화가 잘되는 빵’이라는 수식어로 인기를 얻고 있는 ‘오월의종’은 한국형 식사용 빵이 많은 빵집으로, 회사원에서 빵집 아저씨로 변신한 정웅 대표가 오늘도 어김없이 빵을 만들고 있다. 2004년 5월 오월의종이라는 이름으로 호밀빵, 바게트 같은 조금 딱딱하지만 달지 않은 정통 발효 빵을 구워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천연 발효종은 시큼한 특유의 향과 ‘빵은 곧 간식’이라는 대중의 취향을 맞추지 못해 고전했지만, 설탕이나 버터를 줄이고 한 끼 끼니가 될 수 있는 ‘밥빵’만을 고집했다. 느리게,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만들어 구워내는 그의 빵은 매일 밥을 먹어도 속이 편안한 것처럼 빵이 식사가 되고, 담백한 빵에 취향에 맞는 다양한 재료를 반찬처럼 올려 먹는 방식을 자리 잡게 했다.

오월의종
주소 용산구 이태원로49길 24
전화 02-749-9481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서울에서 즐기는 빵집 순례

떠나요! 빵빵한 세계 여행,
국가 대표 빵 #TMI

#이탈리아치아바타

유기농 밀과 자연 발효종을 사용해 소화가 잘되는 빵을 만든다. 명란젓, 시금치와 크림치즈, 밤, 게딱지장 등 다양한 재료를 넣은 이색 치아바타로 눈길을 끈다.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한 치아바타는 단단한 겉과 달리 속은 촉촉한 반전 매력을 지녔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빵으로 1982년 바게트를 대체하기 위해 탄생했다.

츄이구이브레드

  • 가격 양송이버섯·브리치즈 치아바타 4500원
  • 주소 마포구 동교로18길 13
  • 전화 02-2608-9393
#일본야키소바

일본 장인의 개성 있는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일본식 베이커리다. 그래서인지 멜론빵, 새우가스버거 등 생소한 메뉴가 눈에 띈다. 그중 이곳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자랑하는 것은 야키소바빵. 일본식 볶음면인 야키소바를 핫도그 빵에 끼워 넣은 것으로 ‘단짠’의 맛이 조화롭다. 빨간 생강을 고명으로 올려 느끼함을 잡았다.

아오이토리

  • 가격 야키소바빵 2800원
  • 주소 마포구 와우산로29길 8
  • 전화 02-333-0421
#미국베이글

17세기 동유럽 유대인이 즐겨 먹던 베이글이 19세기 미국으로 퍼졌고, 오늘날에는 한국에서도 대중화되었다. 이곳은 유대인에게 3년간 전통 방식을 전수했고, 13년간 미국 뉴욕에서 베이글 맛집으로 손꼽히던 ‘베이글 타임’의 두 번째 가게다. 자체 개발한 화덕에서 어니언, 블루베리, 갈릭 등 10여 가지 맛의 베이글을 정성껏 구워낸다.

마더린러 베이글

  • 가격 크림치즈 베이글 4800원
  • 주소 서대문구 이화여대5길 5
  • 전화 070-7758-3030
#독일프레첼

우리에게 간식 같은 프레첼은 독일에선 주식이다. 독일 현지에서 배워온 제빵 기술로 제대로 된 독일식 빵을 선보인다. 플레인, 치즈, 치즈 살라미 맛의 프레첼은 꾸준히 사랑받는 메뉴다. 갓 구운 프레첼 안에 부드러운 버터를 짜 넣은 버터 프레첼은 또 하나의 별미다. 반죽을 발효시키는 효모를 직접 배양해 더욱 믿음이 간다.

브로트아트

  • 가격 프레첼 3500원
  • 주소 영등포구 국제금융로7길 3
  • 전화 02-785-0466
#영국스콘

바게트, 캉파뉴 등 10여 종의 유럽식 빵을 선보인다. 설탕, 버터, 달걀 등의 재료를 최대한 덜어낸 건강한 빵을 만든다. 최대 9시간까지 저온에서 오래 발효시켜 빵의 부드러운 식감을 살린다. 영국을 대표하는 빵인 스콘 역시 이곳에선 포슬포슬한 맛이 매력적인 빵으로 변한다. 플레인, 크랜베리 등 두종류의 스콘 모두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폴앤폴리나

  • 가격 스콘 3000원
  • 주소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08
  • 전화 02-761-1966
#프랑스크루아상

화학첨가물 대신 천연 발효종을 이용해 빵의 순수한 맛을 살린 정통 유럽식 빵집이다. 크루아상은 과거 오스트리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프랑스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곳에선 통밀을 사용한 라우겐 크루아상의 인기가 특히 높다. 겉면은 프레첼처럼 바삭하고, 층층이 꽉 찬 속은 떡처럼 쫄깃쫄깃하다. 담백하면서 짭짤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아티장베이커스

  • 가격 라우겐 크루아상 3500원
  • 주소 용산구 한남대로18길 26
  • 전화 02-749-3426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한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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