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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벽돌이 지은 건축, 김수근의 벽돌 건물들

빛과 벽돌이 지은 건축, 김수근의 벽돌 건물들>
2015.10

문화

서울의 오래된 것들

빛과 벽돌이 지은 건축, 김수근의 벽돌 건물들

후학들의 가슴에 내 이름이 살아있다면 난 죽은 게 아니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국립과학관, 경복궁역, 서울지방법원청 사…. 김수근이라는 건축가의 이름은 잘 모르더라도 그가 설계했 던 작품들을 나열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30여 년간 건축가로 활동하는 동안 300여 개의 작품을 남기며 길지 않은 생을 살다간 김수근은 시대적인 어둠에 편승된 건축물들로 논란도 있었지만, 건축 1세대로서 현대건축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런 김수근이 즐겨 사용했던 몇개의 벽돌 건축물의 흔적을 찾았다.

사옥 지하의 '공간사랑'에서는 병신춤으로 유명했던 공목진과 사물놀이패의 국악인 김덕수가 데뷔한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연대를 정확히 알수 없는 고려시대 불탑 후배 장세양의 유리커튼월외장의 신사옥은 구사옥과 어울리지 않을 듯 하면서도 잘 어울린다.

구사옥 내부는 작은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흐르는 느낌이다.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모습이었으며 한국 현대건축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간사옥 1977년 완공된 김수근의 건축회사의 사옥. 현재는 갤러리가 되었다. 검은색 벽돌 외관은 궁궐에서 주로 쓰이던 창덕궁의  검정 기와와 닮아 있는데 그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북촌의 전통가구의 배경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벽돌이라는 재료는 색깔 때문인지 완성된 건축물을 보면 따뜻함을 주는 것 같다. 김수근은 그런 벽돌을 ‘인간적인 재료’라 일컬으며 특히나 사랑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에 정감이 가는 이유다. 하지만 벽돌이라는 건축재료는 높이 쌓는데 한계가 따르게 마련이다. 큰 건축물을 올리는데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그 대안으로 철근과 콘크리트가 구조체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벽돌은 보조역할로써 자유를 얻게 되었다. 더불어 그의 건축물들은 벽돌의 향연을 펼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채로운 표정으로 입혀졌다. 불규칙적으로 쌓는가 하면 인위적으로 벽돌을 깨뜨려 깨진면을 바깥쪽으로 돌출시켜 무수히 다른 인상을 가진 울퉁불퉁한 벽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 장 한 장 손으로 쌓아야 하는 벽돌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는 그의 철학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는 삶의 후반부에야 세례를 받았던 늦깎이 천주교 신자였지만 훨씬 전부터 많은 교회 건축 물들을 작업했다. 그가 만든 예배당들은 높은 첨탑이나 십자가보다 벽돌길을 걷는 편안함과 더불어 육중함까지 담아냈다.

아르코 예술극장 마로니에 공원을 향해 자연스레 뻗어나온 듯한 입구가 편안함을 더한다.

대학로에 붉은 벽돌 건물들의 물결을 이루게 한 단초를 제공한 두 건물 마로니에공원에서 가장 크다는 마로니에

아르코 미술관 그는 멋진 건물보다 좋은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1층 가운데를 비워 마로니에 공원이 낙산을 향한 숨통을 열어주고자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가 얼마큼이나 종교건축물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하였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의 선구적인 행보만큼 논란이 되었던 건축물도 없지 않았다. 일본풍이라고 말이 많았던 옛 국립부여박물관이나 철거의 운명을 오갔던 세운상가, 시대의 어둠이 담겼던 남영동 대공분실 등은 그에게 많은 숙제를 남긴 건축물들이었다. 과연 그 건물들은 훗날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나는 종일 공간사옥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학로 벽돌 건물들의 붉은 물결을 지나 경동교회까지 그의 자취를 밟았다. 짧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가을의 정취에 취해 힘들지는 않았다. 벽돌로 둘러싸인 경동교회 측면 계단에 앉아 하루의 건축 답사를 마무리했다. 햇살이 눈부시다. 분명 지구 어디에나 태양에서부터 날아온 빛은 공평하게 내려앉을 것이다. 하지만 사막의 햇빛과 북극의 햇빛이 다른 느낌이듯 내가 만난 가을 저녁의 빛은 지금껏 알고 있던 여느 것과 또 달랐다. 햇살이 기울며 건물의 측면에 는 끊임없이 다른 모양의 그림자가 채워져 갔다. 그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벽돌 사이로 건축가 김수근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샘터 사옥 아르코 미술관 근처에 있는 샘터 사옥도 김수근이 중시했던 길과 사람에 대한 존중을 엿볼 수 있다. 이 건물 역시 1층의 일부를 비워 동행이 자유롭도록 만들었다. 외부는 담쟁이덩굴이 완벽하게 감싸고 있다. 김수근은 그의 벽돌 건축물들에 담쟁이를 올리는 것을 즐겨했기에 도면에도 화살표를 그어 놓고, '담생이 심기'라고 적어 놓았을 정도라고 한다. 그로 인해 건물들은 계절의 변화까지 함께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건축물의 본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도 든다.

예배당 입구는 건물 뒤편에 있다. 대문을 통해 교회 마당에 들어온 사람은 벽돌 건물을 따라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는 구조다. 즉 건물을 한 바퀴 돌며 벽돌길을 산책하게 되는 셈이다.

경동교회 기둥은 모두 20개로 기도를 하고 있는 손의 모습을 표현했다. 표면은 벽돌을 쪼개 깨진 면을 바깥으로 보이게 붙였다. 따라서 조금도 같은 모양의 벽돌이 없다. 이렇게 모인 벽돌들은 하나의 건물이 되어 무한한 표정을 만든다. 여름에는 담쟁이로 가득 덮여 또 다른 부뉘기를 자아낸다.

이장희
다양한 매체에 글과 그림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서울의 시간 을 그리다> <사연이 있는 나무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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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일러스트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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