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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선 올림픽이 열리고 베를린에선 장벽이 붕괴하다

서울에선 올림픽이 열리고 베를린에선 장벽이 붕괴하다>
2018.01

문화

역사 속 평행이론

서울에선 올림픽이 열리고 베를린에선 장벽이 붕괴하다

서울

38년 후 달라진 서울 위상에 세계가 놀라다

1988년 9월 17일, 2,000년 서울 역사를 바꾸는 상징적 장면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제24회 올림픽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전 세계인의 시선이 한반도를 향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38년 만의 일이었다. 세계인의 시선은 세월만큼이나, 아니 세월보다 훨씬 더 달라져 있었다. 이곳이 불과 수십 년 전 폐허 위에 전쟁 고아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그 서울 맞나? ‘개발 독재’ 아래 ‘불도저 시장’이 다져놓은 토대 위에 늘어선 빌딩 숲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른바 ‘3저(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현상’으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맞은 대한민국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 한 해 전에는 100만 서울 시민이 거리로 나온 ‘6월항쟁’으로 민주주의의 발전도 이룬 터였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올림픽 캐치프레이즈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당시 처음으로 인구 1,000만을 넘긴 서울은 세계를 향해 뻗어가는 메트로폴리스로 자리 잡았다. 600여 년 전 조선의 수도로 한반도의 중심 도시가 된 서울이 세계의 주요 도시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백제의 수도로 시작한 ‘서울 역사 2,000년의 일대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서울의 모습도 확연히 달라졌다. 올림픽에 대비해 2·3·4호선을 증설한 지하철은 1990년대 들어 5·6·7·8호선이 추가되었고, 새로운 교량과 고속도로, ‘예술의전당’ 같은 공공 건축물들이 건설되었다. 이와 더불어 들어선 수많은 고층 건물도 서울의 도심 지역과 강남 지역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놓았다. 1992년 1,097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서울의 인구는 2017년 3/4분기 현재 1,015만여 명으로 1,000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995년 강북구, 광진구, 금천구가 신설되고 광명시의 일부 지역이 금천구로 편입되면서 최대를 이룬 서울의 면적도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 하룻밤 자고 나면 새 건물이 들어서고, 인구가 늘고, 땅이 넓어지던 양적 성장을 지나 질적 발전의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재개발과 뉴타운’으로 상징되던 서울의 도시계획도 ‘도시 재생과 마을 만들기’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

사회주의 몰락과 냉전 시대 종말, 새로운 장을 고하다

서울이 올림픽을 발판 삼아 세계 속으로 도약하던 무렵, 세계는 ‘사회주의 몰락과 냉전 시대 종말’이라는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1989년 일어난 베를린장벽 붕괴다. 1961년 동독 정권이 세운 베를린장벽은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고, 이웃 나라 폴란드의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베를린장벽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1989년 9월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는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다급해진 동독 정권이 소련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마침내 11월 9일, 망치와 해머를 든 시민들이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베를린장벽을 지키고 있던 동독 국경 수비대원들은 불도저와 크레인까지 몰고 나온 어마어마한 인파를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렇게 베를린장벽은 무너져 내렸고, 이듬해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다. 그 뒤를 이어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세계사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구완회(작가)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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