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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 낙원상가가 나이 드는 법

쉰 살 낙원상가가 나이 드는 법>
2016.10

문화

문화 소식

서울형 도시 재생 지역을 가다 ⑨ 세계 최대의 악기 상가

쉰 살 낙원상가가 나이 드는 법

매달 도시 재생 지역을 찾아가 역사,문화자원, 사는모습, 주민이야기, 도시 재새 활동등을 소개합니다.

악기 상가로 대표되는 낙원상가는 예나 지금이나 음악인들의 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악기를 구입하거나 수리하기 위해 혹은 정보를 교류하기 위해 수많은 음악인이 들락거린다.
그런데 어쩌다 서울 한복판에 악기점이 들어서고 딴따라가 모여들게 됐을까?

 

1,000원짜리 트라이앵글부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악기까지 없는 악기가 없다.

4층에는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이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를 재상영한다.


역사는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낙원동, 익선동, 인사동 등 종로 일대는 조선 시대에 술집과 기방 같은 여흥 문화가 자리하던 곳이다. 이런 문화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 유명 사교 클럽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연예인과 음악인이 오가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비틀스와 트윈폴리오 등의 영향으로 밴드와 통기타 음악이 붐을 이루면서 악사가 늘어났고, 더불어 악기 수요가 많아졌다. 악기 상점이 종로2~3가 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났고, 낙원상가가 지어지면서 이들 상점이 넓고 쾌적한 이곳으로 이주했다. 원래 낙원상가는 양품점, 가구점, 식료품점 등이 대부분이었는데 악기 상점이 주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래서 2~3층은 ‘낙원악기상가’로 불린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는 2층에서 4층까지 300곳이 넘는 악기상이 입점해 있어서 ‘세계 최대 악기 상가’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어요. 또 악사들의 인력시장이기도 했지요. 즉석에서 오디션이 열렸고, 여기서 뽑힌 악사들은 미8군이나 지방의 클럽, 카바레, 나이트클럽 등의 무대에 올랐어요.”
1974년부터 이곳에서 플루트 전문점인 신광악기점을 운영하고 있는 지병옥 씨는 1970~80년대 낙원상가는 악사들의 천국이었다고 회상한다. 낙원상가에는 지병옥 씨처럼 수십 년째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많다. 20년은 기본으로 10년 정도 된 사람은 명함도 못 내민다고. 그런 장인들의 터전이지만 노래방이 등장하고 전자음악이 유행하면서 낙원상가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1998년 외환 위기 때는 상가를 떠난 상인도 많았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버텨온 낙원상가에 재개발 열풍이 불어닥쳤다. 2000년대 ‘도심 재창조’ 명목으로 철거 위기를 맞은 것. 하지만 건물의 안전 진단을 실시한 결과, 앞으로 100년은 끄떡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은 물론 상인과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철거를 면할 수 있었다.

“이 튼튼한 건물을 싹 쓸어버리고 새로 짓겠대요. 그러고는 우리더러 외곽으로 나가래. 그러니 누가 찬성하겠어요. 우리 보금자리를 뺏겠다는데.” 기타 수리 장인인 세영악기 이세문 씨는 “전통을 무시하는 재개발 광풍에서 비켜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낙원상가는 악기 상인들이 지켜낸 유산”이라고 자긍심을 보였다.

낙원의 고수

빨래판으로도 기타를 만들어요세영악기 이세문 씨

“형님이 기타 공장을 했어요. 그걸 도와주다 기타를 만들게 됐죠.낙원상가에는 1986년에 들어왔어요. 기타 만드는 것에서 수리로 업종을 바꿨죠. 세고비아나 삼익악기에서 대량생산하기 때문에작은 기타 공장은 줄줄이 문을 닫았거든요. 그 후 30년 동안 줄곧 기타 수리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명한 기타리스트는 다 단골이에요. 신중현, 김태원, 손무현, 김종진 등 셀 수도 없죠. 요즘은 기타를 배우려는 사람이 적어 아쉬워요. 2011년 KBS <생활의 달인>에 기타 달인으로 출연했는데 대야, 바가지, 빨래판 같은 걸로 기타를 만들었어요. 요즘도 간혹 낙원상가 홍보차 이런 걸로 기타를 만드는데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더군요. 남대문에는 확대경을 놓고 아직도 시계 수리를 하시는 90세 넘은 시계 수리 장인이 계시대요. 그분만큼은 아니더라도 힘이 있을 때까지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지하상가에는 음식점, 신발 가게, 잡화점 등이 성업 중이다.



도로 위에 세워진 주상 복합 건물, 낙원빌딩

1968년 지은 낙원상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지상에 종로와 율곡로를 잇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만들고 그 위에 주상 복합 건물을 올렸다. 지하는 재래시장인 지하상가, 2∼3층은 악기 상가인 낙원악기상가, 4층은 허리우드극장, 5층은 사무실, 6~15층은 낙원아파트가 들어섰다. 이 건물의 원래 이름은 ‘낙원삘’. 그러나 지금은 통상 낙원상가로 불린다. 외관은 낡았지만 건물 내부는 깔끔하고 단정하다. 특히 아파트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계단의 황동 난간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벽과 바닥도 깨끗하다. 9층부터 15층까지 수직으로 뚫린 중정은 아파트 내부를 밝고 조용하게 만든다. 서울에서 제일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에서 느끼는 고요와 평화. 이곳에 있으면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 느낌이 든다. 중정에 거대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건물을 지을 때 작업자가 새겼다고 한다. 소박한 솜씨지만 품위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6층에는 종로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옥상도 있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만든 텃밭과 장독대, 빨랫줄에서는 정과 여유가 느껴진다.

“한 20년 살았는데 엄청 좋아요. 교통 편하지, 건물 튼튼하지, 옥상 넓지. 처음 지었을 때는 서울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였어요. 맨션이잖아, 맨션.”
옥상에서 이웃집 사람들과 고춧잎을 따고 있던 이순복 씨는 당시 최고의 아파트를 지칭하던 ‘맨션’을 강조하며, 누구든 한번 이사 오면 떠날 줄 모르는 곳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낙원의 예술인

낙원상가의 가치를 구현하고 싶어요설치미술가 이원호 씨

지난봄에 ‘낙원의 뚬모’ 프로젝트를 하면서 낙원상가를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봤어요.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활력 있고 매력이 넘쳤죠. 상인들 모두 “이 작업을 통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상인들의 캐리커처 120점과 상점 영수증으로 ‘미소 샹들리에’를 만들었죠. 지금도 2층에 전시돼 있는데, 비록 공간은 협소하지만 상인들이 이 작품을 보며 즐거워하셔서 만족합니다. 제 작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작품을 통해 세상을 읽는 것입니다. 노숙자들의 종이 박스에 집이라는 개념을 부여한 ‘부(浮)부동산’ 프로젝트도 그렇고, 낙원상가 상인들의 손을 통해 살아온 삶의 초상을 보여주는 ‘복작복작 예술로, 낙원의 고수’ 프로젝트도 그렇습니다. 낙원상가와 그 주변은 이런 제 예술 활동에 많은 영감과 소재를 주지요. 아마도 이곳에서 더 많은 작업을 할 것 같습니다.

아파트 6층에 있는 옥상. 종로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주민들이 일군 텃밭, 빨랫줄, 장독대가 인상적이다.

낙원의 젊은이

낙원상가 재생, 뭣이 중헌디?신택리지 활동가 정재훈 씨

돈화문로와 낙원상가 일대의 도시 재생 활성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역사 문화자원을 활용하면서 종로3가라는 중심 시가지의 장점을 살린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을 주민들과 의논하고 조사하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7월부터 꾸준히 작업하고 있는데, 상당히 호의적이세요. 동네에 대한 자부심도 크고요. 지난 8월에 낙원상가ㆍ돈화문로일대 ‘도시 재생을 위한 주민 공모’를 했는데 좋은 의견이 많았습니다. 도시 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거든요. 낙원상가의 멋진 부활, 기대해주세요.

낙원상가 부활의 노래

그럼에도 일반 시민에게 비치는 낙원상가는 종로2가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남루하고 쇠락한 추억의 장소이다. 클럽에서 쓰는 디제잉 장비, 홈 레코딩 장비를 파는 업체가 부쩍 늘었지만 예전의 활력만 못하다. 그나마 4층에 자리한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을 찾는 중·장년층이 많아 그들을 상대하는 지하상가 음식점과 실버 세대를 상대하는 아코디언이나 우쿨렐레 가게가 쏠쏠한 재미를 보는 정도. 실버영화관의 전신은 허리우드극장이다.

낙원상가는 다양한 문화 활동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민들이 기부한 악기를 낙원상가의 기술력으로 소생시키는 중고 악기 기부 캠페인, 결혼식이나 은혼식 같은 특별한 순간에 악기 연주를 선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반려 악기 캠페인,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컬·기타 무료 강습’ 지원, 4층 멋진 하늘에서의 기타 공연과 야외 시네마 등이 그것이다. 또 서울문화재단 지원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 창작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지난 9월 23~24일에는 ‘복작복작 예술로, 낙원의 고수’를 진행했는데, 온 동네를 문화 예술로 채우고자 하는 서울문화재단 행사 중 하나로, 낙원상가에서는 악기고수들과 악기 만들기, 상인들의 손을 주제로 한 사진 전시회, 낙원상가 투어 등이 펼쳐졌다. 10월에는 ‘복작복작 예술로, 낙원의 고수’ 이외에도 ‘세계문자심포지아 2016 행랑’ 등의 공연이 펼쳐진다.

3~4층에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는 것도 제법 재미나다.
낙원상가에서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다양한 문화 예술 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복작복작 예술로, 낙원의 고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낙원상가 투어


설치미술가 이원호가 상점 영수증으로 만든 ‘미소 샹들리에’

낙원상가 유강호 번영회장은 “꼭 악기를 사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문화 예술 공간으로 부담 없이 낙원상가를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문화유산으로서의 낙원상가의 존재감을 정립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낙원상가의 이러한 노력에 서울시에서도 힘을 보태주고 있다. 낙원상가를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는 한편, 옥상을 공원화하고 열린 무대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낙원상가 하부와 연결되는 돈화문로11길은 자유롭게 버스킹이 열리는 대표적인 음악 거리로 조성할 예정이다.

낙원상가를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샅샅이 둘러보고, 다양한 악기도 구경하고, 악기 상가의 터줏대감인 장인들과 아파트 주민들을 만나 50년 역사를 듣고 나니 낙원상가가 다시 보였다. 낙원상가는 악기만 파는 쇠락한 상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음악 근현대사를 생생히 보여주는 박물관이자 서울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었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공간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니,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 홍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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