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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숲길에서 뜨거운 바위를 읽는다

서늘한 숲길에서 뜨거운 바위를 읽는다>
2015.06

여행

서울 둘레길

둘레길 문화읽기 ② 수락·불암산 코스 _ 불암산 둘레길

서늘한 숲길에서 뜨거운 바위를 읽는다

서울둘레길 수락.불암산 코스 1-2구간(당고개역 ~ 화랑대역)

5월호부터 서울둘레길의 주요 코스를 기획.연재합니다.

둘레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불암산

철쭉동산에서 길과 길이 만나다 철쭉동산에 있는 둘레길 스템프 우체통




서울둘레길의 불암산 구간은 당고개역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에 당고개라는 지명은 몇 개나 될까. &;서울의 고개;라는 책에 소개된 당고개는 노원구, 용산구, 종로구 세 곳이지만 서낭당고개, 당재, 사당이고개처럼 비슷한 뜻의 다른 이름도 많이 있다. 높고 험한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사람에게는 내딛는 걸음마다 안녕을 비는 마음이 늘 함께했다. 옛날 당고개를 오가던 사람들도 산짐승이 무서워 돌멩이 하나씩 손에 쥐고 조마조마하며 걸어야 했다. 무사히 고개를 지나고 나면 비로소 안심하며 손에 든 돌멩이를 던져놓았고, 그렇게 쌓인 돌무덤들 곁에 성황당이 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간절한 마음 닿는 곳이라면 사당이 있든 없든 어디든 사원이고 신전이 아닐까.

당고개역에서 상계동 골목길로 들어선다. 전신주 높은 곳에 붙은 둘레길 표지판을 따라 미로 찾기 하듯 골목을 지나면 산기슭에 다다른다. 불암산 철쭉동산에서 둘레길의 두 번째 빨간 우체통이 기다리고 있다. 철쭉은 지고 초록만 무성한 동산 위에서 수락산 둘레길 보조구간인 덕릉고개길과 불암산 둘레길이 만난다. 덕릉고개는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수락산과 불암산을 잇는다.


덕릉고개와 당고개의 전설을 넘어 숲으로 수락산 덕릉고개에서 철쭉동산으로 오는 길




당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산짐승을 두려워했다면 덕릉고개를 넘는 사람들은 권력의 눈치를 봐야 했다. 고개 너머에 있는 덕흥대원군의 묘 때문이다. 덕흥군은 중종의 아홉 번째아들이자 선조의 아버지로 아들이 왕이 된 뒤에 대원군이 되었다. 선조는 아비의 무덤이라도 왕릉으로 격상시키고 싶었지만 조정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자 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들어오는 장사치들이 덕흥군의 능을 지나왔다고 말해야만 그들의 숯과 장작을 후하게 쳐서 사들이며 환대하게끔 했다. 발 없는 말도 천리를 가는 세상에 잇속밝은 장사꾼들에 의해 묘가 능으로 불리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왕의 아들이고 아버지였으나 정작 자신은 왕위에 오르지 못한 사내는 결국 소문으로만 능의 주인이 된 것이다.

당고개에도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사내로부터 비롯된 전설이 있다. 한밤중에 고개에서 봉변을 당하고 미륵불 품에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남매가 있었는데, 덕릉고개 전설보다 200년쯤 뒤의 이야기다. 사도세자를 모시던 궁녀가 궐 밖으로 나와 숨어 사는 동안 고아 남매의 양어머니가 되었는데, 그녀를 겁탈하려던 사람을 사도세자의 혼령이 물리치고 밤새 미륵불이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 미륵당을 세웠고, 훗날 양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남매에게 나라에서 효자 정문을 세웠다. 지금은 미륵당도 정문도 간데없고, 당고개는 서울지하철 4호선의 시종착역으로만 남아 있다.

뜨거운 바위에 기대는 불암산의 염원들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넓적바위




불암산은 산마루의 화강암이 승려들의 모자인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이라고 해서 불린 이름이다. 하지만 산 너머 남양주 별내면 산자락에 있는 불암사 일주문에는 하늘의 보배, 천보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남아 있다. 또한 붓 바위란 뜻의 필암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풍수에서는 먹과 벼루, 붓 등을 지명에 붙여 지세를 보완해왔는데 산 아래 월계동 벼루마을에서 유래한 연촌, 둘레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먹골과 묵동의 이름도 같은 연유로 생긴 것이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모두가 불암산의 독특한 화강암 바위로부터 생겨난 것만은 분명하다.

화강암은 지구의 심장 가까이에서 솟구쳐 오른 뜨거운 속살이 하늘의 찬 기운과 만나 굳어진 바위다. 이웃한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이 모두 같은 시기에 분출한 마그마로부 터 생겨났는데, 그중에서 가장 낮은 불암산 산마루의 정교하고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은 남다른 품새를 자랑한다.

불암산이 낳은 명품 바위는 낮은 산자락 둘레길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정암사에서 학도암까지 이어진 숲에 있는 남근바위와 넓적바위가 그것이다. 우선 정암사 들머리 오른편 길가에서 나무 계단을 오르면 하늘을 향해 곧추 서 있는 남근석을 만난다. 남근바위에서 고즈넉한 숲 속으로 길을 이으면 큰 나무 뒤에 숨은 듯 자태를 드러내는 둥그스름한 바위에 다다른다.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을 법한 불두덩 모양의 여근석이 넓적바위다. 두 바위 모두 바위 둘레에 금줄처럼 나무 울타리를 쳐 놓았는데,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불암산을 등지고 이웃한 형제의 산을 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봉산과 수락산




남근바위와 넓적바위 중간 즈음 배우 최불암의 시비가 있는 곳에는 불암산 둘레길 전망대가 있다. 수락산 둘레길의 전망대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에 있어 숨이 차게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불암산에는 낮은 자리에 망루를 세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나무 계단을 빙빙 돌아 2층으로 된 망루 위에 올라서면 눈앞으로 쏟아질 듯 가까운 불암산 바위에 압도당한다.

그 우람한 바위들을 등지고 서면 이웃한 수락산과 도봉산에서 북한산까지 한 시절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뜨거운 마그마의 형제들이 한눈에 보인다. 서울의 동북쪽을 에둘러 지키고 서 있는 굳건한 산줄기들 때문에 그 아랫마을이 더욱 안온하게 느껴진다. 특히 도봉산은 철쭉동산에서 출발 할 때는 수락산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전망대에 와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니 더욱 반갑다. 불암산 정상은 북한산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어서 산길을 걷는 동안에는 도봉산이 줄곧 수락산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신동이라 불리던 일곱 살 때 지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라는 시구가 저절로 떠오르는 풍경이다.

학이 머물던 자리에서 마애불의 눈으로 불암문고에서 등산객들이 책을 보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




불암산 둘레길은 수락산과 비교하면 한결 완만하다. 순한 길 위에 열린 책장을 만들어 놓은 숲 속 북카페도 있다. 짐을 풀고 느긋하게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잠시 평상에 앉아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라도 가슴에 담아보면 어떨까. 불암산도 한 권의 뜨거운 책이라면 그 속에 책갈피처럼 펼쳐진 숲과 오솔길의 오래된 이야기에 귀를 열어본다.

만일 좀처럼 땀을 흘리지 못해 아쉽다면 둘레길에서 조금만 가파른 길을 올라 학도암에 들러보자. 학이 날아와 머물렀다는 수려한 풍광을 깎아지른 절벽에 앉은 마애불의 시선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학도암은 조선 인조 때 세워진 절로, 연꽃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거구의 마애관음보살좌상을 1870년(고종 7년)에 명성황후가 조성했다는 기록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임금이 후궁에게 얻은 첫아들을 총애하던 때 자식이 없던 왕비의 염원으로 새긴 불상이니, 이래 저래 불암산 바위가 품은 사연은 뜨겁기만 하다. 바위에 기댄 마음이 불심이든 욕심이든 무겁게 느껴진다면, 다 내려놓고 맨발로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 길 끝 자락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뉴월 둘레길의 황톳길 위에는 아카시아와 이팝나무 흰 꽃들이 흩뿌려진다.

불암산 둘레길은 공릉산 백세문을 통과하면 비로소 긴 숲의 터널에서 빠져나온다. 서울에 편입되기 전 양주군 공덕리였던 마을과 산 아래 태릉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이름이 공릉동이다. 백세문은 그 마을과 산 사이의 일주문이다. 산문 밖에는 여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김선미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책으로 쓰고 있다. <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외롭거든 산으로 가라>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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