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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선택한 서울의 주산(主山)을 밟다 '백악산'

정도전이 선택한 서울의 주산(主山)을 밟다 '백악산'>
2014.05

여행

서울의 산

정도전이 선택한 서울의 주산(主山)을 밟다 '백악산'


6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한양도성은 서울을 둘러싼 네 개의 산을 따라 축조되었다. 그 중에서도 백악산 구간은 걷기 좋은 길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접근이 용이한 데다 오르기 어렵지 않고, 세종로와 경복궁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맞은편 북한산의 멋진 풍광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5월의 서울을 실컷 감상할 수 있는 그곳. 북악산이라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한 백악산에 올라보자

서울의 시작과 끝을 찾아 오르는 길
‘조선의 설계자’로 불리는 삼봉 정도전. 한양에 도읍을 정한 그는 ‘군자는 남쪽을 향해 정치해야 한다’는 유교 사상에 근거해 한양도성의 주산(主山)을 백악산으로 정했다. 그리고 백악산 정상인 백악마루에서부터 동쪽으로 일주하면서 천(天), 지(地), 현(玄), 황(黃)의 천자문 순서로 글자를 붙여 나갔다. 유교적 가르침의 시작과 끝이 백악산에 있는 셈이다.조선시대 백악산은 왕궁 및 관청이 가깝고 경치가 빼어났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가 많이 살았으며, 문인과 화가들도 이 일대를 그림과 시문으로 칭송했다. 이런 인기는 현재도 마찬가지.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 중 추천 산행 코스로 백악산을 꼽는 이가 많다.

접근성이 뛰어난 점도 여기에 한몫한다.백악산은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쉽게 산 입구에 닿을 수 있다. 보통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코스는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와 종로 08번 버스를 타고 명륜3가에서 내려 와룡공원에서 출발하는 코스다. 주말이면 가족, 친구 단위로 찾아온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나와 종로 02번 버스를 타고 성균관대 후문을 지나 와룡공원으로 오르는 방법도 있다. 만약 정상인 백악마루에 빨리 오르고 싶다면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지선버스 7212번이나 1020번을 타고 와룡공원과 정반대인 창의문 방향부터 시작하는 코스를 잡으면 된다. 자가용 이용자는 삼청터널을 지나 삼청각 인근에 차를 대고 숙정문 안내소부터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별다른 장비 없이 가볍게 산행을 즐기기 좋은 백악산은 해발 고도 342m의 높지 않은 산이다. 덕분에 등산이 익숙지 않은 사람도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1968년 1 ·21사태(일명 김신조 사건) 후 한동안 폐쇄되었다 다시 개방된 덕분에 코스도 많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출발 입구만 세 곳일 뿐 주요한 산행 코스는 똑같다. 어느 방향에서 올라도 서울의 절경과 등산의 즐거움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굽이굽이 성곽 따라 만나는 역사의 흔적

세 곳의 출발 입구 중 와룡공원에서 출발하는 말바위 안내소를 택했다. 백악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안내소에서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때 신분증이 필요하니 꼭 챙기도록 하자.말바위 안내소를 지나 오르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성곽길 코스가 나타난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사적 제10호 한양도성의 북문인 숙정문. 서울 사대문 중 정북에 위치한 숙정문은 남문인 숭례문과 대비된다. 조선 개국 일등 공신인 정도전은 한양도성을 설계하면서 숭례문을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로 지었고, 숙정문은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만들었다. 한양도성을 내려다보는 숙정문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풍수지리상으로도 숙정문은 숭례문과 함께 한양도성의 중심인 경복궁의 양팔이 된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지만 문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다. 그래도 관광객들은 백악산 산행의 첫 번째 촬영 포인트인 숙정문을 놓치지 않는다. 웅장한 맛은 없지만 숙정문 건너편으로 보이는 삼청각과 그 일대의 풍광이 일품이기 때문이다.숙정문을 뒤로하고 성곽길을 오르면 잠시 후 왼편으로 촛대바위가 나타난다. 촛대바위 위에는 지석이 놓여 있는데, 이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기간 민족 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쇠 말뚝이 박혔던 곳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둔 것이다. 촛대바위에 오르면 멀리 경복궁과 도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풍경에 반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는 박재기 씨는 “모처럼초여름 날씨라고 해서 친구들과 같이 왔는데, 가슴이 탁트인 것같이 기분이 좋다.”고 말하며, “미세 먼지 때문에파란 하늘을 볼 수 없는 것이 좀 아쉬워서 다음에 한 번 더올라야겠다.”고 덧붙였다. 촛대바위에서 240m가량을 더 오르면 백악마루에서 인왕산에 이르는 성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곡장(曲墻)이 나타난다. 곡장은 성곽을 돌출시켜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대비하는 구조를 가리키는 말로 흡사 꿩의 머리처럼 튀어나왔다 해서 ‘치성(雉城)’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이곳은 수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문수봉, 보현봉 등 북한산의 장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 북한산 아래로 펼쳐지는 평창동 일대도 백악산에 오른 이라면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날씨가 아주 맑은 날이면 멀리 상암동 하늘공원까지 보인다.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면 곡장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다시 성곽길을 오르자. 조금만 더 가면 백악산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청운대(靑雲臺)가 있기 때문이다. 청운대는 서울에서 가장 조망권이 좋은 곳이다. 남으로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 세종로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으로는 북한산의 다른 여러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자유롭지 못하다. 청와대는 물론 백악산 곳곳의 초소가 보이기 때문이다.실제로 백악산은 오래전 무장 공비 김신조 일당이 침투했던 곳으로, 한동안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기도 했다. 총탄 자국이 남아있는 청운대 근처 소나무는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케 한다. 그만큼 통제가 삼엄하므로 아름다운 풍경은 두 눈에만 가득 담아야 한다. 청운대를 지나면 드디어 백악산 정상 ‘백악마루’다. 커다란 바위와 정상을 표시하는 지석이 등산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백악마루에서는 좌우로 능선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진 성곽길의 웅장한 모습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말바위 안내소 쪽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성곽길은 힘들게 오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을 만큼 절경이다.



풍경으로 대답하는 과묵한 산

백악마루에서 창의문이 있는 곳까지 백악산의 마지막 구간이 이어진다. 1.5km에 달하는 이 구간은 백악산 코스에서 가장 긴 구간이기도 하다. 길이도 제법 되지만 상당히 가팔라서 오르내릴 때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구간 중간에 북악 쉼터와 돌고래 쉼터가 각각 마련되어 있어 등산객들의 피난처로 쓰인다. 만약 출발지를 말바위 안내소가 아닌 창의문 방향으로 잡았다면 이 계단길을 오르막으로 타게 된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출발한 것보다 정상까지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금방 백악마루에 닿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오르막이 녹록지 않아 말바위 쪽보다 등산객이 적은 편이다. 조심조심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종착지인 창의문이 저 멀리 보인다.

내리막길을 어느 정도 내려오고 나면 꼭 뒤를 돌아보자. 말없이 펼쳐진 백악마루의 웅장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내리막 구간만 잘 내려오면 창의문까지 평탄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봄이면 벚꽃으로,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들어 산행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한다.백악산은 ‘악’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 치고는 귀엽게 느껴질 만큼 산행이 쉽다. 가파른 내리막길만 조심하면 크게 위험한 곳도 없다. 다만 백악산 주변에 군사보호지역이나 시설이 많아 통행에 제약이 따르고 사진 촬영이 크게 제한되는 점은 아쉽다. 대신 그만큼 산을 오래 즐기게 되는 점이 매력이다.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다른 산들과 달리 백악산 정상인 백악마루에서는 여유롭게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빼어난 산세, 수도 서울의 웅장한 모습,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굳센 기개, 역사가 묻어나는 성곽길의 여운 등 작지만 단단한 백악산만의 매력에 젖게 된다.시원한 봄바람을 기대하며 떠나는 5월의 산행. 멀리 갈 필요 없이 백악산에 올라보자. 서울이 왜 천년 도읍지인지, 정도전이 왜 백악산을 주산(主山)으로 정했는지, 백악산 성곽길에서 바라본 풍경이 답을 말해줄 것이다.





글 최대규 사진 나영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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