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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 예술의 보금자리, 연희동+연남동

새로운 문화 예술의 보금자리, 연희동+연남동>
2013.11

여행

서울 골목길 산책

새로운 문화 예술의 보금자리, 연희동+연남동

“홍대는 시끄럽고 북적대서 힘들어요 / 10분만 걸어와요 한적한 우리 동네로 / 어서 오세요 연남동에요 / 연남동으로 놀러 오세요 / 값싸고 맛있고 나도 있고 술도 있고 / 그간 지낸 얘기하며 밤새워봐요 / 노래 불러줄게요 놀러 오세요”
(연남동 덤앤더머의 ‘연남동으로 놀러 오세요’ 가사 중)

요즘 연희동과 연남동이 뜨고 있습니다. 특히 연남동은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아날로그적 감성이 충만한 동네로 부각되고 있죠. 전직 대통령들이 사는 부유한 연희동과 차이나타운, 기사식당 골목으로 기억되던 연남동에 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조용한 동네에 예술과 문화가 스며들면서 서로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하지만 본차이나와 막사발처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연희동과 연남동을 찾아가봅니다.



생활과 예술이 공존하는 연희동


화교 학교와 유명한 중국 음식점들이 있고 으리으리한 주택들이 늘어서 있으나 전직 대통령들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동네, 공기마저 회색빛으로 묵직하게 가라앉은 곳.
연희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연희동은 1970년대 초부터 주택가로 개발하기 시작해 평지에는 고급 주택이, 고지대에는 시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화여대와 연세대가 인근에 있어 교수, 선교사, 외국인, 정치인이 많이 거주했다. 또 명동 중국대사관 안에 있던 한성화교중·고등학교가 1969년 연희동으로 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화교 마을이 형성됐다. 2007년, 서울시는 이곳을 차이나타운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주변 슬럼화와 교통난 등을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해 차이나타운 조성은 공식적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조용하게 정체돼 있던 연희동에 요즘 들어 활기가 돌고 있다. 평범한 주택가 골목을 따라 생겨난 카페와 레스토랑, 문화 공간을 찾아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희동에 문화의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은 문인들을 위한 창작 공간인 ‘연희문학창작촌’. 주택가에 갑자기 소나무 숲과 감나무, 밤나무 등 과실수 숲이 나타난다. 숲 사이에 펜션 같은 집필실 4개 동이 있다. 숲 뒤편으로 나무 울타리가 길게 쳐져 있는데, 그 너머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이다. 울타리가 높고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까치발을 디뎌도 대통령의 집은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철통보안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은 단순히 집필실 대여뿐 아니라 낭독 극장, 작가와의 대화, 일반인을 위한 시·소설 창작 교실, 문학 축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 주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50년 화교 역사가 그대로 담긴 동네


연희동의 문화 예술 공간과 카페는 ‘사러가 쇼핑센터’ 주위에 포진해 있다. 골목을 걷다가 ‘여기다’ 싶은 곳에 들어가면 된다.
분위기와 맛 모두 수준급이어서 어딜 가도 후회하지 않는다.

각종 예술 잡지와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더 미디엄’,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구입도 할 수 있는 갤러리 카페 ‘페인터스 머그’, 일인용 테이블이 특색 있는 카페 ‘129-11’, 작은 테라스에 앉아 한적한 동네를 내려다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좋은 카페 ‘시나클’, 블루베리 팬케이크와 브런치가 맛있는 민트색 카페 ‘뱅센느’, 앙증맞은 인테리어와 귀여운 소품이 사랑스러운 카페 ‘코미치’, 매콤한 마른 오징어무침을 넣은 오징어김밥으로 유명한 ‘연희김밥’ 등이 네티즌을 통해 입소문이 난 곳이다.

사러가 쇼핑센터 앞길인 ‘연희맛길’에는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중국 음식점, 한식집이 줄지어 있다. 만두와 짬뽕으로 유명한 ‘이화원’, 바삭한 베이징 덕 요리가 일품인 ‘진북경’, 해산물 요리 전문점 ‘해지연’, 바삭하게 튀긴 군만두나 쫄깃한 면발의 짜장면이 유명한 ‘이품’, 중국 소품으로 화려하게 꾸민 ‘진보’ 같은 중국 음식점과 사골 국물이 진한 ‘연희동칼국수’, 들깨를 갈아 넣어 닭 냄새가 덜 나는 ‘지리산삼계탕’, 시래기와 채소를 넣어 만든 순대로 끓인 ‘백암왕순대’ 등이 유명하다. ‘연희맛 길’로 들어서는 이정표이기도 한 ‘피터팬제과점’은 1978년부터 연희동에서 수제 빵을 만들어온 빵집. 특히 달콤하고 구수한 단팥이 듬뿍 든 단팥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연남동, 응답하라 1980


연희동에는 격식을 차리고 먹는 고급 중국 음식점이 많은 반면, 연남동에는 부담 없이 들러 편하게 먹고 오는 중국집이 많다. 동교로 기사식당촌 끝에서 연희동 삼거리 뒷길까지 이어지는 길에 있는데, 중국 본토에서 먹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만두가 맛있는 ‘하하’와 ‘홍복’, 오향장계로 유명한 ‘향미’, 쉐라톤 워커힐 호텔과 타워 호텔 중식당에서 조리장으로 일했던 사람이 차린 ‘구무전’, 짬뽕 맛이 끝내주는 ‘매화’ 등이 유명하다.

중국 음식점을 통해 알 수 있듯 연희동과 연남동은 연희교차로 굴다리를 사이에 두고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좀 더 서민스럽다. 그래서 더 정겹고 익숙하다. 집들도 나지막하고 아담하다. 아파트보다 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이 많은 까닭이다. 골목은 숨바꼭질하기 딱 좋게 구불구불 미로다. 1980년대 동네 모습 그대로. 어디선가 ‘못 찾겠다 꾀꼬리’ 소리가 들릴 것 같아 귀를 기울여본다. 하지만 지금은 2013년, 아이들은 학원에서 정답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홍대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홍대와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있는데, 바로 동진시장 쪽과 길공원길 쪽입니다.”
‘연남동 창조 환경 특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인 추계 예술대 김영주 씨는 이곳을 ‘배고픈 예술가들의 피난처’라고 말한다.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연남동의 한적한 분위기와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좋아 찾아드는 예술가도 많다. 연남동에 자리 잡은 문화 예술가들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박성미, 가수 조정치, 인디밴드 ‘연남동 덤앤더머’를 비롯해 화가, 타악기 연주자, 도예가, 공예가, 디자이너, 건축가 등 분야도 다양하다.
문화 예술가들이 모이다 보니 카페나 공방, 문화 공간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모던하거나 세련된 모습이 아니라 빈티지한 느낌을 살려 오래된 동네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민들의 삶에 녹아들려는 나름의 노력이다. 이 또한 연희동과 다른 모습이다.



좁은 골목길에 들어선 소박한 카페와 상점들


연남동 탐험은 길공원길에서부터 시작한다. 길공원길이 있는 연남동 239-1번지 일대는 오세훈 시장 때 휴먼타운으로 지정 되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주민들은 낡은 것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재건축 대신 마을 재생을 선택했어요. 거미줄처럼 얽힌 전선과 전봇대를 지하에 묻고 도로를 새로 깔았어요. CCTV도 늘리고 가로등도 더 달았습니다. 담장을 허물어 이웃과 공간을 함께 사용하도록 했죠.”
연남동 도시 개발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건축 디자이너이자 ‘카페 디자인 이알’ 주인인 장용해 씨는 ‘철거 없는 마을 정비’로 낡고 지저분한 동네가 쾌적하고 안전한 동네로 변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길을 따라 작은 카페와 작업실, 공방 등이 들어서고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도 풍긴다.

연남동에서 가장 핫한 동진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상점들이 떠나고 흔적만 남아 있는 시장의 좁은 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섰다. 이 골목을 핫 플레이스로 만든 사람은 커피 상점 ‘이심’의 최진식 사장. 바리스타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바리스타로 홍대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다가 조용한 곳을 찾아 연남동으로 왔다. 단골만 찾아오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주변에 다른 가게들이 생겨나고 입소문이 나면서 번잡해졌다고.
맞은편의 카레 전문점 ‘히메지’ 역시 홍대에서 인도 소품을 팔다가 연남동에 정착한 곳으로 가수 조정치의 단골로 알려져 있다. ‘착한 커피’로 유명한 ‘리브레’는 사장이 직접 커피 생산지를 방문해 직거래로 사 온 원두로 커피를 내린다. 일본식 가정 음식을 선보이는 ‘40키친’도 가볼 만한 곳. 동진시장에 최초로 진입한 ‘플레이스 막’은 새롭고 흥미로운 소재의 실험적인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전시 공간이다. 골목을 돌아가면 컬러풀한 책방인 ‘책방 피노키오’가 나온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귀한 그래픽 노블과 그림책들을 구비하고 있다. 동진시장 앞 도로변에 자리 잡은 ‘시실리: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과 ‘한우포차 아리랑’은 음식 맛이 좋아 예술가, 미식가들이 많이 찾으면서 유명해졌다. ‘툭툭 누들타이’는 재료와 향신료를 태국산으로 구비해 서울에서 가장 ‘태국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언제까지나 지금 모습을 간직하길


“연남동이 이렇게 주목받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이에요. 사람이 많이 모이니 좋은 점도 있지만 기존 문화가 파괴될까 봐 걱정도 됩니다. 지금 모습을 오래도록 유지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연남동에서 살고 있는 ‘줌마네’의 최규정 씨 얘기다. ‘줌마네’는 글쓰기, 영화 만들기, 산책하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아줌마들이 내·외공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아줌마 커뮤니티다. ‘줌마네’는 주민들과 잘 어울리고 싶어 연말이면 작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민들을 초청하는데, 올해는 11월 14일 집 앞 골목에서 ‘감나무 아래 뜨거운 만남’이라는 골목 축제를 연다. 1년 동안 진행해온 프로그램을 갈무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주민과 함께하고자 한 것이다.

배고픈 홍대 예술가들과 한적함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들면서 새로운 문화 예술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는 연희동과 연남동. 아직까지는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삼청동처럼 북적북적 상업화되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 지금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조용한 곳을 찾아왔는데, 나 때문에 번잡한 동네가 되는 것 같다. 더 유명해지면 월세도 오를 것이고, 가난한 예술가들이나 가게 주인들은 또다시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할 것이다. 그게 제일 미안하다.” 커피 상점 ‘이심’ 주인장의 자조 섞인 걱정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 일러스트 문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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