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장에서 제일 먼저 보는 건 상인들의 표정이다. 그들에게 어떤 욕망이 보여야 좋은 시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욕망이란 시장의 힘이다. 좋은 물건을 확보하려는 욕망, 그 물건을 잘 팔려는 욕망이 있어야 진짜 시장이 아닌가 싶다. 수유시장에서 그 힘을 느꼈다.
수유시장은 시끄럽고(이것도 욕망과 관련된다), 밝았다. 사람이 많았으며, 물건이 넘쳤다. 그리고 깨끗했다. 물건이 얼마나 좋으냐면 요리사인 내가 반할 만큼 좋은 고등어가 지천으로 쌓여 있었다. 한 손(두 마리)에 1만3,000원짜리 고등어 자반을 골랐다. 고등어 표면이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싱싱하다는 뜻이다. 고등어는 크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서울에서 이렇게 크고 좋은 고등어를 본 게 퍽 오랜만이었다. 그러니 가격이 비싼 게 아니었다. 그 고등어로 찜도, 구이도 해먹었다.
전통시장의 핫플, 수유시장의 재탄생
수유시장은 1966년에 개설됐지만, 그 전에 이미 노점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골목 시장으로 처음 시장의 모습을 갖췄고, 점차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했다. 수유리는 서울 동북권의 핵심 거점이다. 서울의 입구다. 피란민도 많이 몰려왔고, 땅이 너르고 좋아서 전쟁 이후에는 값이 싼 주거지역으로 주목받았다.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생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근의 주요 도시들, 그러니까 의정부·양주·동두천·연천 일대에서도 이 시장으로 장을 보러 왔다. 그러다가 점차 지역별로 마트가 생기면서 수유시장의 유입 고객이 줄었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시장을 살리기 위해 상인들이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것이다. 1999년 수유시장의 부흥을 위해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는데, 그때 모금된 금액이 무려 15억 원이나 됐다. 여기에 시의 지원금이 더해져 현재의 수유시장으로 재탄생했다. 깨끗하고, 밝고,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사람이 몰려드는 그런 시장으로 말이다.
독특한 맛과 멋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다
수유시장은 종합 시장으로, 식품을 중심으로 여러 편의품 가게가 고루 모여 있다. 최근에는 맛집이 많다고 소문나면서 시장 방문객의 연령대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전통시장이 겪는 변화이기도 하다. 맛있는 음식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시장의 싱싱한 물건도 판다.
수유시장의 맛집에는 독특한 아이템이 많다. 우선 홍어무침이다. 홍어는 호남 지역에서 잔치를 치를 때 꼭 먹었던 음식 중 하나로, 수도권에서는 이 홍어회를 양념에 무쳐 먹었다. 어릴 적 잔치가 열리면 늘 홍어무침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친척 아주머니들 중에 홍어무침을 잘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마법 같은 손으로 홍어를 썰고 매운 양념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곤 했다. 홍어는 남쪽 바다뿐 아니라 인천 앞바다에서도 많이 잡혔고, 어종의 특성상 잘 상하지 않아 잔치에 쓰기 좋았던 것 같다. 물론 맛도 최고였으리라. 그 잔치 홍어가 시장으로 들어가서 수유시장의 명물이 됐다. 톡 쏘는 양념, 씹히는 질감이 일품이다. 잔치용으로 인근 주민들이 사가던 것이 점차 잔치와 상관없이 일상의 별미가 됐다. 이날 시장에서 우리가 들른 곳은 ‘은희홍어회’다.
하나 더! 어떤 전통시장이든 국밥집이 있고, 인기 있는 가게가 넘친다. 수유시장에는 서울 10대 순댓국이라고 불러도 될 ‘대중집’이라는 가게와 곰탕 명가 ‘옛곰탕집’이 있다. 농담이 아니다. 맛이 너무도 좋아서 취재팀은 포장을 부탁해 집에 가져갈 정도였다. 물 좋은 생선과 채소를 사고, 싸고 좋은 고기를 즉석에서 잘라 파는 정육점에도 가고, 맛있는 밥도 맛보고 싶다면 수유시장을 추천한다.
숨은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곳
전통시장의 숨은 맛과 멋은 선술집 골목에 있다. 광장시장과 같은 시내 대형 시장이든, 지역의 전통시장이든 늘 선술집 골목과 좌판이 있다. 나는 이 골목에서 한잔하는 것을 좋아한다. 시장마다 특별한 메뉴가 있다. 예를 들어 광장시장에 허파볶음과 빈대떡, 아바이순대 같은 음식이 있다면 수유시장은 정겨운 상호를 가진 ‘은진네’의 오징어 숙회가 빅 히트작이다. 이 집에서는 싱싱한 해물과 생선을 이용한 숙회, 조림, 볶음 등을 두루 낸다. 물론 인근의 다른 가게에서 전으로 한잔해도 좋다. 시장의 맛은 원래 분식이 책임졌다. 떡볶이와 어묵 말이다. 그런 맛을 수유시장이 외면할 리 없다. 그래서 ‘인아네분식’에서 분식도 먹었는데, 옛 생각에 들르는 단골들로 북적였다.
수유시장은 서울 시내에서 금세 닿는 곳에 위치해 있다. 서울 동부권이라면 지척이고, 강남에서도 40~50분이면 충분히 닿는다. 주말도 좋고, 평일에는 더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다. 잊지 마시라.
넓은 시장에 가득한 먹거리 수유시장 맛집
영혼까지 맑아지는 육수 ‘옛곰탕집’
맑은 국물에 부드러운 양지가 듬뿍 들어간 맑은 곰탕이 대표 메뉴다. 큰 솥에 정성 들여 끓인 곰탕 국물은 얼마나 맑은지 영혼까지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다. 따끈한 국물에 만 밥과 섞박지의 조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친절한 서비스는 기본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가성비까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가격 맑은 곰탕 7,000원 / 양지국밥 7,000원 / 평양물냉면 6,000원
새콤달콤한 맛에 중독되는 ‘은희홍어회’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어 다시 찾는 사람이 많은 이곳. 쫄깃한 홍어회와 감칠맛 나는 양념의 만남으로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아 택배 주문도 시작했다. 새콤달콤하게 무친 홍어회에 미나리의 향긋함이 더해져 더욱 인기가 좋다. 상호명을 바꿨음에도 사장님의 손맛은 그대로여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가격 홍어무침 1만 원(500g), 2만 원(1kg) / 홍어회 1만 원(한 팩)
저렴함에 한 번, 맛에 두 번 놀라는 ‘은진네’
선술집 골목에 자리한 이곳은 노포 맛집으로 유명하다. 진열장에 죽 늘어놓은 재료 사이에서 꺼낸 오징어를 팔팔 끓는 물에 데쳐 내는 오징어 숙회는 어찌나 통통하고 부드러운지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든다. 오징어는 볶음으로도, 무침으로도 맛볼 수 있는데 원하는 메뉴를 말하기만 하면 척척 만들어주어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격 오징어 숙회 1만 원 / 얼큰수제비 6,000원 / 닭발 6,000원
진한 국물이 예술인 ‘대중집’
현재 2대째 운영 중인 이곳은 식사 시간이 아닐 때도 사람이 붐빈다. 뽀얗고 진한 국물에 아낌없이 담긴 내장과 순대는 특 사이즈를 시킨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푸짐하다. 뚝배기에 펄펄 끓여 내오기 때문에 오래도록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 직접 방문해 먹어보면 순댓국 맛이 어디든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싹 사라지게 만드는 곳이다.
가격 순댓국 9,000원 / 내장순댓국 1만 원 / 편육 2만 원
글 박찬일 취재 허승희 사진 김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