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북적 , 활기를 되찾은 옛 시장
독립문영천시장(이하 영천시장)에 오랜만에 들렀다. 내 인생에서 영천시장은 1978년부터 시작된다. 이 동네에 사는 친구가 있어 이곳에서 종종 떡볶이를 먹었다. 가끔 큰돈(?)이 생기면 순대를 먹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7~8년 만에 다시 찾은 영천시장은 이전보다 더 활기차 보였다. 입구에서 만난 한 상인은 “예전엔 독립문으로 향하는 시장 북쪽 입구가 아주 북적였는데, 지금은 줄어들었다”며 “원래 큰 시장은 아니었지만, 옛날에는 굉장했다”고 추억했다.
본디 이 주변은 인구가 많았다. 천연동, 교남동, 현저동, 무악동… 모두 이제는 거의 아는 이가 없는 동네 이름이 됐다. 한때 금화아파트를 비롯해 서민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아주 많았고, 현저동·평동 일대에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현저동은 고 박완서 작가가 이북에서 피란 와 살았던 동네다. 작가는 어릴 적 이 시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던 기억을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묘사하고 있다. 인구가 줄어들고 마트가 활성화되면서 시장이 움츠러든 것은 1990년대. 서울시와 상인들, 주변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영천시장이 다시 활기를 얻은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이른바 서울형 신시장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당국의 지원으로 품질 좋은 아케이드가 설치돼 있는데, 이전에는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천막 아케이드를 설치하기도 했다.
발길을 끊을 수 없는 영천시장의 매력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 번째는 주민들이 즐겨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위생적이고, 믿고 살 만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영천시장은 그걸 해낸 곳이다. 시장 건너편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주민이 유입됐는데, 이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 우선 물건이 좋고, 싸기 때문이다. 과거 재래시장은 1차 산물(농수산물)부터 3차 산물까지 고루 취급했으며, 1차 산물이 좋은 시장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거의 공식이 됐다. 영천시장이 그렇다. 특히 채소, 과일, 생선이 아주 좋다. 취재하러 간 날도 한 생선 가게에서 장을 봤는데, 거의 도매가격에 품질도 매우 뛰어났다. 매일 식재료를 사는 요리사의 눈으로 본 것이니 확실한 평가라고 봐도 좋다.
두 번째는 이른바 맛집이 많아야 한다. 예전부터 영천시장은 주전부리가 유명했다. 지금도 멀리서 손님이 찾아오는 꽈배기는 1970년대에도 열 곳 넘는 가게가 있었을 만큼 영천시장의 자랑거리다. 현재는 몇 곳 남아 있지 않지만, 명성은 엄청나다. 꽈배기 사러 영천시장에 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다. 떡볶이 가게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과거 시장에서 볼 수 있었던 좌판형 떡볶이 가게를 요새는 찾아보기 힘든데, 영천시장에는 그 현장이 그대로 살아 있다. 또 단돈 몇천 원에 수북하게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가게도 현존한다. 옛날에는 떡볶이집 외에 어묵집, 두붓집도 많았다. 맛으로는 영천시장을 따라올 수 없었다.
시대의 기쁨과 아픔을 오롯이 품다
영천시장은 1960년에 공식적으로 붙은 이름이다. 원래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당시에는 관동시장이라고 불렀다. ‘관동’은 모화관(慕華館)의 ‘관’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알다시피 모화관이 헐리고 독립문이 들어섰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이 매우 중요한 시장 자리였다. 시장에서 조금만 가면 무악재가 나오는데, 이 고개를 넘어 홍제동·고양·벽제·파주 등지에서 농산물과 장작(땔감)이 넘어왔기 때문이다. 독립문 앞에서 소달구지에 땔감을 싣고 온 나무꾼이 매매를 기다리는 옛 흑백사진이 있는데, 이들이 농산물과 땔감을 팔고 나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거나 물물교환했던 곳이 바로 영천시장이라는 것이다. 이후 영천시장 근처에 서대문형무소가 들어서면서 시대의 아픔을 함께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투사들이, 군사독재시대에는 민주 인사들이 투옥되면서 영천시장은 ‘옥바라지 시장’ 역할을 했다. 여기서 사 온 음식물을 차입하기도 했고, 두붓집도 한몫했다. 옥에서 풀려날 때 두부를 먹이는 한국의 관습 때문이다. 또 영천시장은 떡전이 유명했다. 무악재를 넘어 북쪽으로 가려면 간식이 필요했고, 당시 한민족의 대표 휴대식량이 바로 떡이었으니 영천시장에서 떡을 사가지고 가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최근에는 식당도 많아졌다. 횟집도 인기 있고, 근처의 유명한 노포 ‘대성집’의 분점도 생겼다. 영천시장은 서울 서부의 입구로, 도심의 외곽 거주 지역을 지키는 시장으로 제 몫을 다할 것이다. 또 맛집의 역사, ‘장보기’라는 우리의 전통적인 소비생활을 지키는 터줏대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호불호 없는 먹거리가 가득! 영천시장 맛집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력 간식 ‘영천원조꽈배기’
영천시장은 ‘꽈배기 성지’라고 불릴 만큼 이름난 꽈배기 맛집이 많다. 그중에서도 ‘영천원조꽈배기’는 손꼽히는 곳이다. 메뉴는 즉석에서 반죽해 바로 튀겨내는 찹쌀 꽈배기, 찹쌀 도넛, 팥 도넛 세 가지가 전부.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노릇노릇한 색감과 쫄깃한 식감이 가히 일품이며, 가격도 저렴해 3,000원이면 전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가격 꽈배기 3개 1,000원 / 찹쌀 도넛 5개 1,000원 / 팥 도넛 2개 1,000원
육즙과 식감, 두 번 반하는 수제 떡갈비 맛집 ‘최가상회’
영천시장 인증 사진 명소. 참기름, 반찬, 샐러드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지만 이곳의 대표 메뉴는 뭐니 뭐니 해도 수제 떡갈비다. 한입 베어 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육즙과 부드러운 식감이 젓가락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구매한 음식을 바로 맛보고 싶다면 매장 반대편에 마련된 ‘영천 휴게소’를 이용하면 된다.
가격 떡갈비(4개) 1만 2,000원 / 비빔밥(2인분) 6,000원 / 쫄면(2인분) 7,000원
가성비·가심비 모두 충족하는 ‘베트남시장쌀국수’
샛노란 간판과 베트남 어딘가에 와 있는 듯한 이색적인 인테리어가 시선을 끄는 쌀국수 맛집이다. 베트남 쌀국수·월남쌈·분짜 등 이 집의 대표 메뉴 대부분은 맛과 향이 자극적이지 않아 누구나 실패 없이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양도 푸짐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깔끔한 단맛이 입맛을 돋우는 베트남 커피도 꼭 맛보길 추천한다.
가격 베트남 쌀국수 7,000원 / 월남쌈 8,000원 / 베트남 커피(핫·아이스) 3,000원
한번 맛보면 단골이 되는 맛 ‘대성도가니탕’
‘오로지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사장님의 강한 신념이 담긴 이 집의 도가니탕은 부드러운 고기와 구수하면서도 깔끔한 국물이 한 번 맛보면 누구나 단골로 만든다. 잘 삶아낸 도가니와 스지(소의 힘줄과 그 주변 근육 부위)를 고추씨가 들어간 특제 간장 소스에 살짝 찍어 먹거나, 함께 나오는 알싸한 마늘장아찌를 곁들이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가격 도가니탕 (보통) 1만 3,000원, (특) 1만 7,000원 / 수육 3만 원
글 박찬일 취재 김미현 사진 김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