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에게 귀한 존재였던 우물은 이제 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 흔적이 동네 이름으로 남은 곳이 있다.
서대문구 - 영천동
영천동(靈泉洞)의 동명(洞名)은 지금의 서대문독립공원 뒤 안산 정상에 있던 ‘악박골’이라는 이름의 약수터에서 유래한다. 하루에 57석(石; 한 석은 한 말의 10배로 약 180리터에 해당한다. 정도가 샘솟았던 이 약수는 특히 위장병에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약효가 있는 약수는 옛사람들에게 신묘하게 느껴졌을 테다, 또한 약수터 부근은 화강암 틈새로 열극수(裂隙水)가 솟아나 좋은 우물이 많았고, 이 때문에 영천동·냉천동과 같은 동명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찬 우물이 있던 데서 유래한 냉천동(冷泉洞)은 지하철 서대문역 근처 지역이다.
+ 이야기 하나 더
영천동에는 독립문영천시장이 있다. 1960년대에 떡 도매시장으로 형성되었고, 이제는 서울의 대표적 골목형 전통시장 중 하나가 되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으며, 풍성한 먹거리가 있어 인기가 많다.
종로구 - 훈정동
종묘 앞, 시민광장이라고도 불리는 종묘광장공원에는 ‘훈정(薰井)’이라는 이름의 우물이 있었다. ‘더운 우물’이라는 뜻의 훈정은 임금에게 올리는 물을 긷는 어수(御水) 우물이었다. 여름에는 물이 얼음처럼 차고, 겨울에는 김이 오를 만큼 따스한 데다 달짝지근해 종묘대제 때에는 반드시 이 우물물을 길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수량이 고갈되거나 넘치는 법 없이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했던 훈정에서 훈정동이라는 이름이 유래했으며, ‘더운우물골’이라고도 불렸다.
+ 이야기 하나 더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 및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현재 종묘는 중심 건물인 정전의 보수 공사를 진행 중인데, 11월 30일까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1회, 오후 3~4시)마다 보수 현장 관람이 가능하다. 20명 이내 선착순 신청 가능하며, 자세한 내용은 종묘 누리집(jm.ch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포구 - 합정동
지금의 절두산순교성지 가까이에는 옛날 한 우물이 있었다. 조선 시대 망나니들이 칼을 씻기 위해 팠던 우물로, 그 앞에 양화진이 있어 조개가 많이 밀려와 ‘조개우물’이라 불렸다. 합정동(合井洞) 동명은 이 조개우물에서 유래한다. 조개 합(蛤)에 우물 정(井) 자를 써서 지은 이름인데, 이후 머리글자를 합할 합(合) 자로 수정해 오늘날의 합정동이 되었다. 합정동은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모여 있는 데다 한강이 가까워 젊은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제 천주교 박해의 흔적은 절두산순교성지에만 남아 있지만, 때로 합정동의 이름에서 그 역사를 떠올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더운우물골’이라고도 불렸다.
+ 이야기 하나 더
마포구에서는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후원하는 ‘2023년 마포구 생생문화재 한강 역사문화 뱃길탐방 - 근대의 물결을 타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9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며,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그리고 절두산순교성지 등에 대해 더 자세히 배울 수 있는 기회다. 또 8월에는 ‘양화진 어린이 선상 인문학’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글 임산하 일러스트 정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