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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명륜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2023.03

에세이

이야기가 있는 도시

명륜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음성·문자 지원

“맨 처음 터미널에서 널 봤을 땐, 어딘가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고”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재주소년의 노래 〈명륜동〉. 이제는 지번주소에서 도로명주소로 개편되어 동(洞)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게 되었지만, 명륜동이라 하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내 머릿속에서 서울, 특히 종로구 곳곳은 여전히 ○○동으로 구획이 나뉘어 기억되기 때문이다. 부암동, 통인동, 인사동, 가회동, 이화동… 동마다 얼마나 다르고 고즈넉이 아름다운지, 대학생 시절 나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종로”라며 종로 예찬을 펼치곤 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출발해 종로타워 아래에서 빠이롯드 만년필1) 간판이 보이면 길을 건너고, 보신각 터, 맥도날드2), 파고다 어학원3), 일이 층짜리 꼬마 상점들을 지나 종로 3가 지하철역 모퉁이를 돌아 서울극장4)까지. 목적 없이 걷는 날들이 많았다. 털레털레 거리를 거닐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구보 씨가 됐다고 상상했다. 종로 밤거리를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다는 서울 토박이 친구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꼈을 만큼, 밤이고 낮이고 종로 구석구석을 돌아 다닌 경험은 경기도에서 나고 자란 내게 일종의 자부심이 었다.

그중에서도 종로구 명륜동에는 스물두 살 무렵의 풋풋한 사랑이 골목골목 스며 있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늘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었다. 누군가와는 연인 사이가 되었고, 누군가를 짝사랑해 마음을 앓기도 했다. 속절없이 사랑에 빠져 버렸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명륜동 골목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명륜동〉이라는 곡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명륜동 골목을 누비던 밤…” 하고 흥얼거리며 어둑해진 명륜동 골목을 배회했다.
연인의 손을 잡고 그 골목을 누비던 날에는 내가 노래 속 화자가 된 듯했다. ‘아 정말 이 골목과 잘 어울려’라며 음악에 취한 사이, 주황빛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 나만의 서울을 기록하고 싶어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채 휴학하고 글을 쓰던 스물네 살 즈음에도 나는 종종 명륜동에 있었다. 고요한 골목 계단에 앉아 글을 썼다. 한참을 볼펜으로 휘갈겨 적다가 이따금 고개를 들어 골목을 보면 아무도 없었다. 혼자 있는데도 외롭지가 않았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틋했던 이십 대가 몽땅 지나고 나서야 노래 〈명륜동〉의 ‘명륜동’은 내가 머물곤 했던 서울 종로구 명륜동이 아니라 부산 동래구 명륜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왠지 모를 배신감에 휩싸였다. 누구도 그게 서울 명륜동이라 일러준 적이 없었는데도 당연히 서울일 거라 믿어 버렸던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첫 소절의 ‘터미널’은 도대체 어디일까 가끔 궁금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 곡에 등장하는 명륜동은 부산 명륜동으로, 십수 년 전 부산 동부시외버스 터미널이 명륜동에 있었다고 한다. 노포동으로 통합 이전하여 지금은 거기에 없지만.

대학 새내기 적부터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이십 대의 전부를 서울에서 보내는 동안 내 안에 많은 장면을 심어 두었다. 삼십 대가 되어 부산과 순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사이, 학생에서 직장인, 프리랜서가 되는 사이, 여자아이에서 엄마가 되는 사이, 오래도록 서울을 걸으며 보고 느꼈던 많은 것이 사라졌다. 어떤 날 나를 따끈하게 위로했던 밥집과 찻집도 문을 닫았다. 사라진 것은 때때로 사람이었고, 정경이나 건물이기도, 가게이기도 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유행, 풍경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게다가 주소의 이름마저 바뀌지 않았던가. 하지만 명륜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노래 속 터미널에서 처음 만난 이에게 느낀 익숙함 같은 그때 그날의 감정은 없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전부 변했어도, 그 시절 내가 누군가를 애달프게 좋아해서 울고 웃으며 앉아 있던 골목 계단 위의 마음과, 지칠 줄 모르며 걷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던 날의 기억은 휘발되지 않았다. 그 찰나는 자그마한 씨앗처럼 내 안에 심겼고, 나를 자라게 했다. 모든 추억이 꽃이자 열매였다. 서울에서 보낸 모든 순간은 곧 나였다. 명륜동이라는 이름이 영영 사라져도, 낡아 닳아빠진 골목과 계단이 모두 헐려 새 건물이 들어서도 명륜동은 명륜동이 다. 명륜동은 거기에 있다.


① 해당 건물에 매장이 있었고 2018년 5월에 폐점했다. ② 종로2가점으로 2016년 3월에 폐점했다. ③ 2011년 준공을 마친 청계2가 사거리의 파고다타워로 나중에 입주하며 본원은 문을 닫았다. ④ 2021년 8월에 폐점했다.

그림 명륜동 거리

서울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더 서울>을 펴냈다.
합정동과 파주출판단지를 오가며 출판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순천에서 책방 ‘취미는 독서’를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일한다.
<언젠가는, 서점>, <편지할게요> 등의 책을 썼다.

김민채 일러스트 나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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