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도, 지난 주말도 슬기로운 집콕 생활의 연장이었다. 버티며 지내온 몇 달. 어느새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 많은 생각을 바꿔놓았다. ‘함께’보다는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가까워진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여행을 대신하게 된 소확행 취미
마포구에 사는 조지연 씨는 시간만 나면 여행 갈 생각에 들뜨곤 했다. 잦은 야근과 해묵은 피로를 잊게 해주는 건 ‘여행의 힘’이었다. 가고 싶은 나라들을 검색해보며 2~3년 후의 여행 계획까지 세우곤 했던 그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자 아예 위시 리스트에서 해외여행을 빼버렸다.
“당장 갈 수 없는 나라들을 꿈꾸는 게 현명한 걸까, 회의가 들었어요. 대신 요즘은 소소하게나마 당장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어요.”
그가 해외여행 대신 찾은 ‘소확행’은 집에서 혼자 즐기는 취미 생활이다. 향초도 만들고 주얼리도 만들다가 최근에는 DIY 키트에 푹 빠졌다. 요즘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온라인 숍에서 주문해 받은 원데이 클래스 키트를 이용해 이국적인 라탄 백을 만들고 있다. 퇴근 후 라탄 백을 만드는 시간만큼은 코로나19로 인한 답답함도 잊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발리나 싱가포르의 호텔과 리조트에서 보던 이국적인 소품을 집에서 직접 만들고 있으면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느낌도 들고, 여행 간 느낌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여행이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 통째로 사라져버린 이전의 일상이 언젠가는 다시 회복될 거라고 믿지만, 지금은 여행 정보를 뒤적이는 대신 라탄 소품 만들기로 마음을 다스리며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 같았던 날들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불안한 공존 대신 안전한 거리 두기
용산구에 사는 장혜승 씨는 평소 좋아하는 단호박 뇨키를 맛보러 한남동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세계 각국의 음식이 모인 이태원동·한남동 지역도 코로나19 상황을 피해갈 수 없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동네 맛집 탐방을 즐기는 맛집 블로거인 그 역시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탐방의 발길을 끊어야 했다. 이후 이 지역 식당들은 코로나 시대에 맞춰 빠르게 변모해갔고, 오랜만에 다시 찾은 ‘뇨끼바’에는 방역과 사회적 거리 두기의 결과로 투명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칸막이가 없었다면 시원한 느낌은 있었겠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불안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예전과 다른 모습이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마음은 놓이는 것 같아요.”
뇨끼바처럼 칸막이로 거리 두기를 한 곳이 있는 반면, 아예 시간대를 나눠 공간 전체를 1인에게 임대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바꾼 곳도 있다.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책방 ‘책크인’은 책과 함께 커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엄선한 책과 커피, 와인은 물론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스낵도 판매하는 이곳은 인원 제한을 위해 정규 영업시간 외에 혼자 책방을 이용할 수 있는 ‘얼리 체크인’,
‘레이트 체크인’이라는 예약 제도를 도입했다. 덕분에 책방에는 거리 두기와 문화생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예약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책방과 고객 모두가 불안한 공존 대신 안전한 거리 두기를 대안으로 택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교실이자 사무실이 된 집
강남구에 사는 박종호 씨는 요즘 회사 대신 집으로 출근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일상이 어색했지만, 어느덧 재택근무가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집의 방 하나를 아예 사무 공간으로 꾸몄어요. 아이들 컴퓨터 책상과 나란히 있던 제 책상을 분리하고, 창에는 블라인드를 설치했습니다.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문을 닫고 일하는데, 나름 집중도 잘되고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크게 지장을 받지도 않습니다.” 집 안에 있지만 집과는 ‘분리된’ 사무 공간 덕분에 요즘은 화상회의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불필요한 미팅 대신 필요한 업무만 하다 보니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불편한 점이 많을 거라 생각했던 재택근무가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서초구에 사는 지호 엄마 김윤정 씨의 일상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엄마로서의 삶이 다시 시작되던 이전과 달리 요즘은 온라인 수업 준비와 지도로 지호보다 더 분주하다.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지호에게는 하루가 짧지만, 엄마에게는 그만큼 하루가 더 길다. “지호가 아직 유치원생인 만큼 교과목 진도를 따라 하지 않아도 돼요. 업로드된 동영상을 내려받아 그걸 보고 아이가 잘 배우고 따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제 역할이죠.” 바깥 활동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아이가 지루해하거나 뉴스에도 등장하는 ‘학습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그는 집이라는 공간을 활용해 즐길 수 있는 다른 정서 발달 놀이와 예체능 활동까지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 시대에 집은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교실이자 놀이터 그리고 사무실이 되었다.
타인과 분리된 1인용품과 개인 공간의 시대
코로나19 재확산과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는 타인과 분리된 1인용품과 개인 공간 트렌드로 나타나고 있다.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차에 캠핑 장비를 싣고 인파가 몰리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차박 또는 캠핑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SNS 게시물 1400만 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차박 언급량이 코로나19 이전 대비 223% 늘었다. 등산 언급량은 55% 증가했고, 캠핑도 37% 더 언급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건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점점 커지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접근성이 좋은 편의점에는 건강기능식품이 속속 입점하고 있다. CU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카운터 매대에 위치한 껌과 사탕을 대폭 줄이고 그 자리에 홍삼 스틱 등 1입 한 포 건강식품을 채웠다. CU의 2020년 9~11월 건강기능식품 매출은 2019년보다 28.1% 증가했으며, GS25 역시 동 기간 매출이 79.5% 급증했다.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일상이 멀어지고 있다는 상실감 대신 이를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이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간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다면 이제 거리 두기로 달라진 환경 속에서 옆과 뒤를 차분히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도 좋다는 말이다.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나 미래를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일수록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 기회에 언택트 방식을 활용해 친구나 동료,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도 좋고,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생활 반경이 줄어들수록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적절한 식이 조절 등을 꾸준히 하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코로나19 이전의 일상과 비교할 때, 지금은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인생은 혼자 항해하는 돛대와 같다. 코로나 시대의 일상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일상의 사각지대를 보게 했다. 주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스스로 방역과 거리 두기 지침을 지키며 혼자서도 잘 사는 법을 터득한다면 익숙하지 않은 시대의 일상이 훨씬 더 친숙하게 다가올지 모를 일이다.
김경택
예약제 동네 책방 이용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강화로 이용하지 못하는 문화시설이 많은데, 이렇게 예약제로 서점을 이용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해요. 거리 두기와 방역도 안심할 수 있는 만큼 독서에 더 집중할 수 있죠.”
박지호
온라인 유치원 수업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 집에서 엄마와 컴퓨터로 다양한 학습과 놀이를 할 수 있어 좋아요. 집에서 공부하는 만큼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되니 숨쉬기도 답답하지 않고요.”
조지연
DIY 키트 원데이 클래스 이용
“원데이 클래스에 참석해야만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온라인 주문으로 비대면 원데이 클래스를 경험할 수 있다니 신기해요. 덕분에 이것저것 다양한 취미 활동에 도전하고 있어요.”
글 임지영 사진 한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