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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사로잡는 바삭한 튀김

오감을 사로잡는 바삭한 튀김>
2020.11

여행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미식 이야기

오감을 사로잡는 바삭한 튀김

음성·문자 지원

국경을 넘나드는 튀김의 묘미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튀김은 매력적이다. 뭐든 튀기면 ‘어지간하면’ 맛있다. 하지만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튀김은 고열의 설비, 높은 위험도, 숙달이 필요한 요리라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튀김은 그래서 대개 사 먹는 요리다. 100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어느 문명국가에서도 쉽게 먹을 수 없는 고급 요리였던 튀김이 이제는 누구나, 언제든 쉽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되었다.

서울에는 온갖 요리 장르가 있는데, 대개는 튀김을 포함하고 있다. 프라이드치킨은 양식에 속하며, 양식에도 튀김은 흔하다. 본디 튀김의 발전은 양식(유럽식)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돼지와 소의 부산물인 기름과 올리브유가 풍족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중식이다. 중식은 대부분 볶음 요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은(특히 한국의 중식은) 튀긴 것을 볶는 요리가 메뉴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탕수육은 물론이고 깐풍기, 유린기 같은 요리도 튀긴 후 볶거나 소스를 뿌리는 과정을 거쳐 나온다. 튀김 없이 중식은 없다. 탕수육을 보라. 튀김 그 자체가 아닌가.

옛 신문 기사 한 부분을 옮겨보자.

“집에서 뎀뿌라(덴푸라)를 썩 잘 튀기기는 좀 어렵습니다. (중략) 요즘엔 콩기름도 쓰고 또 하이칼라로 사라다유(샐러드유)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아모래도(아무래도) 참기름만치 조흔(좋은) 것이 없습니다. (중략) 뎀뿌라 옷 만드는 데는 수돗물보다 우물물이 오히려 좋고, 상등 우동 가루를 준비하고 먼저 물과 소금을 조금씩 넣으면서 거기에 다시 계란을 넣어 잘 섞습니다.”(1939년 2월 23일 자 조선일보)

이 방식은 전형적인 일식 튀김, 즉 덴푸라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과 거의 차이가 없으며, 기본적인 튀김 요령이다. 덴푸라는 한국에서 어묵으로 불리기도 했는데(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는 어묵을 정어리기름이나 돼지기름 등에 튀겨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혼동해서 사용한 것이다. 이 어묵튀김은 1970~1980년대 시장에서 즉석 튀김으로 팔렸으며, 간식으로 또는 반찬거리로 인기를 크게 끌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이 어묵튀김을 한 꼬치 얻어먹는 것이 중요한 행사였다. 현재도 서울의 여러 재래시장에 가면 반죽을 직접 튀김 솥에 넣어 튀겨내는 가게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우리를 유혹한다.

서울의 튀김 역사에 대하여

서울의 튀김을 이야기할 때 길거리 포장마차를 빼놓을 수 없다. 1960년대 이후 포장마차는 서울의 중요한 간이음식점 겸 술집 역할을 걸머지었다. 무허가였던 이런 노점 포장마차는 한잔 술을 팔거나 국수, 튀김, 순대, 떡볶이 등으로 고유한 전문성을 띠었다. 튀김 포장마차의 경우 채소 모둠(보통 야채튀김이라 부른다)·오징어 다리·고구마 튀김이 인기였다. 오징어 다리는 몸통을 진미채 등으로 가공하고 남은 다리가 유통되었는데, 필자가 인터뷰했던 유명한 떡볶이집 ‘숭덕분식’의 주인은 “먹고살기 위해 친정아버지에게 ‘저 오징어 다리 몇 관만 사주시면 장사해서 먹고살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는 서울 시내에서 개조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오징어 다리를 튀겨 팔았다. 여기서 ‘관’은 3.75kg에 해당하는 옛 도량형이다.

튀김은 식용유의 공급과 밀접한 역사를 가진다. 대개 ‘쇼트닝’이라고 부르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라드(돼지기름)를 사용하다가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공급하는 대량의 콩과 옥수수를 사용한 ‘식용유’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튀김 역사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경양식집과 돈가스다. 경양식집은 돈가스, 생선가스, 비프가스 등 주로 튀기는 메뉴를 팔았다. 튀김은 재료의 질에 비해 만족도가 높았다. 칼로리 만능 시대였던 1960~1970년대에는 이런 음식이 더 각광받았다. 경양식집 문화가 사라진 틈에 일식과 기사식당식 돈가스집이 들어섰다. 일본식 돈가스는 튀긴 후 칼로 썰어내 젓가락으로 먹었고, 기사식당식 돈가스는 재료인 돼지고기 등심을 넓게 펴서 시각적 만족도를 높이는 동시에 수프와 양배추 샐러드, 여기에 매운 고추와 김치, 쌈장 등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으로 당시 서울시민의 발이었던 택시 기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튀김은 기름을 많이 쓰고 번거롭기 때문에 집에서 해 먹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에어프라이어가 등장해 유사한 튀김 요리를 쉽게 할 수 있게 되어 튀김의 보편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튀김 역사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경양식집과 돈가스다.
경양식집은 돈가스, 생선가스, 비프가스 등 주로 튀기는 메뉴를 팔았다.

성공의 사다리, 튀김의 왕국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롤랑 바르트는 일본의 튀김을 극찬했다. 보통 서구의 튀김은 재료에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입혀 튀기는 방식이 흔하고 라드를 사용해 진하게 튀기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반면 일본의 튀김은 아주 묽은 반죽을 살짝 입혀 재료의 색깔과 모양이 드러나며, 무거운 마요네즈 계열의 소스 대신 식초나 레몬·감귤류의 즙을 섞어 묽고 새콤달콤한 간장에 찍어 먹는 방식이다 보니 신선한 놀라움을 느낀 듯하다.

나는 “재벌이 되고 싶으면 튀겨라”라는 말을 한다. 실제로 라면 회사는 재벌이 되었다. 라면은 전형적인 튀김 요리다. 튀김 중 가장 극적이고 인기가 많은 치킨도 결국은 ‘프라이드’니까 말이다. fried가 이제는 pride가 되었을 만큼 튀김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주요 프라이드치킨 회사는 전국 곳곳에 빌딩을 세웠고(이익을 크게 냈다), 내가 아는 회사만 해도 강남 청담동 일대에 사옥을 두 개나 지었다. 프라이드치킨은 엄청난 힘을 가진, 서울 최강의 튀김이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생과 튀김은 공통점이 있다. 튀김은 재료를 뜨겁게 끓는 기름에 최대한 가까이 가져가서 신중히 넣어야 한다. 뜨거운 기름이 두렵다고 멀리서 재료를 던져 넣으면 기름이 튀어 화상을 입는다. 두려운 존재일수록 인내하고 더 가까이 가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또한 아무리 바삭한 튀김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눅눅해져 맛이 없어진다. 인생의 빛나는 시기는 결코 길지 않음을 말해준다고나 할까.

바삭한 튀김옷을 입혀 뜨거운 기름에서 튀겨낸 카츠바이콘반의 돼지고기 등심 돈가스.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튀김이 요리가 되는 순간

바사삭~ 군침 도는 소리!
장안의 화제 #튀김열전

#사르르녹는안심 #돈카츠원탑

두툼한 프리미엄 돈가스가 대세인 요즘, 돈가스 전쟁에서 승리의 깃발을 거머쥔 이곳은 장안동에서 시작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후 도산공원 근처에 2호점을 열었다. ‘혼을 담은 밥상’이라는 뜻의 상호명에 걸맞게 이곳의 돈가스는 식감이 바삭하고 부드러우며, 육즙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맛의 비결은 숙성한 소금 누룩이라고. 정식에 제공하는 돼지고기를 넣은 된장국인 돈지루도 별미다.

카츠바이콘반

  • 가격 히레카츠 정식 1만7000원
  • 주소 강남구 선릉로153길 36
  • 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휴식 시간 오후 2시 30분~6시)
  • 전화 02-547-3903
#별미튀김 #막창까지튀기다

연희동의 오래된 화상(華商)으로도 유명한 ‘왕왕’의 막창튀김은 전처리에 신경을 써서 잡내가 없는 막창 안에 대파를 끼우고 마치 페이스트리처럼 바삭하게 튀겨내는 것이 특징. 바삭한 겉껍질 안에 부드러운 속살을 자랑하는 막창과 기름기를 잡아주는 대파 그리고 함께 곁들여내는 겨자 소스에 무친 채소가 어우러진 맛이 중독성 강한 이색 튀김이다. 주당이라면 막창튀김 한 조각에 술 한 잔이라는 풍문이 있으니 조심할 것.

왕왕

  • 가격 막창튀김 1만5000원
  • 주소 서대문구 연희맛로 27 2층
  • 시간 오전 11시~오후 11시(월요일 휴무)
  • 전화 02-333-5188
#버크셔K #돈까스를품은빵

같은 골목에 위치한 ‘최강금돈까스’의 강병권 셰프가 두 번째로 문을 연 곳. 지리산 식재료를 사용한 신선하고 창의적인 메뉴를 선보이는 전통 주점이다. 이곳은 최강금돈까스의 차별점이라 할 수 있는 버크셔K 품종의 돼지고기와 지리산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가 입맛을 사로잡는데, 그중에서도 두툼한 브리오슈 빵 사이에 잘 튀겨낸 돈가스와 치즈가 만나 버터 샤워를 하는 토스트가 인기다. 처음에는 그대로 먹고, 두 번째는 돈가스 소스에 찍어 먹고, 마무리는 수제 오디잼을 올려 먹어보자.

JIRI(지리)

  • 가격 최강금토스트 1만8000원
  • 주소 마포구 월드컵로3길 31-5 2층
  • 시간 오후 5시~밤 12시
  • 전화 02-6396-3646
#첨밀밀 #가지에튀김꽃이활짝

영화 <첨밀밀>과 같은 한자어로 ‘꿀처럼 달콤하다’라는 뜻을 지닌 ‘티엔미미’는 정지선 셰프의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달콤·짭짤·새콤·매콤한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메뉴로, 어향 소스로 볶아낸 ‘어향완자가지’를 추천한다. 칼집을 잘게 넣어 튀겨 바삭하면서도 채즙이 풍부한 가지튀김과 돼지고기 완자튀김의 ‘겉바속촉’한 풍미에 한번 놀라고 푸짐한 양에 두 번 놀란다. 술안주는 물론 식사 요리로도 손색없다.

티엔미미

  • 가격 어향완자가지 3만1000원
  • 주소 종로구 자하문로7길 19
  • 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휴식 시간 오후 3시~5시)
  • 전화 02-732-0719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한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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