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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낙지를 먹겠어요

가을엔 낙지를 먹겠어요>
2020.09

여행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미식 이야기

가을엔 낙지를 먹겠어요

음성·문자 지원

낙지에 관한 신비로운 일화

갯벌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낙지는 신화에 가깝다. 스태미나의 왕으로 여긴다. 산낙지를 한 마리 꿀꺽 삼키는 방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남정네들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서울에서는 산낙지회라고 하면 낙지를 토막 내어 제공하지만, 낙지 생산 지역에서는 통째로 먹는 것을 뜻할 정도다. 지친 소에게 낙지를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는 얘기는 낙지 신화에서 빠지지 않는다. 여덟 개의 발이 꿈틀거리는 역동성, 사람 발도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속도, 빨판의 흡착력 같은 물리적 힘이 그런 신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대도시 서울에도 낙지의 신화가 있다. 월급쟁이들이 몰려 있는 도심에서 낙지는 오랫동안 생존의 상징처럼 소비됐다. 총력 수출, 총력 돌격 같은 군대식 옛 기업 문화에서 매운 낙지볶음은 고통을 이기고 버텨나가야 하는 월급쟁이들의 삶을 상징했다. 그것은 신화가 되었다. 고통스러울 만큼 매운 것을 먹고 버티는 힘이면 어떤 난관도 뚫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의지력으로 투사되었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월급쟁이들이 빼곡하게 좁은 가게 안에 앉아 매운 낙지볶음에 눈물 섞인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하나의 풍경화일 정도였다. 1970~1990년대를 관통해온 도심 낙지골목의 풍속도를 잘 모르는 세대는 만화이자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무교동으로 대표되던 낙지 시대

대한민국 고속 성장의 동력은 산업 현장과 거기서 만든 상품을 팔아 치우던 상사맨들 그리고 돌고 도는 돈을 좇으며 살아가던 샐러리맨 군상들의 시대를 만들었다. 그들의 밥상과 술상에는 매운 음식이 올라갔고, 낙지골목은 그 주 무대였다.

이 골목의 주인공 중 하나가 언론인과 공무원이었다. 언론인은 낮술로 이 골목을 제패(?)했고, 인근의 많은 관청에 다니는 공무원들은 매운 낙지볶음에 소주, 조개탕을 먹었다. 실은 낙지볶음의 매운맛은 고춧가루라기보다 마늘 덕이다. 간 마늘을 엄청나게 넣어서 속이 쓰리게 만드는 것이 1980년대 이후 이 골목 낙지볶음의 특징이었다. 그렇게 속을 약 올리고는 시원한 콩나물국이나 조개탕으로 달랬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음식에 위는 지쳤겠지만, 그렇게 강한 자극을 받으며 뭐라도 먹지 않으면 일할 수 없는 시대였다고도 변명할 수 있겠다. 일주일에 6일은 기본, 휴일도 일하는 7일 근무가 예사였고, 월차나 연차는 보통 담력으로는 쓰기 어려웠던 세상이었으니까.

흔히 무교동 낙지골목이라는 말을 쓰는데, 지금 새내기 직장인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골목이라고 할 만한 ‘모둠’이 거의 해체돼버렸기 때문이다. 옛날처럼 먹을 만한 안주가 흔치 않던 때에 강력한 에이스였던 낙지볶음의 영화가 스러지고 있는 까닭도 있지만, 낙지골목 자체가 거의 붕괴돼버린 까닭이 더 크다. 낙지골목은 서린동을 기원으로 본다. 태○옥, 유○낙지, 전○집, 미○집, 실○집 등이다. 여러 차례의 도심 재개발로 인해 무교동으로, 피맛골 일대로 낙지집들이 산개하며 옮겨갔다. 몇몇 집은 서린동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근 종로1가 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청계천 남북을 경계로 유흥업이 번창하는 무교동과 달리 서린동에는 서민 상대의 술집이 많았는데, 나중에는 도심 재개발로 이리저리 옮기게 되면서 서린동이 아닌 무교동의 이름을 대표 격으로 얻게 되었다. 통칭 ‘무교동 낙지골목’이 탄생한 배경이다. 즉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도심 재개발로 무교동, 다동, 서린동, 종로1가 등 다양한 행정동에 산재한 낙지볶음 전문점들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무교동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기 때문에 언중이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낙지 요리의 발상지라고 여기는 서린동은 원래 조선시대에 이미 서민들이 많이 통행하는 지역이었고, 술집과 밥집이 흔했다. 서울의 식당에서 파는 전통 음식으로 유명한 곰탕, 설렁탕, 떡국, 빈대떡과 함께 낙지 요리도 한몫했다.

낙지볶음은 어쩌면 정태춘식으로 읊조리면
‘서울이라는 이름의 도시’에 하나의 깊은 획을 남긴 음식이 아닐까.

제철에 가장 맛있는 낙지 요리

가을은 낙지 철이다. 사실 어업이 발달하고 낙지값이 좋아서 사철 내내 낙지가 시장에 나오지만, 가을만큼 맛이 좋지는 않다. 가을의 낙지는 적당히 굵고 살이 차지며, 깊은 감칠맛을 낸다. 물론 잡는 지역과 어로법에 따라 낙지의 맛이 다 다르다. 전통적으로 바다에서 그물이나 주낙을 사용해 잡기도 하고 갯벌에서도 잡는다. 아무래도 갯벌에서 잡은 놈을 제일로 쳐준다. 물론 육안으로 어디서 잡았는지,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알아낼 방법은 쉽지 않다. 낙지볶음이 과거의 명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다양해진 음식 탓이기도 하지만, 옛날처럼 싸고 질 좋은 낙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지에서도 상당한 가격을 자랑하는 국내산 낙지는 서울의 비싼 임대료 등으로 낙지볶음의 가격 상승을 유발했다.

낙지에 관한 기록 중에는 정약전 선생이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쓴 내용이 좋다. 그중 한 대목은 이렇다. “낙지는 겨울철에 새끼가 태어나서 자기 어미를 먹는다. 회와 국, 포를 만들어도 좋다. 마른 소에게 낙지를 먹이면 곧 강한 힘을 갖게 된다. <동의보감>에는 ‘소팔초어’라고 했고, 이 생물은 성질이 순하여 맛이 좋다고 한다.”

낙지는 전으로도 부치고, 국도 끓일 수 있다. 전국과 세계 음식이 다 모이는 서울에서 먹을 수 없는 낙지 요리는 드물 것이다. 그중에 속칭 무교동의 낙지볶음은 하나의 전형성을 얻은 역사의 요리가 되었다. 격동하는 시대상과 함께 호흡하며 흥망성쇠를 같이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서린동과 무교동의 낙지볶음을 아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변한 풍경과 더불어 낙지볶음의 맛을 품평한다. 낙지볶음은 어쩌면 정태춘식으로 읊조리면 ‘서울이라는 이름의 도시’에 하나의 깊은 획을 남긴 음식이 아닐까. 지금도 필자의 입가에는 그 매운 낙지 양념이 후려치고 남긴 상처가 슥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그것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했던 시대의 낭만적인 상처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즉석 낙지볶음.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서울에서 즐기는 낙지 취향

‘뻘’ 속의 산삼,
낙지 보양식 #TMI

#무교동낙지볶음 #본점의위엄

1966년 종로구 서린동 일대 낙지골목의 시초가 된 곳으로, ‘맛있게 매운 맛’의 정석을 따른다. 요즘 유행하는 캡사이신의 맛이 아닌, 진짜 매운맛이 궁금하다면 이곳이 정답이다. 창업자의 손맛을 2대째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본점인 만큼 원조 낙지볶음 뿐 아니라 낙지전복찜, 낙지 한 마리 파전, 산낙지 데침과 한우 업진수육 등 제대로 된 낙지 메뉴를 갖추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무교동유정낙지 본점

  • 가격 낙지볶음 1만4000원(1인분), 낙지 한 마리 파전 1만9000원
  • 주소 중구 세종대로21길 22
  • 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설·추석 연휴 휴무)
  • 전화 02-725-0646
#즉석낙지볶음 #을지로낙지백반

골목골목 노포가 숨어 있는 을지로에서 찾은 낙지 맛집. 즉석에서 볶아 먹는 낙지백반을 가성비 높은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살이 오동통해 씹는 맛이 있는 낙지와 설탕 없이도 단맛을 내는 양배추를 듬뿍 넣은 냄비가 불 위에 오르면 매콤한 양념장과 재료가 어우러지며 멋진 한 끼가 완성된다. 백반이라는 음식명답게 김치와 나물, 생선, 어묵 등 맛깔스러운 밑반찬과 적당하게 양념이 밴 냄비 속 낙지를 넉넉하게 비벼 먹을 수 있는 밥을 함께 제공한다.

주유소식당

  • 가격 낙지백반 7000원
  • 주소 중구 창경궁로5길 11
  • 시간 오전 7시~오후 8시 30분(일요일 휴무)
  • 전화 02-2275-4935
#낙지보양식 #불낙지

뜨겁고 매워서 ‘불’이 아니라 불판 위에서 불고기처럼 구워내는 낙지라는 뜻으로 불리는 ‘불낙지’는 여타 낙지 전문점과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메뉴다. 전라남도 무안·해남·녹동에서 잡은 살아 움직이는 신선한 낙지를 최상급으로만 거래해 이곳의 낙지 품질은 뛰어나다. 매일매일 들여오는 생물 낙지의 상황에 따라 제공하는 낙지는 주문과 동시에 식탁 위 불판에서 익혀 먹는데, 개운한 육수와 쑥갓, 대파를 만난 낙지의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매일낙지

  • 가격 불낙지 3만3000원(1인분)
  • 주소 영등포구 경인로78길 3-16
  • 시간 낮 12시~오후 10시 30분(일요일과 명절 휴무)
  • 전화 02-2676-8702
#반전연포탕 #박속낙지

낙지 하면 떠오르는 ‘목포’를 상호명으로 사용한 만큼 연포탕, 낙지전골, 낙지철판볶음, 낙지무침, 낙지회무침 등 다양한 낙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제철에 차곡차곡 챙겨둔 ‘박’으로 국물을 낸 연포탕에 낙지와 궁합이 좋은 부추, 산낙지를 살짝 데쳐 먹기 좋게 잘라 접시에 담아내고, 연포탕 국물은 별도로 제공한다. 연포탕의 마무리로 매생이를 풀어내는 국수사리도 놓치지 말 것.

목포세발낙지산낙지

  • 가격 연포탕 4만원(중, 2인분)
  • 주소 종로구 사직로9가길 6
  • 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부정기적 일요일 휴무)
  • 전화 02-739-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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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한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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