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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냉(以熱治冷) 여름 국수

이열치냉(以熱治冷) 여름 국수>
2020.08

여행

취향의 발견

박찬일의 미식 이야기

이열치냉(以熱治冷) 여름 국수

음성·문자 지원

더위를 날리는 시원한 국수 한 그릇

서울 사람들은 여름이면 시원한 음식으로 더위를 다스렸다. 서울의 주요 거리와 시장에는 냉차를 파는 노점이 있었고, 냉면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냉면은 꼭 전문점에서만 취급한 건 아니고,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한식집에서 여름이 되면 계절 메뉴로 팔았다. 빨간색으로 종이나 현수막에 ‘냉면 개시’라고 써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얀 종이 술을 가게 앞에 매달아 국수를 상징하는 방식도 오래전에는 널리 쓰였다. 냉면 외에도 ‘찬 국수’가 다채롭게 시중에 나왔다. 냉면이 아니어도 물국수(잔치국수)를 차갑게 해 먹는 메뉴가 있었다. 열무국수도 분식집의 주요 메뉴로 여름에 많이 팔렸다.

한국인의 부식 1등, 국수

“조선 생활품 감리국에서는 식량 보충책으로 금번 재고 밀가루 27만 관으로 국수를 만들어 일반에게 배급하기로….”(1946년 5월 1일 자 조선일보)

한국 사람은 국수를 정말 좋아한다. 궁궐의 별식에도 국수가 흔했고, 민간에서도 국수를 많이 먹었다. 밀가루는 진말(眞末)이라고 하여 최고의 가루로 꼽혔고, 생산량도 꽤 됐다. 하지만 밀은 북방계 작물로 생산 지역에 한정되었고, 따라서 여러 가지 분말이 국수에 동원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메밀이고, 칡이나 다른 가루로도 국수를 뽑았다. 현재 밀은 가장 싼 가루가 되었는데, 이는 수입 밀의 가격 때문이다. 해방 후 밀 자급률은 8% 정도가 최고를 찍었을 뿐, 지속적으로 하락해 현재는 1%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밀에 대한 우리 민족의 욕망은 밀이야말로 탄력이 좋고 식감도 뛰어난 고급 국수를 뽑을 수 있다는 데서 비롯했다. 미국의 원조 밀이 들어오기 전인 조선 시대 말, 일제강점기 무렵에는 중국의 화북 지방에서 생산된 밀가루가 많이 수입되었다는 독특한 기록도 있다. 중국에서 밀을 수입하던 관행은 아주 오래된 역사다. 더운 여름인 음력 6월 15일 유두절에는 서울 장안 사람들이 모두 밀가루로 유두면을 만들어 먹었다. 유두면은 <동국세시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당시 유두면은 아마도 가루로 만든 경단 음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국수로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한국세시풍속사전>).

팔도 국수, 서울로 모여들다

서울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국수를 먹었다. 냉면도 평양냉면이 도입되기 전에 이미 ‘동냉면’이라고 해서 겨울 동치미로 만들어 먹는 면이 있었을 정도다. 여름에는 다채로운 국수가 있었다. 열무국수, 콩국수, 냉물국수, 비빔국수, 오이소박이국수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에서 비롯한 ‘소바(보통 판 메밀이나 메밀국수라고도 불렀다)’도 널리 먹었다. 찬 국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오죽하면 중국집에서 여름철 손님을 냉면집에 빼앗기자 ‘중국냉면’을 창조하기도 했다. 원래 중국은 여름에 량빤면, 깐빤면 등의 비빔국수를 팔았는데 국물이 시원한 냉면류를 원하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춰 개발된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중국냉면이다. 당연히 중국 본토에는 없는 방식이다.

한국인은 계절감에 대한 반응이 뛰어난 민족이다. 겨울에는 뜨거운 음식, 여름에는 차가운 음식에 대한 갈망이 상상을 초월했다. 냉면이라는 세계 유일의 음식이 한국에 있는 것도 그런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여름에 시원한 국수의 종류를 크게 확장시켰다. 우선 속칭 ‘메밀소바’를 들 수 있다. 소바(일본어로 자루소바 내지는 모리소바)는 본디 짠 육수에 따로 내는 국수를 찍어 먹는 형식인데, 한국식으로 다량의 얼음을 슬러시처럼 갈아서 달고 간간한 ‘국물’에 미리 넣어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여름에는 다채로운 국수가 있었다.
열무국수, 콩국수, 냉물국수, 비빔국수,
오이소박이국수뿐 아니라 소바도 널리 먹었다.”

국물 없이 차갑게 비벼 먹는 국수

서울의 여름 국수 대표 격이 된 비빔국수는 흔히 고추장 양념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러 여름 채소를 넣어 영양을 보강하기도 하는데 토마토, 참외, 오이가 널리 쓰인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달걀 한 쪽이 올라가는 것도 거의 표준 방식이 되었다. 이 비빔국수는 설탕이 흔해지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에 단맛이 더해졌고, 수입으로 인해 참기름이 싸지면서 더 달고 더 고소한 현재의 맛으로 정착되었다.

원래 비빔국수는 고급한 음식이었다. <동국세시기>에는 메밀국수에 잡채, 배, 밤, 소고기, 돼지고기, 참기름을 섞은 것이 ‘골동면’이라고 적혀 있다. 골동면은 궁중 음식이기도 했다. 이것이 점차 궁에 근무하는 관료들이 모여 사는 북촌에서 종로, 남촌으로 퍼져나갔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비빔국수는 전후에 큰 변화를 겪었다. 공장에서 생산된 양조간장으로 비비거나 사카린류의 단맛을 섞어 먹는 방식도 나왔고, 나중에는 값이 싸진 설탕 덕에 설탕간장 비빔국수도 유행했다. 공장 생산 고추장의 보급, 양계의 확충에 따른 달걀의 대량 보급 등도 현재와 같은 비빔국수의 조리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여름 국수 대변신의 시대

서울의 여름 국수로 떠오르는 대명사는 콩국수다. 원래 가정에서 해 먹던 이 국수가 도시민의 포화, 시내 상업지구의 발달, 이른바 ‘월급쟁이’라는 오피스 타운의 소비자군이 생기면서 서울의 대표 국수가 되었다. 가을에 수확한 콩을 보관했다가 더운 여름 맷돌에 갈아 국물 내지는 소스를 만들고, 여기에 흰 국수를 뽑아 만 후 여름 김치와 함께 내는 콩국수는 이제 여름의 계절 음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외국 음식도 여름이면 서울 사람의 기호에 맞게 새 옷을 갈아입곤 하는데, 그 선두 주자가 앞서 기술한 중국냉면이다. 그 후 일본에서 직접 건너온 비빔우동(붓가케 우동)이 여러 기술자들에 의해 선을 보이고 있으며, 이탈리아식도 현지에는 없는 ‘냉파스타’라는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은 국수의 도시이며, 동시에 여름에는 차가운 국수의 도시라고 해도 되겠다.

탄력 있게 삶아낸 면을 소스에 찍어 먹는 여름 우동.

박찬일

박찬일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취향대로 즐기는 별미 국수

냉면 말고 여름 면 요리
#여름국수 TMI

#칼칼한김치맛 #얼음동동

시청역과 뉴서울호텔 사이의 좁다란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이곳은 평양식 손만두와 김치말이국수·밥으로 유명하다. 1954년 개업해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노포로 변치않는 음식 맛을 자랑하는 만큼 시원하고 새콤한 맛에 칼칼함까지 더해진 김치 육수가 일품이다. 황해도 출신 사장님의 손맛 그대로 3일간 우려낸 사골 국물을 넣고 숙성한 김치 육수에 얼음까지 동동 띄워 낸다. 밥이나 국수 중에 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

이북만두

  • 가격 김치말이국수·밥 9000원
  • 주소 중구 무교로 17-13
  • 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 전화 02-776-7361
#건강한맛 #순수콩국수

콩비지로 을지로 일대를 평정한 강산옥은 여름 한정으로 콩국수를 선보인다. 콩에 자신 있는 주인장의 뚝심으로 찬 바람 불 때는 콩비지백반을, 6~8월엔 콩국수를 3대째 제공하고 있다. 청계천 상가 2층에 소박하게 자리한 공간에서 손님이 자리에 앉아 주문하는 동시에 면발을 삶아서 매일 아침 연탄 아궁이에서 만드는 콩국을 부어 내는 콩국수는 하루 100그릇만 파는데, 그야말로 깔끔하고 고소하며 깊은 맛이 일품이다.

강산옥

  • 가격 콩국수 1만1000원
  • 주소 중구 청계천로 196-1
  • 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3시(일요일 휴무)
  • 전화 02-2273-1591
#찰기끈기 #호로록면발

우동으로 <생활의 달인>에 나온 바 있는 박상현 셰프의 우동 면발은 두툼하고 탱탱한 것이 특징으로, 가마에서 면을 삶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서 셰프의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여름이 되면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붓가케우동은 자체 제조한 달임 간장을 베이스로 한 쓰유를 작은 병에 따로 담아낸다. 우동 면에 레몬즙을 뿌리고 생강, 쪽파를 올린 다음 참깨를 갈아 뿌린 뒤 쓰유를 전부 부어서 비벼 먹어보자.

현우동

  • 가격 덴푸라붓가케우동 1만2000원
  • 주소 강남구 논현로149길 53
  • 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휴식 시간 오후 3시~5시 30분, 일요일 휴무)
  • 전화 02-515-3622
#쨍한초계탕 #시원한보양식

요식업계의 멘토로 불리는 ‘백종원’의 손길이 닿은 이곳은 ‘포방터 홍탁집’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이곳의 주재료는 바로 닭. 그중에서도 여름철 점심시간에만 맛볼 수 있는 초계탕은 차갑게 식힌 닭 육수에 식초와 겨자로 간하고 닭 살코기를 얹어낸다. 매일 아침 닭을 삶아 손으로 고기를 찢어 고명을 만들고 생면을 담아내면 뜨거운 삼계탕 못지않은 시원한 보양식이 따로 없다.

어머니와 아들

  • 가격 초계국수 5500원
  • 주소 서대문구 홍은중앙로 100-1
  • 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휴식 시간 오후 3시~5시, 월요일 휴무)
  • 전화 02-391-0411
#한그릇의호사 #전복냉국수

‘한 그릇의 음식을 먹는 집’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내걸고 전개하는 옥동식은 이미 서울식 ‘돼지곰탕’, 서울식 ‘닭곰탕’ 등 맑고 깨끗한 한 그릇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서울식 물김치 역시 보양식 재료인 전복을 넣어 깔끔하고 담백하면서 달지 않다. 전복물김치를 구입해 집에서 쫄깃한 소면을 말아 먹으면 손쉽게 건강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옥동식

  • 가격 전복물김치 1.5kg 2만3900원
  • 주소 용산구 한남대로20길 61-7
  • 시간 평일 오전 11시~오후 10시(휴식 시간 오후 3시~5시), 주말 오전 11시~오후 8시 30분(휴식 시간 없음)
  • 인스타그램 @okdongsik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한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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